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9.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두빛 교토

첫날. 오사카  

 


 

지난 겨울 충동적으로 오사카-교토 여행을 하고와서

반 년도 채 지나기 전에 또 한 번 오사카-교토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어버이날 선물이기도 하고 또 8년전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또 부모님과 해외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여러모로 의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지난번엔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를 오가며 여행을 했다면  이번엔 교토를 중심으로 여행을 할 계획이다.

 


인천공항에서 12:30 비행기를 타고 2시가 조금 넘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평일이어서인지 입국절차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진행되었고
간사이공항의 JR티켓오피스에서 이코카&하루카 티켓까지 구매하고
(간사이공항-텐노지, 교토역-간사이공항 하루카 왕복표를 미리 구매했다)
하루카 특급열차를 타고 텐노지 역으로 향했다.
오사카 성을 보러 간다.

오사카성 천수각이 그려진 키티 이코카 카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있노라니 6개월 전 이 곳에 왔을때의 나의 마음가짐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6개월 전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이 곳에 오지 않았던가.  

 

현실에서 도망쳐 마음을 달래고 싶어 왔었다. 여행이 아니라 도피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정말이지 여행을 하러 왔다.

 

6개월 사이에 중요한 일들이 있었고 그 결과 나의 마음과 태도도 어느새 이렇게 바뀌어있었다.
어찌되었든 좋은 방향이었고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이젠 굳이 도망치고 싶지는 않은 이유이다.
불과 6개월 전인데 문득 새삼스럽다.

 

 



지난 겨울에도 보았던 그 노란색 푸드트럭이 또 있다!


 

 

지하철 역 코인락커에 짐을 넣어놓고 오사카성 공원을 향했다.
한국도 덥다던데 이 곳 햇살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오후 4시의 기운 햇살이 마치 소독이라도 하는듯 살결을 바짝 죈다.

 


한 번 왔던 곳이라고 반가운 마음으로 오사카성까지 걸었다.
서서히 폐장시간이 가까워지는 평일 오후여서인지 그렇게까지 북적이지 않고 여유롭다.
그 때도 그리 겨울답지 않았는데 봄에 오니 그야말로 연녹빛으로 싱그럽게 푸르르다.

 

 

 


연녹빛 나무와 그 뒤의 천수각.


 


천수각 앞에서 아빠와.

 

 

 


천수각 앞에서 엄마와.



 

천수각 뒷편. 낙엽이 가득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새 이렇게 푸른 봄으로 뒤덮였다.


 

 


약간 노을이 지는듯한 공원을 걸으며.


 

 

그 때는 걷지 못했던 오사카성 공원을 걷는다.

서서히 해가 기울고 수북한 풀의 냄새가 추억을 부르고 기억을 흔든다.
도심 한 가운데 이렇게 숲과 풀의 냄새가 가득한 곳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굳이 천수각을 2번 보러 이 곳에 온 것은 아니다.
간사이에 온 김에 엄마아빠는 보여드려야 했던 것도 있지만
나는 지난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이 오사카성 공원.
다시 오고 싶었던 이유도 오사카성 공원이었다.
물론 지난 겨울,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던 일은 부모님과 함께 온 탓에 다음 번으로 미뤄졌지만.

 

 

 


극락교였던가- 엄마와 아빠.



 

나와 아빠와 엄마. 동생이 없어서 못내 서운한 엄마와 아빠.


 


건물 사이로 숨어드는 5월 19일의 태양.


 

 

 

저 멀리 하얀 달과 분홍색 빛으로 변한 천수각

 

 


커다란 공원을 반쯤 걷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발그란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가며 온 하늘을 붉은 빛으로 물들인다.
하얀바탕의 천수각이 노을물에 발갛게 물이 들었다.
분홍빛 천수각 옆에 하얀 달이 떴다.

 

오사카 성만 둘러보는 짧은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이제 교토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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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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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1. (4日)

 

 

 

해가 지고 있기는 하지만, 구름이 가득끼어 노을은 볼 수 없을 것 같은 날씨다.

이제 슬슬 오늘의 마무리를 해야겠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기 전에 우메다 스카이 빌딩의 공중정원에를 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소원을 적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나의 소원은, 행복- 건강- 사랑. 욕심이 많은가?

 

 

공중정원 전망대에 올라서니 오사카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360도로 돌아가며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얼핏 한강같은 느낌도 난다. 조금 작은 한강.

 

 

번화한 우메다 지역. 빌딩 빛이 밤을 밝힌다.

 

 

공중정원에서의 야경은, 크게 인상깊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스치기에 아쉬워서 들렀을 뿐.

