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4일 여행 2일차

 
 


이번 프랑스 여행은 꼭 여행기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런저런 일에 우선순위가 밀리다보니 올 해는 커녕 내년 여름여행 전까지도 다 못 쓸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최근에 좀 힘든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잘 해결되면서 이런 저런 의욕도 같이 생긴 참에 프랑스 여행을 다시 복기해본다.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시차 때문에 오늘도 아침 일찍 깼다. 
호텔 근처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파리 시내로 출발. 
오늘 일정은 도리가 가보고 싶어한 마레지구/보주광장, 그리고 오후 5시에 예약된 오랑주리 미술관 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 
지금 지도를 캡쳐하면서 보니 파리에 갈 곳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왜 이렇게 아무 일정도 계획을 안했지? 싶은...ENFP의 여행 😅
 


우리는 RER을 타고서 시테섬에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마레지구까지 걸어가면서 찬찬히 풍경을 즐길 예정.
이른 아침인데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드니에 가는데 내내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속 쓰린 사람)

 

시테섬 궁전 시계탑과 그 뒤에 콩시에르 주리, 그리고 노트르담 다리까지

 

시테섬과 센 강, 그리고 싱그러운 가로수까지, 파리가 이렇게 이쁜 도시였던가.

 

건물은 낮은데 나무는 키가 커서 도시가 더 예쁜 것 같다.

 


우리는 시테 섬을 건너 퐁피두 센터를 지나 마레지구까지 걸어갔다가 보주 광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리가 어디서 본 건지, 보주 광장을 알아와서는 자신있게(?) 이 곳으로 인도했는데, 오 나쁘지 않아.

보주광장(Place des Vosges)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광장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사각형의 작은 공원 혹은 정원 같은 모습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 건물느낌과 조금 다른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외벽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작은 동네 공원 같은 느낌의 보주 광장

 

 


아침에 가까운 오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햇살이 일광소독 급으로 너무 뜨거웠다.
이제 겨우 6월 중하순인데 이렇게나 해가 뜨겁다고?
파리 근처 브뤼셀에 살고 있는 현석오빠에게 물어봤는데,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번 주 이상기온 떄문에 엄청 덥다고.. ㅠㅠ


저 햇살 속을 거닐 자신이 없어 보주 광장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보니,
여기 보주 광장에는 (다른 파리의 관광명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보다 파리 주민들이 더 즐겨 찾는 것 같았다.
이 뜨거운 날씨에도 어린 아기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놀고 있는데 평화롭고 또 행복해보였다.


보주광장 근처를 멤돌다가, 근처에 무료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름은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이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프랑스 유력 가문인 웬델 집안 소유의 카르나발레 저택을, 파리 시의회가 매입해서 박물관으로 재단장했다고.
60만점의 소장품 가운데 16~19세기 자료들이 많아서 그 시절 파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 조각상이 있는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안뜰

 

1층에 들어가면 예전 파리 상점에 걸렸던 간판들을 모아놓았는데 앤티크하고 이쁘다.

 

프랑스 역사 잘 모르지만 열심히 보는 (척) 나..

 


무료라고 해서 솔깃하기도 했고, 또 너무 뜨거워서 더위를 피할겸 들어오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역사를 잘 모르니, 걸려있는 그림들과 초상화, 소장품들을 보아도 잘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한가지 기억에 남는 건, 지금 파리의 로맨틱한 이미지에 한 몫을 하는 파리의 많은 다리들 위에 사실 3~4층 짜리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1800년대 후반 파리 개조 사업 때 다리도 함께 정비하면서 다리 위에 있는 건축물들을 쓸어(?)버렸나 싶다.

 

1556년 시테섬 지도 - 잘 보면 다리를 따라 건물들이 지어져있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을 슉슉 둘러보고, 근처에 평점이 높은 한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행하면서 꼭 한식을 먹어야 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나이들었나...어릴 때에 비해서는 한식이 땡기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다. ㅠㅜ

 

퀄리티가 좋았던 파리 순그릴의 돌솥비빔밥

 


점심을 먹고 나니, 2시 정도였는데 햇살이 너무 뜨거운데다 오전 내내 많이 걸어서 휴식이 절실해졌다.
20대였으면 꺾이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을텐데
40대에 가까워지고 있는 30대 후반은 바로 꺾였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고 꺾이는 마음...
오랑주리 미술관이 5시 입장이었는데 그 때까지 카페 같은데서 죽칠까하다가 숙소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 쉬다 나오기로 했다.

