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적막한 공간을 채우는 새벽이다.

그 선율 사이사이를 가벼운 키보드 소리가 치고 든다.

 

 

이미 자정이 넘어버리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깨어있으므로.

2014년 4월 26일. 거짓말처럼 1년이 지났다.

싸이월드의 작년 일기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4월 26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새삼스레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2013년 4월 26일의 일기에도 그렇게 써있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이 날을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른다고.

 

 

2013년 4월 26일.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던 날이다.

 

나는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마치 오늘 밤처럼, 나는 밤을 새워 나의 이 공간에 글을 썼다.

약속했던 미국 여행기의 마지막 편을, 벽에 등을 기대고 밤새 써내려갔다.

그리고 아침 해가 밝아올때쯤 마무리를 했다. 조금 어지럽기도 했다.

 

햇살이 화창했다.

나는 장미꽃 두송이를 사서 환한 대낮에 강남에 갔다.

합격발표시간은 5시였다. 하루종일 그 시각만을 기다린다는건 엄청나게 피를 말리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참 무덤덤했다.

시험을 치르던 5일 중, 어느 날부터 나는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었다.

시험이 끝났지만 개운하지 않았고, 홀가분해하는 친구들로과 떨어져있고 싶었다.

여러번 떨어졌을 때를 가정하고, 미리 그런 순간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그래서였는지, 떨어져도 괜찮다고.

나는 합격을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다.

 

 

강남에서 딱히 할게 없었다 .

시간이라도 때우는게 좋을 것 같아서 영화관엘 갔다.

아이언맨 2였는지 3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표를 사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발표가 임박해서였는지 아니면 스토리가 유치하지 못해서였는지

가뜩이나 영화에 집중이 안되고 시간만 지나가던 한 순간,

핸드폰 불빛이 번쩍번쩍 거렸다.

 

"이히 축하"

 

 

 

 

-

 

 

 

실감이 안났다.

붙어서 미치도록 행복하다기보다는,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무섭고 험난한 과정을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즐겁기도 하면서 괴로운 백수시절도 3개월정도 보냈다.

그러나 또 너무 힘들기 전에, 운명처럼 - 한 회사에 덜컥 입사를 했다.

행복했던 느낌으로 따져보자면 나는 변호사 합격발표가 나던 날보다 입사합격발표가 나던 날이

더 설레고, 기쁘고, 행복했던 것 같다

평소마시지도 않던 술을 엄청나게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었고, 동기언니오빠가 생겼고, 직장동료가 생겼다.

신입사원을 건너뛰고 회사생활을 시작한 탓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웃긴 사고도 많이 쳤다.

일이 없어서 답답하고 눈치보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나선 탓에 지금은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경험해보고 노하우도 쌓아가고 있다.

 

 

 

1년 사이에 나의 생활은 참 많이 바뀌었다.

길고 긴 20년의 학생생활을 잘 마무리 지었고, 사회인으로서의 새 장을 무사히 열었다.

마치 강남콩에 뿌리하나가 쏘옥 자라나듯, 그렇게 회사에 조금씩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회사원이라는 옷이 어색하고 서툴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배울 것 투성이다. 공부는 끝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울 것이 투성이라는게 또 나를 설레게 한다.

1년이 지나면 그때는 조금 더 익숙해져있을까. 조금 더 성장해있을까.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나는 행복한 1년을 보냈다고 믿고 싶다.

그 하루하루 사이에 우는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지만 그런 감정들을 다 묻을 수 있을만큼

성장하고 발전하고, 또 행복하고 감사한 1년이었다.

그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2014년의 나는 행복하다.

내게 주어진 기회와 여유와 시간과 건강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PS. 염색을 하려다 머리를 싹둑 잘랐다. 짧은 머리가 어색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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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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