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가까이 되는 배낭여행으로 심신이 지치긴 지쳐있었나보다.
피라미드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들은 침대에 뻗어있다가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저녁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연말이라 그런지 밤에도 시끌벅적했던 멕시코시티의 거리의 상점들도 모두 셔터를 내렸고
우리는 Tacuba거리를 한참 걷다 아직 불이 켜져있는 식당으로 쓰윽 들어갔다.

Cafe De Tacuba!

 

생각없이 들어간 카페였는데 식당안은 고급스럽고 가족들 손님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역시나 또 모르는 에스파냐어 앞에서 아는 단어 몇개로 주문을 했고 쫄쫄 굶어 배고픈 우리들 앞에 드디어 음식 대령이오!

근데...우리 뭘 시킨거야...왜 이런 시커먼죽죽한 꿀꿀이죽처럼 생긴게 나온거야...

짜장이 아니다...... 하얀치즈가 맛있겠구려

 


진짜 나와 선희언니 앞에서는 이렇게 밥맛 뚝뚝 떨어지는 음식도 당당할 수 없다는거.
멕시코 음식 냄새가 역겹다고 못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진짜 저 시커먼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휴-
미국에서 식은 브리또 하나를 저녁,아침 나눠 먹으며 굶주렸는데
멕시코에 와서 호강을 하는구나. 에헤라디야~ 자진방아를 돌려라 (?)

3주 여행을 초췌해진 선희언니; 끼야~밥먹자~~

 

이 레스토랑에서 정말 좋았던 것은, 정말이지 실력있는 마리아치 아저씨들이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을 위해 노래를 해줬다는거.
우리 앞 테이블에게 '베사메무쵸'를 불러주었는데 내가 들었던 그 어떤 '베사메무쵸'보다도 감미롭고 아름다웠다.
이윽고 나이 지긋~한 마리아치 아저씨들이 우리 테이블에 다가와서 "올라, 쎄뇨리따" 하고 인사하며
우리에게 혹시 아는 멕시코 노래가 있는지 물어봤다. 알 턱이 있을리가요 ^^
하나도 모른다고 했더니 유명한 멕시코 음악이라며 신나는 멕시코 노래 한 곡을 들려줬는데
내 귀에는... "원 달라 마나~" !!

2007년 밤을 밝힌 멕시코씨티의 소깔로 광장.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부드럽고 경쾌한 멕시코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식사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오니
12월 31일을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축하하는 사람들로 소깔로 광장이 시끌벅적했다.
소깔로 광장에 설치한 아이스링크에서 축하공연을 하는지, 관중석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Feliz Navidad! 아니죵. 새해에는 Feliz Año!

소깔로 광장을 둘러싼 멕시칸 루미나리에


나와 선희 언니도 카운트 다운을 기다리며 어린아이들 사이에 낑겨 앉아있는데
갑자기 왠 동양인 남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你们是中国人吗?”
“不是不是,我们是韩国人!”

일언지하에 한국인이라며 퇴짜를 놓았는데 이 남자, 몇 걸음 종종 걸어가더니 자기네 친구들에게 뭐라뭐라하며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는데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중국인이냐고 물었는데 너무 유창하게, 그것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중국어로 말해버린거다.
왠지 자기네들끼리 "쟤 중국인인데 왜 한국인이라고 뻥쳐?" 라고 수근거리는 것 같은 이 찝찝함은 뭐지..;


공짜로 받은 빨간 스카프!


드디어 2007년 12월 31일의 카운트가 시작됐다.
에스빠뇰로 시작한 카운트, 10, 9, 8.....cinco(5), quatro(4), tres(3), dos(2), uno(1)!!!!

 

이야! 불꽃이다!!


2008년이다! 2008년 1월 1일이다. 그러나 새해같은 새로운 마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곳은 이제 1월 1일이지만
나의 고향 서울은 오늘 아침 9시에 이미 2008년이 되었고, 태영이가 있는 뉴욕은 우리보다 1시간 전에 새해가 되었으며
Stan이 있는 벤쿠버는아직 새해가 되려면 1시간이 남았다. 
뭔가 절대적일 것 같던 내 관념 속 시간관념은 내가 벤쿠버로 오면서 꺠져버렸다.
8월 27일 오후 6시에 출발하여 오후 12시 한낮에 도착하면서.

-2008년 1월 1일 멕시코 시티, Travel Note



정시가 되자 Cathedral에서는 제야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새해를 맞는 것도, 가족 없이 새해를 맞는 것도,
에스파뇰로 카운트를 세는 것도,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시간 개념이야 어떻든 이제 2008년이다. **이가 말한 것 처럼 나의 2008년이 Great year가 될까.
난 자신이 없다. 깜깜한 오리무중일 것 같아 두렵다.

-2008년 1월 1일, 멕시코 시티, Travel Note 


1년 전 일기를 다시 읽으며 여행기를 쓰다보니 문득 나의 2008년은 정말 어땠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2008년은 정말 깜깜한 우리무중이었나..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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