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읽은 팬레터, (말투가 은근 웃기다)
                                                                                                                                            




디어. 아시아의 별

 사실 너희가 이 글을 읽어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팬레터라고 보낼 생각도 없고 
 데뷔일이 다가오는 12월의 어느 날 난 그냥 손이 심심했을 뿐이고
머나먼 타지땅에서 자다가 갑자기 너희 생각이 번뜩! 났을 뿐이고...

누나는 사실 너희를 좋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애기(햇수만) 팬이예요.
감히 너희를 오빠라 칭해도 되겠니? 
사실 누나는 약 1년전만 해도 너희의 관등성명 네 자 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학원의 수많은 제자들에게 욕을 얻어먹고 지미 내가 알게 뭐여, 했던 시크한 사람이예요.

그랬던 내가 지금은 간간히 들려오는 싸인회 소식에 이 몸은 지금 당장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라도 한국에 가야겠다며 삼각 빤쓰 수영복을 챙겨입고
본방을 챙기지 못해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긁어 클럽박스 포인트를 충전하며
휴대폰 리차지 할 돈이 없어 집에 전화도 못 하는 신세에 4집을 버전별로 주문해
일주일을 손톱만 물어뜯다가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우왕 택배왔다!!!!!!!!!!!!
하며 버선발로 뛰어나가 파란 눈의 택배 아저씨를 식겁하게 만든 존재가 되었어요.

 사실 너희는 누나의 첫 아이돌이 아니에요. 미안해.
이런 강철같은 누나에게도 10년을 가심에 불 지피게 한 '오라버니'들이 계셨어요.
철없던 시절에 녹화란 녹화는 다 따라다니고 엄마 나는 오라버니들과 살림을 차리겠다, 
하였다가 왕복 귀때기를 얻어맞으며 혼수로 이불만 챙겨 서울로 상경했던 때가 있었어요.

 오늘 이렇게 보내지 않을 편지를 너희에게 쓰는 건,
누나가 그 10년동안 '사람이 변하는 걸' 지켜봐왔기 때문이에요.
(그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변화이든 나쁜 변화이든.)
나는 변해가면서 뻔뻔하게 너희에게 변하지 말라는 소리는 못 해.
지금까지 너희는 아주 잘 해 온듯 하고 (비록 나는 아직 1년짜리 팬이지만)
이 누나의 코에서 코피를 빵빵 터뜨린 것 만큼,
그저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읍니다.

아직까지도 누나의 이상형이신 K군은 팬미팅에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언제나 뻔뻔한 것 같아요, 제가.
제가 늘 굴하지 않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다 여러분들이 뒷받침을 해 줘서 그런거에요.
객석에서 보기에 쟤가 또 미쳤네, 쟤 또 시작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여러분,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세요. 맞다. ㅌ오빠는 월드스타다. 그리고 자신에게 외치세요.
그래, 저 사람이 저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 우리 때문이야.'

우리 아가들, 귀 빡빡 닦고 잘 새겨들었쪄요?
비교하려는 게 아니라 누나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도,
그저 아시아의 별이 아니라 세계의 별이 된 동방신기의 입에서도
저런 말이 '진심으로' 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예요.

10년 전의 그 분들은 내 세상이었고 내 하늘이었고,
앞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했겠지만
지금 누나의 마음은 이래요.
우리가 하는 충고 한마디가 너희의 법이고 하늘이다.
더 높이 날아오르고 싶다면 노력하는 동시에 우리를 떠받들어라.
(미안. 차별대우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누나도 이제는 철들어야 하지 않겠니)

 아~주 가끔씩 너희가 하는 행동, 한 마디에 가슴 아파하는 아가팬들을 볼 때면
누나는 당장에 달려가서 너희의 (대표로 준수의) 뽀송한 엉덩이를
아주 그냥 퐝퐝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리고 너희의 귀에 깔때기를 갖다꽂아 누나의 섹시한 목소리로다가
 

아니 이 오장육부같은.. 느이가 지금 누구 덕분에 거까지 올라갔냐!
그 어린 아가들이 으이? 매점가는 피 같은 돈! 으이? 고거 삭삭 긁어모으고!
좋은 옷 못 사입고 몇달을 빼빠지게 용돈 모아갖고 느이 앨범 버전별로 사불고 으이?
지 저금통 동생 저금통 탈탈 털어서 동방신기 콘서트 한번 가보겠다고 으이?

