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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이치

■ 삶/IV. 삶 2024. 1. 23. 11:35


작년에 우리 회사 사람들과 Quartet을 결성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한 것을 기점으로,
바이올린을 다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바이올린 대신 첼로를 새로 배워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캐롤연습을 하면서 오히려 바이올린의 높은 E현 소리가 좋아져서 결국 바이올린을 다시 하기로)


그래서 작년 연말에 숨고랑 바친기 카페를 통해서 레슨 선생님을 열심히 찾았는데
의외로 조건이 잘 맞는 선생님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거기다가 숨고로 찾은 12살이나 어렸던 바이올린 전공생이 시범 레슨을 잡아 두고 두 번이나 당일에 펑크를 냈다.
심지어, 한 번 미루고 다시 잡은 레슨날에는
레슨 시작 2분 전에 연락이 와서는 지금 일어났다고.
서울대 출신이라서 실력과 성실함은 기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뒷통수를 맞았다.


이 친구 때문에 바이올린 배우는 걸 때려칠 뻔 하다가,
결국 우리 Quartet에서 오보에를 하는 팀장님 딸들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그 분을 소개받아서 2024년 부터 드디어 레슨을 시작하게 됐다.

번쩍번쩍 닦은 바이올린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아마도 중학교 2학년때까지 바이올린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때도 풀 타임으로 바이올린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만에 다시 시작한 바이올린.
오래 쉬었던 만큼 레벨을 많이 낮춰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나에게 스케일, 에튀드, 소품곡 다 시켜본 선생님은 (내 예상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 결과 지금 많이 지지직거리고 버벅거리고 있음 ^_^.....

진도 카드 쿄쿄쿄


아마, 악기를 배워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기억이 있을텐데
어릴 때 악기를 배우면 사과에 빗금을 긋거나 색을 칠하거나, 그런식으로 연습양을 체크했었다.
나는 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모두 병행하고 있었는데
악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배우는 책의 권 수가 늘어나고 연습해야 하는 곡의 길이도 비례해서 길어진다.
그 모든 것을 하루에 5번씩 연습하려면, 솔직히 하교하고와서 저녁먹을 때까지 하루종일 연습만 해야하는데
어린 나이에 (사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게 연습하는 것은 무리 그 자체였다.
당연히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늘지만 전공할 것도 아니고, 즐겁게 익히는 정도면 충분했는데.

어쨌든, 어린 나이에 집에서 엄마가 매일 들으며 체크하니 연습하는게 고역이었는데
(5번 해야할 것을 4번만 연습하면 듣고 있다가 연습 덜했다고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은 연습을 대충하거나 아예 연습을 안하고서 했다고 거짓말하고 혼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 연습량을 줄여달라고 하거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격일로 연습하겠다고 했었어야 했는데
어리고 순진해서 그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하느라 혼난 기억밖에 없네. :P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나보고 연습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연습을 덜했다고, 또는 안했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오후 6시가 되면 칼퇴를 하고 집에 달려가서는
하루에 1시간씩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막상 연습을 해보니 내가 성에 차는 만큼 연습하려면 1시간도 짧다.
그래도 저녁도 먹어야 하고 8시가 넘으면 옆집에 민폐일것 같아서
내가 주중에 연습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은 딱 1시간 뿐.


또, 스케일, 에튀드, 소품곡 중에 스케일 연습을 제일 먼저 집중해서 하는데, 사실 스케일 연습이 제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기본기가, 사실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만큼 살아보니 누가 말로 하지 않아도 내 머리와 내 몸이 절절하게 알고 있더라.

어릴 땐 멜로디가 있고 화려한 곡들을 연주하는게 당연히 더 재미있고 그것만 하고 싶었는데
요즘엔 그 곡들을 더 잘하기 위해서 기본기 연습을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
동기부여가 되어 기본기 연습이 더 재미있다.
(아 물론 표면적 의미의 재미는 아니다. 내가 조금씩 발전한다는 관점에서 재미있다는 것)


무언가를 숙련되게 잘 하려면
아주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본기를 다지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한다는 것도
모두 깨달은 그런 나이가 되었는데
정작 이걸 아는 이 나이에는 그 연습을 충실히 해낼 시간이 없구나.

시간이 많았던 어린 나이에는 연습을 왜 해야하는지를 몰랐고.
그런 관점에서 아직 충분히 연습을 못했는데 시간이 쫓겨서 부랴부랴 악보를 접을 때면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해야지.
하루에 한 시간. 안되면 30분. 그마저도 안되면 10분.
그렇게 소소하게, 대신 꾸준히 하다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최선의 결과가 나오겠지.



어쨌든, 올해 1년이라도 꾸준히 배워고 연습해보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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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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