RER을 타러 가기까지도 덥고 지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땡볕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

그냥 걸어서 RER 역까지 가자는 나와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도리 사이에 살짝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국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와서 우리는 걸어서 RER을 타러 갔다.

그 동안 여행을 하면서 숙소를 한 번 출발하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고나서야 돌아갔기 때문에
숙소의 위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었다.(내 여행에 중도 복귀란 없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 여행을 하면서 새삼 숙소가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번에는 숙소를 못구해서 그런거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숙소에 가서 도리는 한 숨 낮잠도 자고, 나는 일기도 쓰고 (그런데 이 일기장 지금 못찾겠다 ㅋㅋ) 전열을 재정비해서
5시 예약시간에 맞춰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서.

Musée de'l Orangerie

 

이 모네의 수련 연작이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오픈할 때 가거나 끝나기 전에 가면 조금 한적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오후 5시로 예약하고 갔는데도, 모네의 수련을 전시한 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게다가 다들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틱톡과 인스타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정신이 사나울 정도. 
이 그림과 이 공간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느낌과는 정반대의 관람 분위기 때문에 작품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진심으로 문 닫는 시간이 되어서야 텅 빈 모네의 수련 연작관

 

자연광이 쏟아지는 하얀 전시실에 걸린 수련 연작.
아직 해가 떠 있건만 그늘이 져 캄캄해 보이는 연못, 그리고 그 수면 위에 비친 몽글몽글한 구름의 그림자.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였을까.
이 수련 연작을 그린 지베르니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모네가 보았을 풍경이었을지 모네의 작품을 보고 상상하게 된다.    
수련 연작 자체는 상상했던 것만큼 압도적이고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적이었지만 . 
틱톡이나 인스타에 올릴 수련 앞에서의 자신의 예쁜 모습을 담으려고 수십번 작품 앞을 거닐며 영상을 찍던 사람들 때문에 감동이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후 6시가 지났는데도 한낮같은 튈르리 정원의 풍경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을 보고 나와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보이는 튈르리 공원에서 잠시 멍을 때렸다.  
수백년 전에 지은 저 고풍스러운 건물과 2023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 
고궁, 유적지 같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현대적인 건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묘한 이질감이 드는 풍경이다.    
그래서 파리가 많은 이들에게 로망같은 도시인가 싶기도 하고. 

 

9시가 넘어야 조금씩 기울어지는 햇살

 

여유로운 여름날의 센강의 풍경

 

파티가 한참인 센강의 저녁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저녁식사를 하고서 RER을 타러 가는 길에 센 강을 따라 한참 걸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9시를 넘어가는데, 세상은 이제 막 오후 5시가 되어가는 것 처럼 밝고 환하기 그지 없었다. 
여름 오후의 센 강에는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또 야외 펍에는 맥주 파티를 하는지 힙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파리에 세 번째 오는데, 이런 센 강의 분위기는 또 처음이네.  
뭐랄까. 파리는, - 이 표현은 여러 모로 별로이지만- 지지 않는 태양같은 느낌이다.
도시도 흥망성쇠가 있어서 뜨는 도시가 있고 지는 도시가 있고, 한 때 핫했던 도시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촌스러워지기도 하는데
파리는, 언제와도 핫하고 힙하고 세련된 느낌. 2008년 처음 왔을 때보다도 더 힙해진 느낌이라니. 놀랍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더럽다, 위험하다는 얘기에 파리에 큰 미련이 없었던 도리도  
이틀이긴 했지만 파리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날 센강에서 느꼈더 분위기에. 
나중에 파리에만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여행해보고 싶다고.

  
이렇게 아주 짧은 이틀 간의 파리 일정은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에 숙소로 가는 RER이 한참을 오지 않아서 지칠대로 지쳐 다시는 꼭 도심 한가운데 숙소를 잡자는 교훈과 함께.  
내일은 이제 고성들이 몰려있는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제부터 진짜진짜 프랑스 로드트립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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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3일 여행 1일차 

 

 

 

어제 (프랑스 현지 시간 기준) 초저녁부터 잠든 것도 있고 한국과의 시차 탓에 새벽 5시 좀 넘어 잠에서 깼다. 

"도리야, 일어나. 우리 에펠탑 보러 가야해"

"....지...지금???.............(도리살려)"

 

이번 2주 간의 프랑스 일정에서 파리에서 머무는 시간은 단 이틀.

나는 이미 파리가 세 번째이고, 도리는 파리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어디서 파리는 더럽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길 들어왔음)

그래도 도리는 프랑스 자체가 처음이어서 관광객 모드로 파리를 집중적으로 이틀동안 돌아보기로 했다.

