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지난 연말, 이사갈 집을 구해야 한다는 현실에 부딪혀 연말다운 마음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집 계약을 마치고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하루하루 사는 일에 미뤄두었던 문화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술 작품 전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보던 찰나에

위 포스터에 실린 그림,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장미빛 하늘로 향하는 요트 경기> 작품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바로 챙겨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마침 도슨트 해설이 있어서 시간에 맞춰갔는데, 

어림잡아도 한 7~80명이 다같이 50여분간 도슨트 해설을 함께 듣게 되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라는 작가의 이름은 무척이나 생소했지만

그의 그림은 마치 오래 알아온 작가의 작품처럼 따뜻하고 편안했는데

도슨트의 해설에 따르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작가의 신념이 있어서란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120여점의 유화작품들이 주제에 따라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작품들을 관람한 계절이 겨울이어서였을까?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색이 파란색이어서 푸른 색 느낌의 작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과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분홍빛 하늘과 노란색 은행나무를 그린 풍경들이었다. 

 

ⓒ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어떤 순간이 또렷이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나도 언젠가 주황빛이 아닌 분홍빛으로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었던 순간이 있지 않았던가.

작가가 그린 분홍빛 노을이 담긴 작품들을 보며, 어떤 과거에 느꼈던 감동의 마음들을 끄집어 내보았다. 

분홍빛 노을을 그린 작품들을 보면서, 2019년 야수파 전시에서 보았던 작품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품, 

앙드레 드랭의 <채링 크로스 다리> 를 많이 떠올렸는데, 나중에 작가에 대한 설명을 보니 실제로 앙드레 드랭과도 교류했다고. (내 미술 안목....)

https://sollos.tistory.com/1187

 

앙드레 드랭의 채링크로스 다리

지지난 주말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 다녀왔다. 미술전시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편은 아닌데, 최근에 을 읽고서 동기 부여를 받아 얼리버드로 덜컥 예매해놓고는 얼리버드 유효기간

sollos.tistory.com

 

 

ⓒ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정확히 위 작품은 아니지만, 암스테르담의 가을을 그린 작품들도 너무 좋았다.

노란색 가을에 흠뻑 젖어드는 듯한 풍부하고 황홀한 느낌. 

나도 이런 순간들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또 아름다워서 좋아한다. 

계절이 변하며 색이 바뀌는 순간들, 내내 초록이기만 했던 잎들이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풍성하게 흔들릴 때의

그 아름다운 순간들, 아름다워서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작가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행복의 순간들에 나는 힘껏 공감했다. 

 

정우철 도슨트가 말하길,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시대적으로는 전쟁을 겪었고 개인적으로는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의 그림 인생 80년동안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주로 그렸는데,

그림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앙드레 브라질리에라는 작가에 대한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마치, 그림들이, 그리고 아흔넷의 작가가 내게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지만 그래도 삶은 행복하다고, 너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응원과 격려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영화보고는 울어도, 그림보고 운 적은 없는데 

도슨트의 해설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남들 볼까봐 눈물을 훔쳤다. 

 

ⓒ Andre Brazilier / AdAGP - paris, SACK-Seoul,2022

 

50여분간의 도슨트 해설이 끝나고, 찬찬히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가의 작품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전시관 한 켠에 마련된 영상물을 보게되었는데 그 영상물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회화를 그리는 이유는) 이 감정들을 포착하고 나누고 당신을 살아가게 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기면서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에게, 

치열한 삶의 전투에서 지지 않고 살아가게 하려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의지를 주려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행복하길 바라면서

많은 작품들을 남겨온 것이었고, 그런 작가의 의도가 담긴 그림에 마음이 울렸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서른 중반. 동갑내기 남편과 종종 하는 얘기가 사는게 힘들다는 것이다. 

힘들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얘기다. 

세상살이, 돈 벌이, 회사생활,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지난 연말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도 수십 번 생각했다.

뭐든지 엄마가 다 해주던 시절이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어른으로 산다는게 너무 무겁고 힘들다고.

 

전쟁도 겪고 아이도 잃은 아흔넷의 일면식도 없는 작가가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해주는 따뜻한 격려와 응원에

서른 중반의 허무주의자,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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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주말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야수파 걸작전>에 다녀왔다.

미술전시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편은 아닌데, 최근에 <심미안 수업>을 읽고서 동기 부여를 받아 

얼리버드로 덜컥 예매해놓고는 얼리버드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시간을 내서 다녀왔다.

 

이번 야수파 걸작전은 프랑스의 트루아 현대미술관이 리노베이션을 진행하면서 트루아 현대미술관의 '레비 컬렉션' 의

원화 68점을 포함해 총 140여점을 전시되었다.

