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엔 모스크바 역 근처 갤러리아 백화점의 바클라잔에서 저녁을 먹고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오후 한나절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K와 J는 에르미타주 박물관(본관)을 관람하기 위해 들어가고

언제든, 맑은 날의 산책과 박물관 중에 고르라면 무조건 야외 산책인 나이기에 

(10년 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2시간을 채 못보고 뛰쳐나왔다.)


나는 혼자 남은 오후를 발길이 닿는대로 마음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며칠 전 스치듯이 지나갔던 토끼섬 너머로 가보겠다는 계획을 짜면서.

시작은 일단 궁전광장에서부터!





확실히 아침보다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도시는 바람의 도시였다.어찌나 바람이 많이 부는지 이리 저리 휘날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정신이...ㅠㅠ




겨울궁전 못지 않게 화려한 구 참모본부 빌딩. 




날씨가 정말로 쨍하고 뜨겁다. 

토끼섬이나 바실리섬에 가려는 목표를 세우고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여러 풍경에 마음을 뺴앗겨 자꾸만 목적지와 멀어진다. 

햇살을 좇아 걷다가 날 보았던 피의 구원 사원을 만났다. 

우중충한 하늘과 쏟아지는 비 아래서 만났던 피의 구원 사원은 어딘가 모르게 음침해보이기까지 했는데

햇살 아래의 피의 구원 사원은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만큼은 아니지만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로 나름 그만의 밝고 경쾌한 매력이 느껴진다. 



작은 다리 너머의 피의 구원 사원. 심지어 로맨틱해보여.................





참고로 가이드북에서는 넵스키대로에서 바라볼 때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써 있었는데

주관적인 경험으로는, 넵스키대로에서 그리보에도바 운하를 끼고 보는 모습은 썩 이쁘지 않다.

작은 운하 양 옆으로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고 피의 구원 사원이 반쯤 가려져 있어서

사진을 찍어도 피의 구원 사원에 시선이 가지 않고 심지어 주변의 빡빡한 풍경 때문에

사진이 전반적으로 지저분해보이는 느낌.



오히려 위의 사진 처럼

피의 구원 사원의 입구에서 길 하나 건너(넵스키대로의 맞은편)에서 작은 아치모양의 다리와 함께 보는 것이 

피의 구원 사원이 훨씬 집중되면서 이쁘게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 스팟에서 웨딩촬영도 하고 있었다!!

웨딩 사진 찍는 곳은 일단 이쁜 곳이 확실하다!!




피의 구원 사원을 배경으로 웨딩촬여을 하고 있던 신혼부부. 날씨가 맑아서 다행이에요. 축하해용 ♡






첫 날 축축한 풍경과 달리 쨍한 햇살 아래 (이름과 다르게) 사랑스러운 피의 구원 사원의 풍경 :-)

오래 있어서 다행이다. 짧게 있었으면 이 모습은 영원히 보지 못할 뻔 봤으니까.




성 바실리 성당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정교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피의 구원 사원

그 화려함과 정교함 때문에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사원의 분위기.





피의 구원 사원 앞 가판대에 늘어선 마뜨료시카 인형들. 너희들도 햇빛을 낭낭하게 받았구나.





원래는 피의 구원 사원을 지나 바로 토끼섬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나는 여름정원 옆의 마르스 광장의 정원을 지나다가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앉아버렸고, 

나는 목적지도 잊어버린 채 그냥 그 곳에 그렇게 눌러앉아버리고 말았다. 




인스타그램에나 올릴법한 사진도 찍어보고욤...




피의 구원 사원 근처는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한 발자국 떨어진 이 곳엔 

햇살을 즐기러 나온 가족과 연인, 그리고 나같은 방랑객만이

한가로이 오후를 즐긴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또 밀어오는 

이 변화무쌍한 하늘 아래 

도시는 빛에 잠겼다가 어둠에 가렸다가를 셀 수 없이 반복한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도시를 다 덮고도 남을 크고 두꺼운 구름이 무심히도 밀려온다.

그래도 괜찮다. 

또 바람에 사라져 갈 것을 아니까.


항상 밝을 수 만은 없다는 것을,

또 항상 흐리지만도 않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이 아주 빠르게 또 아주 천천히 이뤄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또 곧잘 잊어버리는 평범한 인생의 진리를

이 도시가 나에게 온 하늘의 해와 구름과 비람과 빗방울로 알려준다.


- 2016. 8. 9. Travel note in Saint Petersburg, Russia 



마음을 빼앗긴 풍경. 넓은 잔디밭과 푸른 하늘, 그리고 그 너머에 동그랗게 솟은 피의 구원 사원



비록 바실리 섬은 포기해야 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 






끝내 토끼섬, 그리고 바실리 섬에는 가지 못했다.

