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법 대낮의 열기가 뜨겁지만, 그래도 습하지 않고 선선한 바람이 불고

아직 짙어지지 않은 연녹색 나뭇잎들이 바람에 햇살에 파르르 흔들리는 풍경을 본다.

여름이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시작하지 않은 것 같은

그 문턱 사이에 서 있는 듯한 느낌. 

이런 날씨가 오래도록 끝나지 않길 바라면서.


사람의 인생에서 젊음이 너무나도 짧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남은 건 늙어가는 것 뿐인데, 

활짝 꽃피어 찬란하던 시절은 너무나도 짧아서 

아쉽고 서운하고 찰나처럼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돌리고 싶기도 했다.

어느 집단에서든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가장 어리고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반짝였던 시절을 지나,

이제 가장 주류인 세대에 들어왔고, 그리고 시간의 섭리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그 중심에서 빗겨나는게 느껴진다.

이제 더 이상 내 기준에서 나는 아주 젊지도 아주 찬란하지도 않다.

찬란했던 이십대는 너무 짧았다 싶었다.


이제 서른 초반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 서른 중반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요즘,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서 파르르 흔들리는 연녹색 나뭇잎들을 보면서, 

연하늘색 하늘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들을 보면서,

실은 젊음이 그리 짧지도 않았구나. 

피어난 꽃만이 젊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꽃이 피기 전 꽃망울을 맺어가던 과정도 모두 젊음이었구나. 

나는 참으로 오래도록 어리고 젊었고, 또 그 순간들을 참 오래도록 누렸구나. 

싶다.


이십대이던 시절엔, 이십대 초반으 순간이 뒤돌아서면 손에 잡힐 듯, 뒤돌아가면 돌아갈 수 있을것만큼 가깝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아득하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실감이 날만큼 아득하다.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건 모두 머릿 속 잔상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십대나 삼십대나 다를게 없는데,

이제는 과거의 기억들이 예전만큼 현실감있게, 생생하게, 또렷하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애써 떠올려보아도 그 순간의 날카로웠던 감성들이 더 이상 상상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는 느낄 수 없어 - 

슬프다.


난, 젊은 날에도 젊음을 알았던 것 같은데 

지나고 나니 생각보다도 젊은 날이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젊은 날인줄 몰랐던 것 날들도 있었다.

젊음이 훨씬 길었다고 인정하게 되니, 아쉬움이 조금 덜어지는 듯 하다.

젊은 줄 몰랐던 날에도, 젊은 줄 알았던 날에도, 나름의 최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는 과정 그 자체를 오래도록 괴로워했던 것 같은데

이젠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정말 여름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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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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