 

이제 가는 곳은 아메무라 지역의 <타코타코킹>

에어비앤비 주인이 맛집으로 추천해준 곳이다.

오사카에 4박 5일 있으면서 가장 유명한 난바와 신사이바시지역은 가보지 않았는데

타코타코킹에 찾아가면서 처음으로 신사이바시의 뒷골목을 걸어보았다.

마치..홍대같은 느낌?

 

구글지도를 보면서 한참 따라가니, 아메무라 지역 뒷골목에서 드디어 타코타코 킹을 발견했다.

1층엔 Bar석만 있을 정도로 아주 비좁은 곳이었는데

다행히 1자리가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여기 - 뭔가 아담하고 정겹다.

정말 홍대에 온 것 같다.

옛날 홍대.

내가 대학다닐 때 알던 그런 홍대.

 

 

여기 타코타코 킹

 

 

밀키스 맛이 나는 츄하이

 

 

원래 뒤에 문어를 찍으려고 했는데 귀여운 직원들.

 

작은 Bar 앞에 옆 손님들과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모던하거나 세련되지 않지만, 손때와 정이 묻은 것 같은 이 자리가 왠지 정감이 간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구글 번역기에서 돌린것 같은 한국어 메뉴판을 줬다.

타코야끼 6개에 300엔. 우리 돈으로 3000원.

소스를 고르고 토핑까지 고르고 츄하이도 한 잔 시켰다.

3일 연속 술이라니!

한국에서 2015년동안 술을 마신 날이 3일도 안될 것 같은데

일본에선 3일 연속 내리 술을 주문하고 있다 .

드디어 나왔다. 타코야끼!

 

 

타코야끼는 사랑입니다!

 

 

아담하고 코지한 분위기의 타코타코 킹.

 

내가 지금까지 타코야끼를 먹어본 것은,

언제나 종로 3가에 있던 타코야끼 트럭에서 만든 거였다.

그마저도 벌써 10년 전에 먹었지만.

김이 호호 나는 타코야끼를 입안에 넣어 깨물면 그 안에서 뜨거운 반죽과 문어가 입안으로 퍼지는 걸 좋아했다.

입안에 넣고 뜨겁다고 뜨겁다고 하면서도 그 뜨거운 타코야끼 맛을 참 좋아했다.

한국에서 먹어본 타코야끼가 전부여서 그게 타코야끼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다행히 내가 지금까지 타코야끼라고 믿고 먹어온 것과

지금 내 앞에 있는 오사카의 타코야끼는 많이 다르지 않다.

갓 구워낸 타코야끼위에 바베큐 소스와 가츠오부시. 그 안에 들어있는 문어까지.

정말 맛있어서 순식 간에 6개를 다 먹어버리고야 말았다.

6개면 내 저녁으로는 충분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4개를 더 사먹었다.

친절하고 장난기 가득한 가게 직원들에게 엄지를 몇 번이나 치켜세우면서.

 

 

좋았다.

맛있었고, 또 편안했다.

관광지에서의 일본이 아니라

사람사는 일본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런 여행이 좋다.

가이드 북에 써있는 곳 말고,

정말 현지인들이 가는 곳.

현지인들을 위해 열려있는 곳.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리 늦지 않았는데 길거리는 한밤중이 된 것 처럼 캄캄하고 한국에 비하면 많이 조용했다.

나는 우산을 손에 꼭 쥐고서 걸어 걸어 숙소를 지나

다시 한 번 오사카 성 공원에를 갔다.

 

관광지기도 하고, 공원이기도 하니 밤에도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8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오사카성 공원은 귀신이라도 나올 것 처럼 인적이 없었다.

여행지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라

이렇게 캄캄하고 인적드문 곳에 혼자 오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지만,

무슨 무대뽀같은 심정이었는지

나는 불도 거의 없는 캄캄한 오사카 성 공원에 혼자 걸어들어갔다.

엄마가 알게된다면 지금이라도 등짝을 맞을 일이다.

 

그리고 환히 밝혀진 오사카성을 보았다.

아침의 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오사카성 주변은 오싹하리만큼 고요했다.

조금 섬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여서 좋았다.

아침에 사람들의 분위기에 쌓여 보이지 않던 오사카 성만의 오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오전에 내린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오사카성이 비쳤다.

바람한 점 없어 흔들림 없는 물의 표면에

오사카상이 그대로 비쳤다 .

그리고 나의 갤럭시는 그대로 잠들었다.

 

 

 

 

이것은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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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1. (4日)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잠에서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푸욱 잠들었다.

물론 매일 깨던 시간이 있어 눈을 뜨고, 다시 눕고를 반복했지만.

