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온에어 

2015.12.19. (2日) 



이틀간은 교토에 가야한다. 

어제 오사카/간사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교토를 오갈 수 있는 한큐투어리스트 패스 2일치짜리를 사버렸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이런 휴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준비하는 이틀사이에 마음이 좀 바껴서 그래도 뭔가 관광지 같은 교토를 돌아다니는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토로 가는 한큐우메다역은 사카이스지혼마치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우메다 역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3개의 지하철선과 JR, 한신, 한큐레일선이 모여있는데다가 백화점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직 한자가 눈에 익지는 않지만 한큐레일 간판을 짚어가며 많이 헤메지 않고 교토로 가는 한큐레일의 플랫폼에 도착했다.



 

 


 

3번 플랫폼의 전철이 달리기 시작했고, 창밖으로 맑고 화창한 오사카의 풍경이 지나갔다. 

금세 도시를 빠져나가 근교의 주택지가 나타나고 저 멀리 아직도 울긋불긋한 산이 나타난다.

마치, 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느낌이다. 

날씨는 제법 쌀쌀한데 여기 오사카엔 아직 가을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40여분을 달려 한큐레일은 도쿄의 카와리마치 역에 도착했다.

나는 아직 어디 갈지조차 정하지 못했는데, 등떠밀리듯 카와리마치 역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흩뿌려졌다. 

눈인가 했는데 햇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싸라기 같은 비였다. 

일단은 남들이 다 간다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관광안내소에서 얼핏 보았던 한복입은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다.


- 이 것만 입고 안 추워요?



별로 안춥다고 말하는 그 한복입은 남자는 은각사에 먼저 갔다가 청수사에 간다고 한다 .

그러는 사이에 은각사에 가는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 저 오늘 교토에 처음왔는데 아무 계획이 없어서요. 따라가도 될까요?


나는 그렇게 엉겁결에 은각사에 가는 두 한국 청년에 덥석 따라 붙었다.

외로운게 걱정이 되었다기보다, 아무 계획이 없었던 찰나에 누군가의 계획에 편승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날씨는 일기예보보다 궂었고 이따금씩 보슬보슬거리며 보슬비가 내렸다.

간단하게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은각사까지 걸었다. 

어리게 보이긴 했지만 이 청년들은 내 동생보다도 어린 93년생 대학생들이었다. 

갑자기 큰 누나가 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은극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미러리스 카메라에 배터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출국 전날 충전을 다 했는데 왜 배터리가 없다고 뜨는거지?

지난 남미여행에서부터 이 미러리스 카메라가 문제구나.

내게 남은건 필름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인데, 핸드폰은 해필 보조배터리가 없고, 필름 카메라는 보조카메라일 뿐. 


잠시 멍...했지만, 카메라가 안된다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 사진찍기도 귀찮았다.

내가 여행하면 사진찍는게 귀찮을 때도 있다니!

그만큼 이번 여행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아님 이제 그런 사진 찍어봐야 나중에 '아  내가 이 때 이렇게 이쁜 사진을 남겨 두었지  -' 회상하며

이따금씩 꺼내볼 뿐, 실은 지나고 나면 시간이 흐르면

뭐 얼마나 잘 찍은 사진이었든지 말든지 생각조차 안날만큼 무의미 한 것이란 걸 느껴서였을까. 


사진을 찍는것조차 재미가 없다라...




은각사에서 찍은 사진

 

 

 

은각사에서 찍은 사진2

 

 

생각해보니 나는 '재미있다, 심장이 뛴다'고 했던 일조차도 끈덕지게 해내지 못했다.

사진 찍는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줄 알았지만,

2년 바짝 찍고서는 차츰 차츰 흥미를 잃어서

지금은 찍어도 그만, 안찍어도 그만.

심지어 너무 잘 찍으려 옥심이날 때면 그런 내가 싫어지는 지경까지 왔다.

신나게 쓰던 여행기도 완결을 못낸게 수두룩.

뭐든지 좋아한다고 호들갑 떨면서도 끝까지 해낸 것들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져간다.

그러면 어쩌면, 그냥 이 일을 계속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닐까.

어짜피 좋아하는 일이 아니니까.

더 싫어지지도 않을꺼고.

심장뛴다며 좋아하던 것도 끝내 시시해지는데, 굳이 내가 즐거운 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필요가 있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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