 

파리에서 가장 첫 번째로 보러 간 것은, 바로 에펠탑(Eiffel Tower)

일찍 일어난 것도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바글바글해진다고 해서 에펠탑부터 가보기로 했다.

여러 스팟 중에서도 에펠탑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ero)으로 바로 갔는데 

아침 7시 반인데 벌써부터 에펠탑을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으려는 커플들과 스냅사진 작가들이 각자 한 자리씩 차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아침 일찍 에펠탑에 오는게 가능할 줄 알았으면, 스냅사진 찍을걸 그랬나? ^_^........

 

 

 

아침햇살에 싱그러운 공원과 저 너머의 에펠탑

 

에펠탑 앞에서 포즈 고민 중.................

 

 

금요일 아침 8시 즈음의 에펠탑 주변은, 촉촉하고 상쾌하고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도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우리처럼 일찍 여정을 시작한 몇몇의 관광객들 외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어제의 피로는 다 날아간 듯 했고 날씨도 화창해서 시작이 좋은 느낌이었다. 

도리는, 에펠탑은 안봐도 된다더니 막상 보고나니 생각보다 엄청 크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도리는 일단 뭐든 다 안봐도 된다고 하면서, 막상 보고 나면 다 좋다고 하는 스타일)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세느강을 따라 산책하듯이 튈르리 공원을 지나 루브르 박물관까지 갔다.

우리는 나비고 카드가 있어서 사실 교통편이 무제한이었지만 파리는 걸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파리에 세 번째 왔지만, 이런 초여름 파리의 싱그러운 모습은 또 처음인걸?

 

이번에 파리에 가면 꼭 부고 싶었던 튈르리 정원의 풍경- 정말이지 동화같고 예쁘다.

 

 

점심시간에 가까워지기도 했고, 파리의 Must visit place 중 하나여서 그런지 루브르 박물관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인기는 역시 여전하구나!

하지만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인증샷 하나씩만 찍고 쿨하게 입장은 포기했다. 🤣

2008년, 이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 왔을 때, 나란 인간은 박물관 관람보다 풍경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까지 입장을 했다가, (내내 우중충하던 날씨가) 갑자기 맑게 개이자 못참고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도리는 꼭 안가도 그만이라는 굉장히 자유로운(?) 여행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못 들어간다는 아쉬움보다 저 긴 인파와 함께 줄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이런 인생샷도 (가끔) 척척 찍어주는 도리가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증샷을 찍고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파리에서 파는 쌀국수가 진짜 맛있다고. 

점심을 먹고나서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갔다.

오르세 미술관도 처음은 아니라서, 유명한 미술 작품들 위주로 슉슉슉 보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이번 여행 일정 중에 엑상프로방스(확정)와 아를(미확정)이 있어

프로방스 지역을 그린 세잔과 고흐의 그림들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서 보았다. 

 

 

세잔이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의 전경. 나 며칠 뒤에 이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개인적으로 나는 고흐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너무 유명하고 많이 접해와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원작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고흐가 많은 고민을 하며 그려 넣었을 거친 붓터치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살짝 받았다. 

이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면 붓터치의 결이 보이는 평면적인 그림이지만, 

실제로 보면 이 붓터치의 두께감과 높이 때문에 그림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왜 사람들이 이 그림을 참 좋아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미술관에는 선생님과 함께 현장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이들이 그림 앞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이런 명작들을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살짝 부러웠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생 샤펠 성당(Sainte-Chapelle)이 있는 시테 섬으로 왔다. 

예전에 여행 할 땐, 노틀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 워낙 유명해서 시테 섬에 생 샤펠 성당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2019년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난 뒤로는, 생 샤펠과 콩시에르주리를 묶어서 많이 관광하는 것 같았다. 

 

 

시테섬의 풍경

 

노틀담 성당 근처의 크레페 가게 "La Creme de Paris"

 

 

개인적으로 크레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무려 2008년 (몇...몇년 전인가...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정처 없이 세느 강을 따라 걷다가

아마도 시테섬 근처이지 않았을까 싶은, 작은 창이 밖으로 뚫려있는 크레페 가게를 발견했었다. 

크레페 하나를 주문하자 흑인 주방장(?)이 동그란 철판에 반죽을 살짝 두르고 긴 막대기 같은 것으로 휘휘 얇게 펴 구운 다음

그 위에 누텔라를 발랐던가 초코를 발랐던가, 그리고 부채꼴 모양으로 착착 접어 주었는데

갓 구워낸 파르페가 바삭하면서도 촉촉하게 정말 맛있었었다. 