 

커텐을 여니 일기예보대로 밖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도 오고,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생각했지만

천천히 일어나 샤워하고 나오니 그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집 주인에게 우산을 빌려 나왔다.

어제 그제 오가면서 봐둔 집 앞의 프랑스 베이커리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이런, 오늘 문을 안열었다.

 

 

아, 오늘은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는데.

 

 

문닫은 베이커리앞에서 몇 초간 서성이다 나는 발길을 돌려

에어비앤비 주인이 추천해준 Tea Cafe까지 걸어올라갔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데 막상 그 Tea Cafe는 완전 영국식 찻집이었고 나는 따뜻한 라떼 한 잔이 먹고 싶었다.

한숨 쉬며 돌아서려는데 바로 그 건물 옆에 사람들이 꽤 북적거리는 -

그리고 신사동에 있을 법한 브런치 가게가 있어서 조심이 문을 열었다.

 

 

- 저..커피만 마셔도 되나요?

 

 


 

분주한 오픈 키친. 그런데 왠지 낯익다.

 

 

 

따뜻한 분위기의 실내. 날씨가 좋으면 테라스에 나갔을텐데.

 

 

 

따뜻한 카페라떼를 한 잔 시키고서, 오랜만에 평일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꼭 해봐야 하는게 뭐가 있을지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그러지말자.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시니 조급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일본에 와서 꼭 일본스러운 것 하라는 법 있나.

그냥 휴가라고 생각해.

하고 싶은 걸 해.

그 어느 강박관념도 갖지 말아.

 

 

든든하게 차려진 함박스테이크 정식

 

 

 

이 곳 카페 이름은 Northshore.

늦게 일어나 늦게 아침을 먹기도 했고, 커피까지 마셔서

점심은 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옆 사람들이 먹는 브런치 정식이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나도 결국 함박스테이크 정식을 시키고야 말았다.

 

이 여유.

이 낯선 곳에서 여유와 평안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일하지 않는 평일은 시간이 천천이 흐른다.

월요병에 시달리지도 않고,

만원 지하철에서 치이지도 않고,

1시까지 점심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일기를 쓰고

천천히 식사를 한다.

나는 아직 오사카에서 오사카성 말고는 본게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

 

 

-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는 전철을 탈 수 있었지만

비도 그치고 해서 천천히 우메다역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저께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너무 많이 걷는 바람에 골반이 아팠고

여행하는 내내 아프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히려 점점 통증이 줄어들고 걷는 걸음이 경쾌해졌다.

통증에서 벗어나니 한 결 마음이 가볍다. 별거 아닌데도 행복하다.

그렇게 마음 편히 걸으며 우메다 역에 도착했다.

 

 

 

한큐 백화점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줄 손수건을 사고 Grand Front Osaka 건물로 들어왔다.

쇼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9층에 있다는 야외정원에 가고 싶었다.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9층 정원에서 바로본 전경

 

 

 

Grand Front Osaka 9층 정원에 나와 우메다역 근처의 광경을 내려다보며

비가 그친 뒤의 상쾌한 바람을 즐기고 있다.

뭔가 명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배경음악과 함께.

 

오전 내내 흩뿌리던 비가 멈췄다.

아직도 구름이 가득 하지만,

이 바람에 따라 구름이 서서히 몰려가고 아기같은 하늘이 드러났다.

 

역 근처여서 끊임없이 전철의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지만 구름 위를 날아가고 있을 비행기의 소리도

저 공기를 뚫고 들려온다.

이 곳엔 나말고는 아무도 없다.

사각사각 거리는 펜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한참을 홀로 바라보았던 그 하늘.

 

 

좋다.

이 월요일에 천천히 일어나 원할 때 식사하고 빗속을 걷는 하루.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오후 4시 20분.

공항에서 내려 노을이 진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다.

여기 이렇게 앉아있으니 참 좋다.

내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 다 내 것 같다.

저 멀리서 들리는 차소리, 전철소리가 아득해서

현실에서 떨어져 있따는 실감이 들게 한다.

최근 여행다니면서 가장 일기를 많이 쓰는 여행 같다.

그만큼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난 오늘 비가 와서 참 좋다.

날씨가 좋았으면 뭐라도 밖에서 더 해야하나 싶어서

오사카 만에 가야 하나 아님 오사카성 공원을 돌아야 하나

안절부절하고 웬지 둘 다 해야할 것만 같아서

아침 일찍 시간 아끼려 일찍 일어나 나왔겠지.

 

다행이다.

비가 와줘서.

날이 흐려서.

