오사카 온에어

2015.12.18. (1日)


아는 것이라고는 명탐정 코난의 코난 친구가 그 곳 출신이라는 것 하나 뿐.

오직 그것밖에는 아는게 없는데 정말 뜻하지 않게 오사카에 간다.

2월 말 미국여행을 가기 때문에 되도록 여행은 자제하고 싶었는데

최근 주말동안 어떤 외로움과 자괴감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내가

예상치 못한 회사의 휴가 독려 압박에 생긴 아무 계획 없는 긴 휴가 기간 동안

더욱 더 침잠해버릴까 그것이 두려워

십수번의 망설임 끝에 기어코 나는 오사카행 티켓을 끊고 말았다.

오사카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쥐뿔도 모르면서.

관심이라고는 '1'도 없었으면서.

 어느 새 내게 여행은 낯선 곳에 대한 궁금함, 그곳에서의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질릴대로 질린 일상에서의 도피를 위한, 어떤 최고의 효과를 보장하는 탈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곳, 낯선 곳에서 헤메는 것 보다

조금 낯선 환경에서 평소 쉬면서 하던 것들을 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지쳤나보다. 아니면 - 어른이 되었나보다.

이렇게들 어른이 되었나보다 .

 

 

 

 

아무리 여행을 좋아한다지만, (2년 전 미국여행을 빼고는)

그래도 나름 앞서 많이 조사도 하고 대강의 루트라도 준비를 했는데

이번 오사카 여행은 출발 3일 전 비행기 티켓 구매, 2일 전 숙소 예약.

그리고 전날 자정까지 야근, 공항 게이트 앞에서까지 일을 하고서

비행기에 앉아서야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며 숙소까지 가는 길을 알아보고 있다.

그나마 비행기 안에서 일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직장인의 휴가는 이런 것이구나.

휴가 앞뒤로 몰아서 일 처리를 하느라 여행준비는 사치일 뿐이고,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이드북 보고 당당 갈 곳을 정해야 하는.

여행 전에 준비하고 싶어도 준비할 시간과 체력이 없다.

일만해도 피곤한데, 여행 준비라니!

여행은 가고 싶은데, 여행 가기가 귀찮다.

이래서 어른들은 패키지 여행을 하는구나.

일일이 싸이트 뒤져가며 정보 알아보고 가격을 비교하는 건 학생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럴 체력도, 정신도, 마음도 없다.

무조건 자유여행이 최고인 줄 알았던 어린 날의 내가 조금 부끄럽다..

이제 막 외국여행 10년째인데,

10년이면 이렇게 사람이 변하는 구나.

 

 

 

 

 

인천에서 오사카까지는 1시간 40분 비행이라 비행거리가 짧아서인지

이륙하자마자 바로 식사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샌드위치를 하나 먹고 몸이 노곤노곤해질 때쯤, 밀린 피로에 눈이 스르르 잠겨 올 때 쯤.

비행기는 서서히 해가 기울어지는 오사카/간사이 공항에 말그대로 편안히 내렸다.

 

 

이번 여행은 혼자였다.

긴 여행 중 하루 이틀 씩 혼자인적은 있었지만, 4박 5일 여행을 모두 혼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사실 겁도 났다.

혼자인게 무서워서라기보단 혼자서는 심심하고 지루할까봐 나는 그런 겁이었다.

그런 주저하는 마음을 이번 여행에서는 이겨보자고 마음먹었다.

 

 

수하물 찾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내 짐가방을 기다리며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찾자는 다짐과, 욕심을 버리자는 다짐도 했다.

4박 5일 여행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번 여행은 계획에 없었던 덤으로 갖게 된 것이니까

관광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떠나 낯선 곳에서의 일상을 즐겨보자는 목적이 있었는데

나는 카메라를 2개나 이고 지고, 책도 2권씩이나 챙겼고, 짐싸기도 바쁜 와중에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었다를 하고서야

겨우 짐을 다 챙겼다.

가볍게 떠나자 했던 여행인데 등과 목에 멘 가방이 그 어느때 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욕심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 욕심을 버리자.

이번 여행의 목적에 집중하자. 천천히, 여유롭게 쉬는거야...

 

라며 나를 토닥이는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래, 나는 욕심이 많았다.

뭐 하나 놓기 싫어하고 바라는 것은 어떻게든 가져야만 행복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이 가장 많았다.

욕심이 많은 만큼 이기적이었던 것도 같다 .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일까.

욕심이 많은 걸, 이기적인게 나인걸 어떡해.

 

나의 20대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

스스로를 깨달아가고, 이를 부정하고, 고치고 싶어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순응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혹은 체념하는 길고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정적인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의 여러 자아들이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싸워댔다.

그게 나의 20대였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시작과 함께 알게된 첫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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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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