사실 마르스 광장에 자리를 펴고 앉을 때

이미 포기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내일 오전에 가지 뭐.......(과연......)



K와 J를 만나러 다시 에르미타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볼때는 몰랐는데, 대문을 지나 들어오니 겨울궁전 안쪽에 작은 안뜰이 있는데

분수도 퐁퐁 솟고 꽃도 피어있고 참 예쁘구나. :)



참 이쁜 풍경. 




머리 위에 후광이 번쩍번쩍.



관람을 마치고 난 K와 J와 만나, 다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갤러리아 백화점의 바클라잔에서 저녁을 먹었다.

박물관이 어땠냐고 물어보았더니, 작품은 아주 좋았는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집중해서 보기가 어려웠다고....ㅜㅠ

여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 엄청 많다..........ㅜㅠ

아침에 조깅할 때도 보면, 성이삭 성당 근처에 관광버스들이 어마무시하게 쏟아내고

에르미타주 뒷편에도 깃발 든 중국인 관광객무리로 정신이 없다.....ㅜㅠ



어쨌든, 운이 좋게도 우리는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시티투어버스 막차를 타고

옐리시예프 상점 맞은편에 있는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 내렸다.

이로써 오늘 시티투어버스는 티켓 1번으로 총 번을 이용했으니 아깝지는 않았다!



그제, 마린스키에서 본 발레 <백조의 호수>에 너무나도 감명 받은 나머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래 머무르는 김에 다른 발레 공연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 기간에 공연되는 발레는 <백조의 호수>밖에 없었다....ㅜㅠ

마린스키 극장에서 다시 볼까 하다가, 이왕이면 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엔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하는 발레 <백조의 호수>를 예매했다.

(좌석은 가장 싼 4층의 Side 좌석으로)





붉은색과 금색 톤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공연의 구성과 결말은 마린스키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나같은 발레를 잘 모르는 관람객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마린스키에서 보았던 발레가 훨씬 더 수준있었고 코스튬이나 무대연출이 더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알렉산드린스키에서 공연한 팀의 발레 실력이 전반적으로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팀보다 약한 것 같았고, 

코스튬도 너무 색조합을 화려하고 칼라풀하게 한 바람에 어린이용 발레 공연 같은 유치한 느낌.

심지어 4층에서 내려다보니 오케스트라가 한 눈에 보였는데, 

몇몇 연주자가 중간 중간 핸드폰을 하는 모습이 보여주어서 더 실망스러웠다.

(물론 자기 파트가 아니었지만서도 프로페셔널이라면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그냥 마린스키에서의 그 청초하고 처연한 느낌의 아름다운 모습만 머릿속에 남겨두었으면 좋았을텐데

약간 조악한 공연 관람으로 처음 보았던 마린스키의 공연까지 덧칠되는 것 같아 아쉬울 지경이었다.

다른 공연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백조의 호수>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




이렇게, 아침부터 조깅과 시티투어버스와 홀로 하는 산책과 발레 공연관람까지 빡센 일정을 끝내고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쉽게도 흘려보낸다. 

이제 내일이면 러시아와도 작별이다.

생각보다 할게 없는 것 같았는데, 어느 새 6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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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오늘의 일정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기 좋은 점 중 하나는, 여름궁전이나 예까쩨리나 궁전 말고는

모든 관광지들이 걸어다닐 수 있을만큼의 근거리에 오밀조밀하게 잘 모여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메트로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쾌한 공기로, 또 시원한 하늘로 우리를 맞아주던 오전과 다르게 

점심을 먹고서 관광을 시작하려하자 구름이 몰려들더니

기어코 빗방울이 토도독 토도독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소식은 밤부터였는데 일기예보보다도 더 빨리 비가 오다니 (ㅜㅠ)




우리는 넵스키대로를 건너 작은 물줄길을 따라 피의 구원 사원(Спас на Крови)을 향해 걸어갔다.

이름부터 살짝 스산한데 날씨까지 흐리니 괜히 한기가 솟는 그런 느낌.




그리보도에도바 운하와 피의 구세주 성당. 날씨때문에 더 칙칙해보인다. ㅠㅠ 





피의 구원 사원은 얼핏 그 모습이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과 비슷하지만,

성 바실리 성당이 장난감같고 조금 유치한듯 동화스러운 면모가 있다면

피의 구원 사원은 훨씬 더 엄숙하고 무게감있고 복잡하하고 정교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성 바실리 성당처럼 아기자기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일단 외관의 색부터가 조금은 톤 다운 되어 있다.