푹 자고,

한참을 누워있고,

생각 없이 걸어다니고,

해가 질 때까지- 이렇게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서.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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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0. (3日)


 

날이 참 맑다.

창밖의 풍경이 한국인듯 일본인듯 하면서

일본 같다.

 

 

금각사는 교토에서도 약간 서북쪽에 동떨어져있다.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한다.

창밖의 날씨는 화창하고, 버스에 타고 한참을 가려니 노곤노곤하니 졸립다.

한 30~40분을 갔을까, 교토의 관광지가 아니라 교토의 사람 사는 곳들을 지나

드디어 버스는 금각사(킨카쿠지) 앞에 멈춰섰다.

 

 

 

푸르른 금각사 입구 전경

 

 

 

금각사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 걸을 것도 없고 관광객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호수 가운데서 금색으로 반짝이는 금각사를 만날 수 있다.

 

 

잔잔한 호수 위의 화려한 금각사

 

 

 

바람도 불지 않고 물결이 잔잔해서 모든 것들이 그대로 비친다.

 

 

 

멋드러진 소나무 사이의 금각사

 

 

 

부적같이 생긴 이 것은 금각사 입장권이다. 은각사 입장권도 비슷하다.

 

 

 

소나무 사이의 금각사. 개인적으로 소나무가 더 멋있는건 왜일까.

 

 

 

 

금각사와 함께 인증샷

 

이름부터 찬란한 금각사.

교토에서 청수사(기요미즈데라) 다음으로 금각사(긴카쿠지)가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금으로 뒤덮인 절 하나를 보려고 관광객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비약일수도 있지만, 마치 봄 가을에 앞 등산객 꽁무니만 보고 쫓아가는 등산길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유명하다고 해서 오긴 왔지만, 남는 거라고는 엽서에 나올법한 이쁜 사진들 정도인걸 보면

내 여행의 취향도 점점 확고해지는 것 같다.

 

 

팥(?) 단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미식여행은 또 내 타입이 아니어서

여행하다보면 끼니를 대충 때우게 된다.

특히 해가 짧은 겨울엔 중간 중간 당만 보충하면서 이동하는데

대신 평소 다이어트하느라 참아야 하는 간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달까.

 

 

안녕, 두더쥐 친구?

 

 

금각사 다음 갈 곳은 '료안지'

역시나 에어비앤비 주인 Mark가 추천한 곳.

Mark의 취향도 한적하고 느긋하게 정취를 즐기는 편인 것 같아서

(사실 더이상 교토에서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금각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료안지에 가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금각사에서부터 료안지까지, 천천히 골목 골목을 누비며

자유를 만끽하면서 그렇게 걸어갔다.

 

료안지 가는 길

 

 

 

참 예쁜 대문

 

 

 

금각사에서부터 료안지까지

구글맵이 가르쳐주는 최단거리를 무시하고 마음껏 골목을 쏘다니며 걸었다.

영화에서 애니에서 보던 그런 일본의 골목들.

나는 멋드러지게 꾸며놓은 관광지보다, 사찰보다도

이런 사람 사는 그대로의 모습을 엿보는게 더 좋다.

 

료안지 가는길에 리츠메이칸 대학을 보았다.

UBC 시절 기숙사 중 하나였던 리츠메이칸 대학이 교토에 있는 대학이었다니!

별거 아니지만 묘한 우연을 신기해하며 드디어 료안지에 도착했다.

 

 

 

 

 

늦가을이 한창인 료안지의 호수

 

 

 

금각사도 그렇고, 료안지도 그렇고 사찰보다도 호수와 그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특히 료안지의 호수는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훨씬 더 아늑하고 평화롭달까.

 

 

료안지의 유명한 정원

 

 

 

 

대청마루에 앉아 돌로 된 정원을 감상하는 사람들

 

 

 

 

호수를 한 바퀴 걸어나오며.

 

 

사실 금각사와 료안지 부분은 내 여행일기에 단 한 줄도 적혀있지 않다 .

아마 내가 정말 가고 싶어서 간 곳이 아니어서일수도 있고,

명성에 비해서 딱히 내게 와닿는 점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 교토에서 어디갔다왔어? 라고 묻는다면 금각사와 료안지의 이름을 댈 수는 있을 정도.

 

 

오늘이 교토에 오는 마지막 날이니,

이제 교토에서의 미션을 행하러 가야겠다.

 

첫번째는 카츠쿠라에서 돈까스를 먹는 것.