 느이가 지금이야 아시아의 별이제! 고것들 아니었으마 느이가 지금
서울 남산타워의 별이 되았을지 대구 팔공산의 별이 되았을지 우찌 아는가

이 호랑말코같은 놈들아!!!!!!!!!!!!!!

 

요렇게 살포시 속삭여주고 미안해서 고 입술에 뽀뽀를 쪽쪽쪽 해줄거에요.
코디 일도 그렇고 다른 일들도 그렇고..
팬들이 큰소리 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거에요.
물론 가끔씩 되도않는 소리 해쌌는 잡것들이 있지만
이제 고 정도는 알아서 걸러듣는 내공이 쌓였으리라 생각해요.

왠지 누나의 편지가 지금 노를 저어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듯 해요.
원래는 애정이 듬뿍 담긴 자필편지를 선사해주고 싶었는데..
노안이 진행되고 있는 누나는 오래 콤퓨타를 붙들고 있을 수가 없어
어색하지만 급하게 끝맺을게요.
 

짧은 3개월, 시기를 겁나 잘 맞춰 딱 이 시점에 유학길 떠나온
불쌍한 누나는 본방사수조차 못 했지만 너무너무너무 많이 수고했어요.
(항상 그렇지만 한국 활동하는 동안 서포트하느라 '더'힘썼던 우리 팬들도!)

 비몽사몽 쓴 누나의 편지 가슴에 깊이 새기고
(힘들면 말해. 누나가 직접 모나미 네임펜으로 새겨줄거에요.

 

일본 가면 조금 더 음악에 치중한 프로그램,
더 좋은 음향시설 갖추고 노래할 수 있는 거 아니까
누나는 너희가 오래 이 곳을 떠나 있어도 섭섭해하지 않을거에요.
그저 씨디가 뽀사질때까지 듣고 또 들을거에요.
클럽박스 마일리지는 점점 쌓여만 가요.

 어쨌든 우리 서로 조금 더 자란 모습으로 조만간 또 봅시다. 안녕!
                                                                                                                                                    

하하, 9월까지만 해도 동방신기를 좋아한다던 후배의 수줍은 발언에 코웃음을 쳤지만
순식간에 나는 요즘 동방신기의 빠순이로 급변하는 나를 자제하지 못하는 중이다 -_-
다들 나보고 힘이 드냐며, 무슨 어려운 일이 있느냐며 나의 정신상태를 걱정하거나
혹은, 아직도 저 나이 먹어서 지보다 어린것들보고 꺅꺅대느냐며 철없다고 혀를 끌끌차는데

전자도 맞는 이야기고, 후자도 맞는 이야기다.
동방신기에 대한 팬질은 머리아픈 지금 2008년 겨울에 날 웃게하는 즐거움이며
나는 아직도 철이 없어서 이러고 있다.


오랫만에 오랫만에 아주 오랫만에 빠슨이 짓을 하면서
솔직히 나는 요즘 여러가지 생각, 여러가지 느낌을 많이 겪고 있다

그래, 나도 이 펜레터의 주인공처럼 정말 하늘처럼 떠받들던 아이돌이 있었다
아마 글쓴이의 아이돌과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 아이돌은 같은 그룹이 아니었을까.
읽자마자 바로 삘이 왔다.

그때 나는 부대차만 타고 집과 학교만 오가는 거 말고는 시내도 나가보지 못했을 정도로 어렸었고
팬클럽에 가입할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으며 콘써트를 보내달라고 엄마한테 입도 뻥긋해보지 못했다.
그저 앨범하나 사들고 티비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희희낙낙했던 순진무구한 어린 여중생이었다.

그들이 컴백하는 가을만 되면 나의 2학기 중간고사 점수는 한번씩 바닥을 때려줬고 (담임선생님들이 의아해했다는;;)
음반 발매일에 맞춰 그들의 앨범을 예약하고, 감상용과 재생용 씨디를 2 개씩 사서 들었으며
그때는 인터넷도, 직캠도 그리 보편화되지 않아서 방송은 꼭 티비로만 챙겨보거나 녹화해서 봐야했다.

