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마음먹고 그러는 것도 아닌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 달의 마지막 토요일 밤은 재경언니 집에서 자는게 되어버렸다.
벌써 세번째 밤이라니. 가만가만 19층 꼭대기에서 새벽이라 캄캄한 신림동일대를 내려다보면서
아, 그러고도 시간이 꽤나 지났음을 이제서야 실감했다. 두 번째 밤일때만 해도 이제 고작 한달밖에 안된건가 좌절했었지.
앉아서 가만가만 생각해보니, 그래- 벌써 세번째 밤이 된 만큼 어느새 나도 많이 진정이 되었구나. 싶었다.
언제나 좀 평안해질까 했는데 너울거리는 파도를 타듯 울렁울렁하면서도 어느새 이만큼이나 잔잔해졌구나.
금새 괜찮아질꺼라던 첫번째 밤의 나의 예상이 처참히 깨져버렸던 지난 두달간이었다.
이렇게되기까지도 내 예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나조차도 답답하고 괴로웠지만
그 오르내리는 감정폭들을 때론 혼자 버티면서, 때론 주변인들에게 털어놓으면서
마음에서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내고 이젠 내 마음에도 넉넉한 여유의 공간을 되찾아온 듯 하다.
이런 얘기를 무덤덤하게, 마치 옛날 옛날일을 추억하듯 적어내려가는걸 보면.
역시나 시간이 약인 것은 틀림없다.
다만 완치율과 완치기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