두번째는 교토의 스타벅스에 가서 시티 텀플러에 커피를 마시는 것!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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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온에어

2015.12.20. (3日)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오사카성 가는 길 자판기에서 뽑은 로얄밀크티!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일본어 아침인사가 생각이 안나더니, 드디어 생각났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

코 끝의 공기는 조금 차갑지만 굉장히 청량해서

마치 밴쿠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오사카와 밴쿠버라니..

 

 

 

 

 

 

깨끗한 오사카의 거리

 

아직도 노란 은행나뭇잎이 12월의 가을느낌을 준다.

 

 

숙소가 있는 사카이스지 혼마치 역에서 오사카 성까지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걸어서는 15분.

동쪽을 향해 걸었더니, 드디어 넓은 오사카성 공원이 등장했다.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공원을 보자마자,

아! 너무 좋다!!

행복해진다.

교토보다 여기가 더 좋아!

 

 

 

공원을 따라 들어가면 저 멀리 오사카성이 보인다.

너무너무 유명한 건물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역시나 가까이 가니 아침 9시인데도 관광객들이 모여있다.

나도 관광객이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중국인, 한국인 밖에 없어.

 

 

나는 어제 교토에서 만났던 동완이와 양갱이를 오사카 성으로 들여보내고

조심스럽게 오사카성 뒤쪽을 찾아 조용히 들어갔다.

 

어제 밤, 에어비앤비 주인인 Mark에게 오사카성 공원에 간다고 했더니,

성 안에는 (Mark기준) 별볼거 없는 박물관 같은게 있고, 사람만 디글디글 많은데

그 성 뒤로 돌아가보면 성벽을 따라 오사카 공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가 있다고 했다.

마치 사유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없는데, 절대 사유지는 아니고

또 사람이 없어서 정말 평화롭고 좋을 거라고.

 

 

오사카 성 뒤편에서 바라본 모습

 

 

 

낙엽에 어우러진 오사카성 참 이쁘다.

 

 

오사카 성을 끼고서 낙엽이 가득한 성벽길을 따라 조금 걸었는데,

갑자기 탁 트인 전경이 나타났다.

 

 

오사카성 뒤쪽 성벽에서 바라본 풍경

 

 

회사분이 꼭 교토 스타벅스에서 마시라고 준 교토 시티 텀블러도.

 

저 아래 공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가을이었으면 더욱 예뻤을텐데.

그래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 사이로 아침햇살이 비추는 저 넓은 공원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평화롭다.

고마워, Mark!

여기 정말 계속 있고 싶다.

 

그리고 넓게 펼쳐진 공원. 실제로 보는게 훨씬 멋있었는데.

 

 

 

공원에서 주운 빨간 나뭇잎과 함께.

 

 

 

한적하기 그지 없었던 가을 정취의 오사카 공원

 

 

 

 아직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오사카에서 제일 좋은걸 꼽으라고 한다면,

오사카 성을 둘러싼 오사카 공원을 고르고 싶다.

 

도심 한 가운데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오사카공원은

날씨 좋은 날이면 언제든 가볍게 운동화만 신고 나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걷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만약 내일도 날씨가 좋아 오사카에서 뭘 하고 싶냐고 한다면,

카메라 같은건 다 내려놓고, 청명한 늦가을 날씨를 즐기면서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손에 들고 혼자서 걷고 싶다.

 

왜 혼자이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서

기다리지도 않고,

조마조마하지도 않고, 그냥 온전히 나로서만 그 시간을 즐기고 싶다.

 

 

 

어느새 마스코트가 된 것 같은 빨간 나뭇잎!

 

 

 

수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겨우겨우 인증샷!

 

 

 

아기자기한 푸드 트럭. 하늘과 나뭇잎과 햇살과 노란 푸드트럭.

 

 

 

나무 사이로 보이는 오사카 성

 

오사카 성 안에 들어가보지 않았지만,

단 1g의 후회도 없었다.

나는 오사카 성 뒤편 아무도 오지 않는 곳,

늦가을의 나뭇잎이 가득 밟히는 곳,

그 곳에서 홀로 일요일 아침, 오사카가 깨어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정말 좋았다.

 

 

봄이나 여름, 가을이면 더 좋았을텐데

겨울이다 보니 해는 짧고, 나는 이제 한큐패스를 마저 쓰기 위해 교토에 가야해서

오사카 공원을 다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몇번이고 뒤돌아보면서 그렇게 공원에서 빠져나왔다.

 

 

괜히 교토에 2일씩이나 쓴다는 후회도 조금 들었다.

원래 휴가 계획은 오사카에서 그냥 서울에 있듯이 여유를 즐기는 거였는데

관광객 버릇을 못고치고 이틀 내내 정신없이 관광지만 둘러보는 일정이라니!

 

 

나오면서도, 이 공원 때문에 오사카에 또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참 아이러니하지.

