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온에어

2015. 12. 19. (2日)

 


 

내가 앞으로 4일간 묵게될 방은 한국에 있는 내 방보다도 더 아늑하게 생겼었지만

그 아늑하게 생긴 오사카 숙소에서의 첫날밤은 결코 아늑하지 않았다.

우선 바깥의 공기는 그렇게 차갑지 않았는데도 벽을 통과한 공기는 분홍빛 갓등의 따뜻한 분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방을 골방같이 냉랭한 기운이 들게 했다. 

히터도 켰고, 이불도 두툼했지만 나는 양말을 신고 얇은 패딩까지 껴입고서 

서걱거리는 차가운 이불 속에서 한참을 웅크려 덜덜덜 떨어야 했다.

분명 주인은 히터만으로 괜찮을 거랬는데, 나는 결국 온풍기까지 켜고서야 방안 공기가 누그러지는걸 느꼈다.

그렇게 잠이 드나 했지만, 역시나 그 밤은 쉬운 밤은 아니었다.

나는 온풍기를 켰다가 껐다가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했다. 잠 역시 깼다가 들었다를 반복했다.

급기야 몇시이지도 알 수 없는 캄캄한 한밤 중에, 나는 온몸이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에 잠이 퍼뜩 깼다.

가위였다. 

손과 발이 침대에 들러붙는 것 같았고, 가위라는 자각이 든 순간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텁텁하고 후끈한 방안 공기와 달리 내 목뒤는 마치 파스를 붙여놓은것마냥 싸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한 가위눌림이었다. 


- 귀신이 내 목 뒤에 들러붙어 있는게 분명해!!!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이 저 건너편에서 잠들어 있는 낯선 공간, 짙은 남색 어둠으로 가득한 그 방에서

나는 공포에 떨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 무서워!!


무섭다고 속으로 되뇌이다가, 나는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운 그 느낌에 눌려 까무룩 다시 잠들고야 말았다.




 


 


다시 눈을 뜬 건, 매일 아침 출근시간마다 듣는 내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는 시간이었다. 

커텐을 걷으니 저 멀리 그리 높지 않은 빌딩들 사이로 발그스름한 빛과 함께 해가 떠오르는게 보였다. 

어젯밤 온풍기를 껐다 켰다, 가위에 눌렸다 말다 한 것 치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뭐랄까. 

낯선 도시에서 이렇게 커텐을 걷어 아침을 맞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한국의 내 방에선 블라인드를 걷어올려야 창 밖이 보였지만, 이 곳에선 커텐을 양 옆으로 걷어내야 했다. 

한국에선 사실 출근준비에 쫓겨서 블라인드를 걷어 올릴 시간도,

이렇게 아침 해가 뜨는 걸 느끼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맞은 편의 아파트들 때문에 내 방은 남향이면서도 해 뜨는 걸 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오사카 사카이스지 혼마치 역 근처의 어느 아파트 방에서, 

조용히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있다.

여전히 낯선 곳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느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딴 세상에 있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좋다.

내 삶과 맞닿아 있으면서, 내 삶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순간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이불 속에서 부비적거리고서, 주인 부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샤워를 했다.

생각보다 주인 부부는 늦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뭐, 주말이니까.

뭔가 아침에 함께 식탁에 앉아 씨리얼이라도 먹으면서 활기찬 아침을 보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늦잠을 자는 주인 부부 덕분에 굳이 주방에서 덜그럭거리고 싶지 않아

나는 아침햇살이 방안을 가득 비춰오는 내 방 침대 한 구석에 앉아 

어제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콩 샐러드와 파우드 케잌 한조각을 아무 말 없이 챙겨먹었다. 

그리고 바나나는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먹을 요량으로 가방에 챙겨넣었다.

 

 



 

 


 

8시쯤엔 숙소에서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침대에서 우물쭈물, 아침식사하며 우물쭈물,

비록 잠은 설쳤지만 아침 햇살이 깊이 비쳐오는 그 방이 맘에 들어

방에서 우물쭈물 하다보니 어느 새 8시 반이 지나서야 나는 집을 나서게 되었다. 

 

아침 오사카의 공기는 청량하고 맑았다. 

가로수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온전히 붙어있었다. 

12월 중순. 한국은 이미 겨울인데 이 곳은 아직 늦가을인 것만 같았다. 

어제 밤 숙소가는 종이와 구글맵을 보며 두리번 거리던 길을,

나는 상쾌한 발걸음으로 되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은 제대로 못 잔게 분명한데, 아침 공기에 기분은 상쾌했다.

오늘은, 교토에 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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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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