해질녘의 그 어둑어둑했던 그 시간, 파리에 있는 내내 우중충 해서 으슬으슬 했던 날씨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만큼. 

그 뒤 파리에 올 때마다 크레페를 시도해보지만, 기억 속 크레페만큼 감동을 주는 크레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생샤펠 성당은 시테섬에 위치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인 성당인데, 

말 그래도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하기는 하지만 성당 규모도 꽤 작고

그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오만군데 성당을 둘러본 나에게는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생샤펠 성당

 

 

생샤펠 성당 관람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르퀘이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을 3주 앞두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그 때부터 숙소를 찾아봤는데 

파리 안의 웬만한 가격대의 호텔은 다 완판이 되어서 파리 내에서는 호스텔을 가거나 초고급 호텔을 가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ㄷㄷㄷㄷ

그래서 가격대와 룸 컨디션을 고려해서 찾은 곳이 파리 남쪽 아르퀘이 지역의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파리 아르퀘이 

파리 관광지로부터는 약 7km 정도 떨어져있는데, 다행히 호텔이 RER 역에 거의 바로 붙어있어서 

공항에서부터도 RER선을 타고 한 번에 오갈 수 있고, 또 노틀담까지도 RER로 20여분 걸려서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성수기에 근접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1박에 거의 30만원 가까이 했는데, 지금은 가격도 훨씬 괜찮네.

 

지도로 보면 생각보다 멀어보이지만...숙소에서 노틀담까지 강남역에서 잠실역 정도 거리다.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나 하루종일 파리를 헤메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니 밤 9시였다. 😅

오늘 하루에만 무려 2만 7천보를 걸었다. 내 도가니 살려!

밤 9시지만 날은 이제야 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렇게 해가 긴 여름에 여행하는 것도 축복이다.  

피곤하긴 했지만, 파리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아서 내일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우리 내일 만나요. Bonne nuit😍 

 

 

6월 23일, 9시 반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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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2일 출국

우리가 탔던 에어프랑스. 에어프랑스도 12년만이네.

 

 

나이가 들기는 제대로 들었나보다. 고작 3개월 전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다.

여행기를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다가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ㅠㅠ.......

 

사실 올해 여름휴가는 오랫동안 미정인 상태였다. 늦어도 봄에는 여행지와 비행기표까지는 정해두는 나답지 않게.

그도 그럴것이, 모든 걸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던 싱글인 때와 달리 이제는 도리(남편)의 스케줄도 중요해졌기 때문인데

도리가 올 초부터 이직 준비를 하고 있어서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의 장점 : 같이 여행 갈 사람이 있다😀 vs. 결혼의 단점 : 그 사람과 맞춰야만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도리가 확정적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갑자기 3주 뒤에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때까지도 딱히 떠오르는 여행지가 없었는데 (내 취향 여행지는 결혼하기 전에 다 돌아다녀버렸.....................)

갑자기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 정원과 돌로 지은 프랑스 주택에서 느긋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뽐뿌가 와서

이번 여름 휴가 여행지를 프랑스로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직 새벽 공기는 서늘하던 6월 하순, 우리는 서울을 떠나 무려 14시간을 날아 파리에 도착했다. 

 

* * * * * 

 

12년 만에 도착하는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은,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특히 한국인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12년 전만해도 중국인 취급을 받았었는데, 공항의 직원들은 우리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주고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_@ 이것이 BTS와 블랭핑크의 힘인가요.............? 요즘 해외에서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졌다더니. ㄷㄷㄷ

하지만, 이 기분좋은 파리의 첫인상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입국심사 줄에서도, 나비고 카드를 사는 창구에서도 비효율적인 일처리로 어마무시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 외국인들이 항의하는 지경이었는데 프랑스 직원은 태연하게 "이게 바로 프랑스야"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프랑스는 이랬었지.

무얼 해도 너무 오래 걸리는 일처리 때문에 여행 일정이 의도치 않게 질질 늘어지던 경험과

미묘한 인종차별이 그동안 프랑스를 여행지로 선택하는데 기피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두시간여만에 공항을 빠져나와 공항철도를 1시간 가량 타고서

(아참, 공항철도 의자 상태를 보고 도리와 나는 진짜 기겁을 했다. 정말 앉기 싫을 정도....ㅠㅠ)

파리 바로 아래 아르퀘이(Arcueil)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땐, 정말이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출발전 3시간 + 비행 14시간 + 파리공항 2시간 반 + 숙소 이동 1시간 .......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저녁도 스킵하고 바로 뻗어버렸고, 도리만 호텔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이 들었다. 

제대로 된 여행은 내일부터!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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