어느 도시에나 있는 공원 하나 때문에 이 도시에 또 오고 싶다니.

하지만, 정말 다음에 온다면 나는 오사카성 공원에만 들러붙어 있을거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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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온에어

2015.12.19. (2日)



한큐레일을 타고 오사카에 돌아오니 저녁 6시였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잠들었는데 그대로 오사카 한큐우메다역까지 도착해버렸다. 

 

아이들은 고베로 아경을 보러 가고, 나는 더 이상 골반때문에 걷고 싶지도, 걸을 수도 없다. 

 

플랫폼에 내린 채로 가이드북을 뒤져 한큐우메다 역 주변의 추천집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우메다 스카이 빌딩 지하에 오꼬노미야끼 맛집이 있단다. 


- 그래, 가서 저녁도 먹고 우메다 스카이 빌딩 39층의 공중정원에서 야경도 봐야겠다. 


한큐우메다 역에서 스카이 빌딩까지 고작 10분정도 거리인데 

골반 통증때문에 마치 만겁의 시간을 걸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가방에 미러리스와 필름카메라를 두 개, 그리고 두꺼운 가이드 북까지 넣어다녔더니

이제는 가방을 어느 쪽으로 둘러메도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렇게 오꼬노미야끼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스카이 빌딩 지하를 찾아갔는데, 

나는 그 지하식당가에서 내가 가려는 곳이 어딘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한 번에 찾아냈다.

줄이,어마어마하게 긴 가게가 딱 하나 있었다. 


가게 이름은 '키지'

 

 

 

손님의 80%가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다.


 

나는 가게 밖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가게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Bar석에 소중한 자리 하나를 차지 할 수 있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와 오징어가 다 들어간 오꼬노미야끼를 하나 시키고서, 

 

쓸데 없이 맥주도 한 잔 시켰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다 먹을 마음도 없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일본에 온지 이틀 연속 술을 마시다니!

 

 

나도 이런 내가 낯설지만, 또 낯선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경계가 풀어진 새로운 내 모습이 실은 조금 더 좋았다.

 


오꼬노미야끼를 만드는 중

 

 

 

 

맥주와 오꼬노미야끼 1/4조각. 그릇에 그려진 캐릭터들이 귀엽다.

 

 


 

오꼬노미야끼는 내 앞의 철판에서 바로 구워지고 뒤집어지고 소스가 뿌려져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오꼬노미야끼를 온기가 남아있는 철판에 남겨두고

 

먹을만큼씩 잘라 덜어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침도 파운드 조각과 콩 샐러드, 점심 대시 말차 카푸치노와 당고, 슈크림 먹은게 다였다. 

 

제대로 된 식사를 단 한끼도 하지 않은 채로 하루종일 걷기만 했던 것이다. 

 

거기다 2시간을 기다렸으니,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은 뭐든지 세상 최고의 맛일거다. 

 

그런 상황에서 먹은 키지의 오꼬노미야끼는 정말 정말 맛있었다. 

 

속은 도톰하게 씹혔고, 겉은 약간 바삭한 느낌도 들었다. 소스도 적당히 끈적거리며 입맛을 돋았다. 


내가 오꼬노미야끼라는 것을 먹은게 언제였던가. 

내 기억 속 첫 오꼬노미야끼는 일산의 라페스타 근처의 어느 2층 이자까야. 이름에 '하' 같은 글자가 있었던 것 같다.

술자리를 좋아하던 첫 남자친구가 데려간 그 이자까야에서 처음 먹어보았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 흐릿한 기억 속의 첫 오꼬노미야끼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와의 오꼬노미야끼가 내 기억력의 한계인 것 같다.

이제는 그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오꼬노미야끼를

이 오사카의 오꼬노미야끼 가게에서 떠올렸다. 

아마 그 뒤로도 오꼬노미야끼를 몇 번은 더 먹었을 텐데, 어째서 기억나는 건 그 오꼬노미야끼 하나인지.

이래서 사람들이 처음이 중요하다고 하는건가...

굳이 그 친구를 떠올리고 싶어서는 아니었는데, 

생각나는 기억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어서 조금 떨떠름했다. 


그러나 그 떨떠름함을 생각하는 순간은 찰나였다.

너무 배고팠고, 너무 맛있어서 나는 정말 순식간에 내 손바닥 두개 크기의 오꼬노미야끼를 해치워버렸다.


크리스마스 행사중이었던 스카이 빌딩 앞

 

 

 

 

 

 

나무에 달려있던 귀여운 스노우 맨

 

 

스카이 빌딩 앞은 크리스마스 이벤트들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다만, 공중정원으로 가는 줄이 한눈에도 길어보여 일단 오늘은 철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이렇게 활기찰까?

