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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27 리움 (Leeum) 에서 바람소리를 듣다. 3




오늘, 삼성미술관 (Leeum)엘 갔다.

예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상하게도 항상 리스트에 오르지 않다가

친구가 얘길 꺼내서 이번에 다녀오게 되었다.



12시 30분에 리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중간에 넋놓고 지하철을 탄 덕분에 내렸다가 다시 탔다가 뒤로 갔다가 다시 탔다가 난리를 쳐서

나는 1시간이나 늦고 말았다.




한강진역 벽화.


약속시간에 1시간이나 늦게 한강진역에 도착했다.

번잡한 도심이 아니어서일까, 아니면 너무 대낮이어서 그럴까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2호선 강남역과 달리 

한강진역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온하였다. 

그리고 타일로 이어붙인 벽화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난 마치 관광객처럼 한강진역 벽을 핸드폰 사진으로 찍었다.


파란 여름잎에 둘러싸인 리움의 표지판.



한강진역 1번출구로 나오자, 바로 표지판이 보였다. 

이제 막 여름의 풋내음이 나는 파란 잎들에 둘러싸인 표지판을 보고 있으니

문득,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올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잠시 스쳤다.

필름으로 찍었으면 정말 클래식한 사진의 느낌을 냈을텐데.



작은 들꽃들이 가득 피어있던 산책길.


이제 정말 여름에 접어드는 6월말,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쬐는 길을 걷고, 또 언덕을 걸어 드디어 도착했다.

오는 길에 왠지 부자들이 사는 동네같다는 생각을 했고, 왠지 모를 위화감이 살짝 들었다. 




Leeum. 입장.



운이 좋게도 내가 도착했을때, 큐레이터분이 무료로 안내해주는 시간이었다. 

Leeum은 한국 고미술품 상설전시를 위한 뮤지엄1과, 

한국과 외국 현대미술을 위한 뮤지엄2로 나뉘어져있어서


일단 뮤지엄1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4층부터 내려가면서 전시품을 보도록 설계가 되어있었는데 뮤지엄1의 4층은 고려청자전시관이었다. 

큐레이터분과 함께 주요 작품들의 설명을 듣고 3층으로 내려가 조선 백자를 보고, 2층에서 고서화 전시를 보다가

나는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큐레이터 일행과 헤어져

홀로 고서화 관람용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제, 한동안 모르는 채 했던 나의 서러움이 大폭발하는 바람에

정말 한참을 서럽게 울었었다.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불안함, 막막함, 답답함. 그리고 억울함과 두려움.

그 모든게 응집되었던 것들이 한 번 터지니까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그렇게 울고나면 항상 다음날 너무 지친다. 


자연채광을 하는 천장. 오늘같이 햇살 좋은 날에는 빛이 덜 들어오게 막아놓는다고.


뉴욕의 MOMA가 생각나던 계단.



잠시 로비에 나와 카페에서 아이스라떼를 한잔 마신 후에야 살 것 같았다.



현대미술전시관은 고미술관과 다르게 밖을 볼 수있게 큰 통창들이 되어있는데

바깥에 심어놓은 자작나무들의 하얀 가지와 나뭇잎들이 바람에 싸하게 흔들렸다.

햇살은 점점 기울고 창문 프레임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아름다워서

안내원에게 작품 말고 창 바깥 풍경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작품이 아닌 내부에서 창가를 찍는것도 안된다고 한다.




룰이 있는 건 좋지만-

그닥 납득이 가지 않는 룰이었다.

작품을 찍는 것도 아니고, 그저 창밖을 찍겠다는 건데 이것까지 막을 필요가 있나.

뭐, 미술관 측에서야

관람객 통제 차원이나,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한다던가 하는 어떤 사유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화,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자 - 여기 이 공간에서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의 아름다움도 다 리움 소유의 것이야.

그러니까 너네는 돈내고 들어와서 이 자리에서만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어.

이 미술관에 걸려있는 비싼 작품들처럼 말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달까.




리움 전시관의 야외 정원.


야외 정원의 조형물.


가느다란 대나무로 둘러싸여있었다.



야외정원을 쭈욱 걸어 가장자리로 왔다. 

오후햇살에 뜨뜻하게 데워진 펜스에 기대니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은 시원하고, 펜스는 따뜻하고 나른한 기분이었다. 


나는 위 사진에 보이는 평상같은 벤치로 다가가 철퍼덕 누웠다.

어짜피 곧 폐관시간이고, 사람들도 없고 -

행여나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눈치볼 나도 아니고. 







Mondo grosso의 1974를 틀었다.

사실 아까 혼자 관람할때부터 계속 듣고 있었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 사이사이로 싸아아- 싸아아-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고 지나가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이 시원하고, 또 포근해서 좋았다.

이 서울 한복판에 복잡한 사람들 발소리도, 말소리도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곳에서, 

대신 대나무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내는 싸아아-싸아아- 한 소리가 들려오고

이제 점점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은 따뜻했다.

평화롭고, 평온했다.

한바탕 울고 지나간 후의 내 마음도 잔잔했다.



친구가 날 찾으러 올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사실 리움 미술관의 어느 작품을 보던 시간보다도

여기 이 야외 정원의 벤치에 누워 바람소리를 듣던 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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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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