1883년부터 24년에 걸쳐 지어진 이 성당은 1881년 3월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테러를 당했던 자리에

세운 것으로 내부에는 당시 피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이지 러시아' p301 참조)






날씨가 안좋아서 안타깝지만, 6일이나 있었던 덕분에 화창한 모습을 또 볼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이제 내부로 들어가 볼까?

피의 구원 사원의 내부는 내벽과 천장가지 모두 모자이크화로 꾸며져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1층과 천장의 돔 사이에는 다른 층도 없는데 어쩜 저 높은 돔 끝까지 다 타일을 붙였을까.

그러면서도 이렇게나 화려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사람이 - 또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의 구원 사원 천장돔 한가운데의 모습!





높은 성당 내부를 가득채운 모자이크화. 성당 안에서는 모두 고개를 꺾어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샹들리에 불빛에 반짝이는 모자이크의 섬광.





예상보다 빨리 흐려지고 추워진 날씨 탓에 기분도 같이 가라앉아버렸다.

오늘 아침 모스크바역에서, 그리고 호스텔의 테라스에서 우릴 반겨주었던

그 상큼화고 화창한 날씨는 어디로 사라지고, 비가 뚝뚝 내리는 날씨가 된거지?

(그런데 이 도시에 6일을 있어보고 깨달았는데, 날씨 변화가 굉장히 빠르고 변덕스럽다.)




조금 슬프고 뾰로통한 마음으로 피의 구원 성당을 둘러보고서

(그리고 맑은 날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고) 나왔는데

여전히 비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도 없는데....ㅜㅠ




그래서 우리는 우선 카잔 성당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이 스타벅스는 창가에서 카잔성당이 한 눈에 보이기로 유명한 스타벅스이다. 

2층에도 카잔성당이 한 눈에 보이는 다른 카페가 있는데, 우리는 일단 스타벅스로 고고고.





비가 와서 많이 북적거리는 스타벅스. 세계 어딜가도 스타벅스는 참 비슷비슷하다.






운이 좋게도 창가석에 앉았다! 바로 저렇게 카잔성당이 한 눈에 보이는 멋진 뷰가 베스트인 스타벅스.

물론 따뜻한 카페라떼에 춥고 속상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





When you hold a cup of coffee, think of it's journey.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라떼로 마음을 녹이는 사이 비도 어느 정도 그쳤다.

날씨가 맑지 않아 야외에서 무언갈 하기는 그런데

또 시간도 저녁이 가까워져서 표를 끊고 들어가는 실내 관람을 하기에도 시간이 애매해서

우리는 넵스키대로를 따라 걸어 옐리세예프 상점(Магазин Купцов Елисеевых)에 가보기로 했다.




러시아 박물관 앞을 지나가다가 만난 푸시킨 동상 따라하기.





옐리셰예프 상점은 넵스키대로에 서있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1층의 식료품 겸 기념품가게라고나 할까.

원래 1903년에 연 가게인데 2012년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재오픈 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면 베이커리, 디저트류, 초코렛, 술, 치즈 등등 다양한 식료품들과 

그리고 선물하기 좋게 예쁘게 포장된 여러가지 기념 식료품등을 이쁘게 진열해놓고 있다.


가운데는 카페처럼 테이블이 되어 있어서 자리가 있다면(!)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관광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ㅎㅎ




Купцов Елисеевых의 약자. 그 뒤로 보이는 화려한 인테리어. 




음음. 뭘 사면 좋을까. 초코렛에 마음을 빼앗겼엉 ♡





이런 마카롱과 디저트류도 있고



러시아 보드카도 있고 참고로 엄청 비싼데 소주도 있음!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좀 그쳐서 네바강을 따라 크게 걸어 돌아가기로 했다.


고작 반나절의 경험으로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특유의 느낌보다도 커다란 유럽의 한 도시같았고

깨끗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던 모스크바에 비해서 호객꾼들도 많고 정비가 덜 된 느낌.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걸까.

결국 개인적인 취향과 성향의 차이인걸까?

나는 모스크바가 너무 좋았던 걸까?

여기도 날씨가 화창하면 더 나을까?



사실 이번 여행 일정을 짤 때, 다른 블로그의 얘기들을 많이 참조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더 좋고 볼게 많다는 글들을 보고

모스크바 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6일로 일정을 짰는데,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 5일을 더 있으려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피곤해졌다. 

게다가 일기예보는 일주일 내내 비구름이고. 



아니야. 이제 어느새 여행5일차.

시차도 없이 3일을 풀로 여행했고, 야간열차도 탔고 조금 지칠때가 되었어.

내일은 오후에 해가 조금 날것 같아서 그 유명한 여름궁전(뻬쩨르호프)에 가기로 했는데

과연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그런 화창한 날씨의 반짝이는 황금분수를 볼 수 있을까.


기대반, 걱정반. 

그렇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첫날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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