내가 늙어서그런건지, 아니면 명동 같이 복작거리는 곳에 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경기침체 탓인지 것도 아니면 저작권때문에 캐롤을 틀지 않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 분위기를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일본에서 아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다운 분위기를 만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있지만,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이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나도 같이 들떴다.

메리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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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온에어 

 

2015.12.18. (1日)  


 

사카이스지혼마치 역으로 나오니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한밤중인 것 마냥 캄캄하다.

에어비앤비 주인이 적어준 주소와 구글지도의 도움을 받아 그의 집앞에 다다랐다.

주인이 있는 집에 함께 머무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뻘쭘하다고 생각하며 벨을 눌렀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외국인 남자 하나가 뛰쳐나왔다.

생각보다 젊고 쾌활한 외국인 남자가 뛰쳐나와서 깜짝 놀랐다.

간단하게 집에 대해 소개를 받고서 저녁시간이라 배를 좀 채우러 밖으로 나왔다.

오사카에 가봤던 친구들은 어서 도톤보리에 가라고 채근했지만

어제 자정까지 일하고, 잠도 몇 시간 못잔채로 짐을 싸들고 낯선 곳에 왔더니

너무 피곤해서 지금 이 낯선 도시를 또다시 헤메고 싶지 않다.

이 동네에서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옆 나라라지만 외국은 외국이었다.

낯선 동네에서 저녁 한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긴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여서 그런건지

8시가 넘어가자 가게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간판만 보고서 여기가 뭘 파는덴지,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자까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온 그 동네를 얼마나 많이 휘젓고 다녔는지 모른다.

일단 아무데라도 들어갈까말까 문앞에서 고민하다 돌아나오기를 수차례.

그러다 영어 메뉴가 쓰여진 곳을 발견했다.

La Oliva!!

 

 

 

 

 

 

 

아,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규모가 아주 아담해보였는데 가족단위 손님들이 오손도손 외식하고 있는 모습이

따뜻해보여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단체석이 2테이블이 다인 그런 곳이었다.

나는 손짓으로 나는 1명인데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어봤는데

키친에서 요리를 하던 주인아저씨가 아주 빠른속도의 일본어로 장황하게 대답을 했다.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것 같긴한데 왜이렇게 뒤 설명이 긴건지....

한참 설명 후에도 내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그제서야 영어가 되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먼저 영어로 물어볼걸.

앉아도 되는데 앞에 단체손님이 있어 식사하기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그렇게 나는 키친이 바로 보이는 Bar자리에 홀로 앉았다.

그리고 원래는 술을 안마시는데 여행지고 해서 샹그리아를 한 잔 시켰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한다.

 

한국에선 그 어떤 술자리에서도 먼저 술에 손대는 법 었던 내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선 먼저 주문하고 홀짝인다 .

빈 속이고 피곤하기까지 한데 술이 들어가니 금세 술기운이 돌았다.

그래도 참 좋다.

 

부부로 보이는 가게 주인은 친절하게 대해줬고,

더듬거리며 한국어로 한 두 마디 말도 걸어주었다.

이 동네가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인이 별로 없었을텐데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음씨에 살짝 감동을 받았다.

이게 바로 일본인가.

5년 전 도쿄에선 이런 느낌을 못받았던 것 같은데.

 

따뜻한 리조또와 직접 만든 샹그리아

 

 

 

 

그나저나, 일본에 와서 먹은 첫 끼니가 스시도, 우동도, 라멘도 아닌

리조또라니!!!

이런 상황에 조금 실소가 나왔지만, 어쩌랴 -

일본어로만 쓰인 메뉴를 보고 들어가기엔 겁이 났고,

여기까지와서 편의점 음식을 먹을 순 없으니 그래도 이렇게라도 식사를 해야지.

샹그리아가 반잔 정도 남았을때 하얀 도기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정갈한 리조또가 나왔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맘에 들었다.

배가 고팠던지라 순식간에 먹어치워버렸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주인 아내분이, 한국어로 즐겁게 여행하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주인 아저씨는, 당신은 아름답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라고 해주었다.

하하. 배가 부르니 살 것 같은데

가이드 북에도 나오지 않은 동네의 작은 스페인 음식점에서 먹은 따뜻한 리조또 한 그릇에

마음이 따뜻하다.

괜한 자신감도 생긴다.

내일부터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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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온에어

2015.12.18. (1日)


아는 것이라고는 명탐정 코난의 코난 친구가 그 곳 출신이라는 것 하나 뿐.

