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8월 27일

MJ와 함께하는 헐랭한 프랑스 여행 (3)

Avignon, France



입사 3주차 수요일.

교육기간이 끝나고, 어렵진 않지만 하나 둘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은 일을 받으면 걱정이 앞서고 심장이 콩닥콩닥 거리지만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어서 설레기도 하고, 잘하고 싶은 열정도 솟구쳐오르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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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나의 목표는 사실 노을이 지는 가운데, 아비뇽 성 바깥에서 잔잔한 강물 너머의 아비뇽의 평온한 모습을 보는 것.

그것만 본다면 오늘의 삽질..즉,


① 아비뇽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못찾아서 헤멘 것

② 주문한 음식이 장이 다 꼬일만큼 오래 걸려 나온 것

③ 게다가 맥&치즈로 만든것 같은 스파게티에 허접한 퀄리티의 피자였던 것.

④ 그래서인지(?) 유난히 찍는 사진마다 안이쁜 것.


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어짜피 내가 아비뇽에 온 목적은...신나러 온게 아니고 잔잔한 강물을 보며 로스쿨에서의 번뇌를 씻어버리기 위함이니라.



아비뇽 성안의 아름다운 골목을 지나..


싱그러운 잔디밭에서 ~



아비뇽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명한 다리가 있다. 

바로, 아비뇽의 다리 , 원래 이름은 생 베네제 교(Pont Saint Benezet).


생 베네제 교 (Pont Saint Benezet).


아비뇽의 론강의 끊어진 다리.

길이900m 정도, 21개의 교각에 22개의 아치가 있는 당대 최고의 토목기술로 지어진 다리로 아비뇽과 론강 건너편 도시를 이어주던 다리였다.

하지만 18세기 말 홍수로 인해 절반이 떠내려가고 지금은 4개의 교각과 생 베네제(Saint Benezet)를 기리는 예배당만 남아있다.

12세기 무렵 양치기 소년 베네제(Benezet)가 다리를 지으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혼자 돌을 쌓아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고..


이 '생 베네제 교'와 '아비뇽 교황청'을 함께보려면 론 강을 건너가면 된다.

생 베네제 교는 끊겼지만 현대식 다리가 있으므로 다리를 건너가자!


두근두근.

드디어 론 강이다!


그런데...

강 가까이 갈 수록....

...........뭔가......심상치가 않아!!! @@


어라...론 강에 떠 있는 저 동그란 부표들은 뭔가요?!!!


잔잔하기는 커녕 폭풍치는 바닷가마냥 파도로 울렁거리는 강물을 보라 ㅠㅠ!!!




그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바로 그 날 - 아비뇽에서 모터보트 대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_ =

사진 속에서 봤던 잔잔한 론강은 온데간데 없고

론 강 위에 둥둥 떠있는 부표들 사이로 모터보트들이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지나가고

강물은 넘실넘실을 넘어 출렁출렁 거리고

론 강 근처에서는 모터를 돌리는 기름냄새와 함께 대회준비요원에 구경꾼에 장사꾼들까지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ㅠㅠ




노을지는 잔잔한 아비뇽을 보면 오늘의 고난을 다 용서한다 했거늘 ㅠㅠ..

여행자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ㅠㅠ


(자칭) 모터보트대회 우승자와 준우승자와 함께. 근데 참 착해보이신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정신없는 론강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도 다 여행의 재미이고, 또 내 운명이니까.



나와 MJ는 대회의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나 조금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가 진다.

황금빛 햇살이 서서히 건너편 아비뇽의 교황청을 비춘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고요하고 이쁘다.


그토록 보고싶어했던 아비뇽의 교황청, 그리고 생 베네제 다리와 함께.


달려오던 멍멍이한테 한 눈 팔았다. 왈왈.


MJ와 샌드위치와 함께 :)론강에서 샌드위치 아작아작.


나와 MJ는 저기 저 샌드위치를 먹은 자리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황금빛 햇살이 점점 분홍빛 여운으로 바뀌고,

분홍빛 하늘이 보라색 하늘이 되고, 남색 하늘이 되고, 그리고 캄캄해질 때까지.



굉장히 오래 기다렸을 것 같지만,

실은 그 순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그 모든 것은 한 순간이었다.


못내 아쉬웠다.

로스쿨 2학년 - 

인턴과 인터뷰, 법조윤리 시험, 다음학기 예습까지 해야하는 빠듯한 여름방학을 쪼개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힐링하고 싶어서 굳이 고른 아비뇽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가장 시끌벅적하고 기름냄새 풍기는 아비뇽에 와있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비뇽을 볼 수 있는 날은 오늘 밖에 없는데.

내일이면 이제 엑상프로방스로 가야하는데.


아쉽지만 -

살다보면 내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빨리 깨닫고 빨리 인정하는게

그 상황을 가장 쉽고 빠르게 지나치는 방법이란 것을 알았다.

어린 날, 미련스럽게 아쉬워하고 억울해하고 분해하는 경험들을 통해 깨달았다.


기대만큼, 포기가 빨라진 걸 보면, 그리고 그것을 세상사는 이치라고 둘러대는 걸 보면  

나도 얼추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금빛 햇살이 가시고 분홍빛 여운이 남는다.


연보라빛 하늘로 물이들다가..


점점 하늘이 짙어지고,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캄캄해졌다. 그리고 이제 아무도 없다.


돌아오는 길. 새로지은 현대식 다리에서 본 아비뇽의 모습. 차들이 지나다니는데도 중세에 온 것 같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둡고, 생각보다 무서웠다.

게다가 기대했던 것을 못봐서인지 괜히 힘이 빠졌다.

리옹과 니스, 에즈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걸 봐서 그렇게 신나해놓고.



나의 개인적인 아쉬움때문에

아비뇽에 대한 마음이 반감되는 것도 아쉬웠다.

사람마음이 참 그렇다.



대반전이 있는 아비뇽이었지만,

그래도 - 내일은 액상 프로방스에 간다.

아주 아기자기하고 이쁘다던데.

내일 액상 프로방스에서 오늘의 아쉬움을 달래야지.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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