전시회에서는 야수파의 탄생과 당대의 작품들, 야수파 미술가들에 관한 스토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는데

미술 문외한이 야수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나쁘지 않은 전시였다.

(참고로, 미술전시였는데 텍스트가 엄청 많아서 읽으며 소화해내느라 버겁긴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야수파와 각각의 화가들에 대한 배경설명이 많아서 그림들을 이해하는데는 훨씬 도움이 되었다.)

생각보다 전시된 작품이 많아서 텍스트를 읽으랴, 그림을 감상하랴 허덕이며 전시관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안드레 드랭에 관한 영상 작품을 관람하다가, 순간적으로 마음을 이끄는 작품을 만났다.

 

   André Derain."Charing Cross Bridge". London 1905-06 ㅣ MoMA

 

앙드레 드랭이 그린 30여점의 런던 연작 중,

노을이 지는 풍경(이라고 추측되는) 몽환적인 런던 하늘풍경을 담은,

< Charing Cross Bridge > 

채링크로스 다리와 런던도심의 배경 너머, 연노랑색, 연분홍색, 연하늘색, 노란색, 남색, 빨간색, 

거침없는 알록달록한 색채가 경계를 이루면서도 또 어색함 없이 어우러져 있었다.

하늘은 마치 단 하나의 하늘이니 그 색도 균일하여여야만 할 것 같은데,

혹은 노을이 질때처럼 그 색감이 다양하더라도 지평선을 따라 붉은빛부터 푸른빛까지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야만 할 것 같은데,

커다란 하나의 하늘에 다채로운 색깔을 덩어리 채로 덧칠한 그 과감한 붓칠에

아!

1초 남짓의 순간에 지나가는 30여개의 작품들 중에서 단박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야수파 걸작전의 대표격 그림인 앙드레 드랭의 <빅 벤> 보다도

<채링 크로스 다리>가 훨씬 더 강렬하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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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모두 보고서 나오는 길에 기프트 샵에서, 채링 크로스 다리의 판화본을 사고 싶었지만,

(해당 작품이 MoMA소장이어서 그런지) 이번 전시회에 관련된 작품만 구매가 가능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아니라 대체품을 사는 것 같아서 조금 망설였지만,

그래도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만큼 인연과 같아서

앙드레 드랭 작품 중에 나중에 집에 걸면 좋을 것 같은 작품을 하나 골라보았다.

 

André Derain. "collioure le port". France. 1905 ㅣ Troyes Museum of Modern Art

 

내가 미술작품의 프린트를 처음 산 것은, 2017년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칸딘스키의 <겨울풍경>을 처음 보고 나서였다.

당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도 칸딘스키를 비롯해서 샤갈, 마티스 등 유명한 작가들의, 세상에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나는 칸디스키 작품 중에서도 아주 유명하지 않은 <겨울풍경>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기프트 샵에서 프린트화를 사왔다.

그리고 액자를 맞춰서 내 방 벽에 기대어두고는 출근할 때마다 한 번씩 바라보고는 했다.

볼 때마다, 이 작품을 만났을 때의 신선하고 따뜻했던 감동.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좋은게 아니라, 비싼 값에 팔려서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내 눈과 내 마음에 그림 그 자체로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졌던, 나만의 애정.

그리고 그 감동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 프린트화를 사들고 온 그 날의 나에 대한 기특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그 뒤로 미술전시를 보러 갈 때마다, 

여기에서 또 내 마음을 뒤흔들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특별한 작품을 만나지는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은 또 그렇게 쉽게 만나지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좋다는 그림, 유명하다는 그림, 비싸다는 그림을 보면서 나도 이 그림이 좋아야만 하는건 아닐까 내 심미안을 다그쳐보기도 했지만

그런 다그침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역시 마음에 드는 작품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불현듯 나타나 내 마음 속 애정의 방에 콕 들어와버린다.


요즘에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겨울 풍경> 액자 위에 겹쳐 놓은 <collioure le port>를 한 번씩 바라보곤 한다. 

이렇게 마음을 담아 방에 둔 그림들은,

이제 단지 한폭의 그림일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만났던 날의 추억, 장소, 함께 했던 사람, 이 그림을 골랐을 때의 내 마음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담고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영원히 이 그림을 볼 때마다 함께 생각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애정이 솟아나는 그림을 만나게 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된다.

괜히 수집에 급급해서 조급하게 억지로 애정을 붙여보려 하는 것은 경계해야지.

살면서 운명처럼 마주치게 될 그림들을 기대한다.

그리고 함께 기억될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과 추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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