오직 그것밖에는 아는게 없는데 정말 뜻하지 않게 오사카에 간다.

2월 말 미국여행을 가기 때문에 되도록 여행은 자제하고 싶었는데

최근 주말동안 어떤 외로움과 자괴감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내가

예상치 못한 회사의 휴가 독려 압박에 생긴 아무 계획 없는 긴 휴가 기간 동안

더욱 더 침잠해버릴까 그것이 두려워

십수번의 망설임 끝에 기어코 나는 오사카행 티켓을 끊고 말았다.

오사카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쥐뿔도 모르면서.

관심이라고는 '1'도 없었으면서.

 어느 새 내게 여행은 낯선 곳에 대한 궁금함, 그곳에서의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질릴대로 질린 일상에서의 도피를 위한, 어떤 최고의 효과를 보장하는 탈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곳, 낯선 곳에서 헤메는 것 보다

조금 낯선 환경에서 평소 쉬면서 하던 것들을 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지쳤나보다. 아니면 - 어른이 되었나보다.

이렇게들 어른이 되었나보다 .

 

 

 

 

아무리 여행을 좋아한다지만, (2년 전 미국여행을 빼고는)

그래도 나름 앞서 많이 조사도 하고 대강의 루트라도 준비를 했는데

이번 오사카 여행은 출발 3일 전 비행기 티켓 구매, 2일 전 숙소 예약.

그리고 전날 자정까지 야근, 공항 게이트 앞에서까지 일을 하고서

비행기에 앉아서야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며 숙소까지 가는 길을 알아보고 있다.

그나마 비행기 안에서 일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직장인의 휴가는 이런 것이구나.

휴가 앞뒤로 몰아서 일 처리를 하느라 여행준비는 사치일 뿐이고,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이드북 보고 당당 갈 곳을 정해야 하는.

여행 전에 준비하고 싶어도 준비할 시간과 체력이 없다.

일만해도 피곤한데, 여행 준비라니!

여행은 가고 싶은데, 여행 가기가 귀찮다.

이래서 어른들은 패키지 여행을 하는구나.

일일이 싸이트 뒤져가며 정보 알아보고 가격을 비교하는 건 학생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럴 체력도, 정신도, 마음도 없다.

무조건 자유여행이 최고인 줄 알았던 어린 날의 내가 조금 부끄럽다..

이제 막 외국여행 10년째인데,

10년이면 이렇게 사람이 변하는 구나.

 

 

 

 

 

인천에서 오사카까지는 1시간 40분 비행이라 비행거리가 짧아서인지

이륙하자마자 바로 식사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샌드위치를 하나 먹고 몸이 노곤노곤해질 때쯤, 밀린 피로에 눈이 스르르 잠겨 올 때 쯤.

비행기는 서서히 해가 기울어지는 오사카/간사이 공항에 말그대로 편안히 내렸다.

 

 

이번 여행은 혼자였다.

긴 여행 중 하루 이틀 씩 혼자인적은 있었지만, 4박 5일 여행을 모두 혼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사실 겁도 났다.

혼자인게 무서워서라기보단 혼자서는 심심하고 지루할까봐 나는 그런 겁이었다.

그런 주저하는 마음을 이번 여행에서는 이겨보자고 마음먹었다.

 

 

수하물 찾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내 짐가방을 기다리며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찾자는 다짐과, 욕심을 버리자는 다짐도 했다.

4박 5일 여행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번 여행은 계획에 없었던 덤으로 갖게 된 것이니까

관광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떠나 낯선 곳에서의 일상을 즐겨보자는 목적이 있었는데

나는 카메라를 2개나 이고 지고, 책도 2권씩이나 챙겼고, 짐싸기도 바쁜 와중에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었다를 하고서야

겨우 짐을 다 챙겼다.

가볍게 떠나자 했던 여행인데 등과 목에 멘 가방이 그 어느때 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욕심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 욕심을 버리자.

이번 여행의 목적에 집중하자. 천천히, 여유롭게 쉬는거야...

 

라며 나를 토닥이는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래, 나는 욕심이 많았다.

뭐 하나 놓기 싫어하고 바라는 것은 어떻게든 가져야만 행복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이 가장 많았다.

욕심이 많은 만큼 이기적이었던 것도 같다 .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일까.

욕심이 많은 걸, 이기적인게 나인걸 어떡해.

 

나의 20대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

스스로를 깨달아가고, 이를 부정하고, 고치고 싶어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순응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혹은 체념하는 길고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정적인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의 여러 자아들이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싸워댔다.

그게 나의 20대였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시작과 함께 알게된 첫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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