그렇게 소극적인 팬이었던 나는 그들이 해체했던 중3때가 되어서야 적극적인 열혈팬이 되었는데
그건 내가 서울 가까운 평택으로 이사를 했거니와 그 때 같은 중학교의 열혈팬들이 나까지 데리고 서울로 튀어주었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 엄마 몰래 서울에 올라가 난생 처음 압구정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열심히 항의질을 했고;
모 멤버의 생일때도 새벽첫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하루죙일 줄만서다가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오고 말이다.
정작 그들이 그룹이었을땐 팬클럽한번 가입 안했는데 그들이 뿔뿔이 찢어지고 나서는 각 팬클럽에 다 가입해버렸다.
그들은 헤어졌는데, 그것도 그렇게 좋지 못하게 헤어졌는데
우리는 끝까지 그들이 하나라고 우겼고 영원하다고 우겼다. 그야말로 우겼다. 지금 생각하면 웃겼다.


가끔 아주 가끔 그때 그들의 씨디를 틀어놓으면
동요 하나도 제대로 못 외우는 내가 아직까지도 기가막히게 랩까지 줄줄줄 외우고 있는데
그때마다 피식 피식 비웃게된다
아 , 그 땐 정말 영원할꺼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었지. 하고 .

그때도 공부외에 정신을 쏟을 곳이라고는 팬질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들을 사랑했었는지
연말이면 미친듯이 각종 음악대상 홈페이지에 가서 우리 오빠들에게 한표 던지고자 클릭질을 해댔고
음반이 심의에라도 걸리면 미친듯이 항의하고 서명을 했으며
생일때마다 사탕과 생일축하한다는 쪽지를 써서 전교생에게 돌렸고
정말이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하고 화를내고 웃다가 울다가
나의 어린 사랑을 그들에게 바치겠노라 이를 악물었었다

근데 말이야
그것도 다아...한 때더라 지나가보고 나니까

요즘 동방신기의 자료가 없나 Daum 텔레비존 게시판을 슬금슬금 기웃거리다보면
어린 팬들이 흥분해서 지금 투표를 해야한다는 둥, 19금 딱지를 붙인 보건복지부에 항의서한을 보내라는둥 열을 내는 걸 보면
그들의 마음이 구구절절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냥 넘겨버리고 만다.
그거 다 소용 없단다 얘들아.


나도 오빠들이 최고인줄 알았다.
그들의 마음은 바다와도 같고 하늘과도 같은 사람이고
항상 팬들만을 생각하며, 세상의 온갖 왜곡과 시기와 질투로부터 우리가 지켜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릴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온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머리를 쥐어짜내며 작곡을 하는 줄 알았다.
그야말로 다 큰 어른인줄만 알았다.

근데 그들도 일개 연예인일 뿐이었고, 돈때문에 찢어져버렸다.
방송3사 연말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던 그때 그들은 고작 21살, 20살, 19살이었다.
23살인 나는 지금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는데 그들은 지금 내나이보다도 더 어린 꼬꼬마들이었다니.
그리고 지금 내 나이 즈음에, 영원할꺼라고 약속했던 말을 뒤로한 채 영영 작별인사를 하고 말았다.


과연 동방신기는 어떤 끝을 맞이할까
같은 기획사의 같은 멤버수, 외모와 실력은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제 2세대 아이돌 그룹.
(나는 왠지 모를 기획사에 대한 배신감때문에 한참이나 동방신기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일종의 짝퉁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나는 이미 한 번 끝장을 봤고, 그 끝을 봤고, 그들의 변화를 봤으며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10년동안 경험했다.
그래서 내가 동방신기를 지금 막 좋아한다고 해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건,
저 팬레터의 주인공처럼 동방신기에 푹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건.
나는 이미 해볼껀 다 해봤고, 겪을건 다 겪어봤고, 그리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그 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내 마음속 저 깊은 구석에 존재하고 있는 10년 전 내 첫사랑 아이돌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솔직한 마음으로 동방신기라도 더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말도 안되는 거지만.
좋아하기 시작한건 얼마 안되었지만 가끔 예전 자료들을 보면,
다른 가수들에 비해 깍듯하고 겸손한줄로만 알았더 동방신기도 그때에 비하면 얼마나 방송물을 많이 먹었는지가 느껴지니까.
솔직히 늙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ㅋㅋㅋㅋ
지금이 가장 딱 보기 좋으니까. 데뷔 5년차의 능숙함도 있지만 아직은 풋풋함도 느껴지고
너무 어리지도 너무 어른스럽지도 않으니까-


지금 이렇게 내가 씨부렁씨부렁하는 것도 다 소용없겠지.



.................그럼에도, 보고싶다. 당신들은 최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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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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