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3일 여행 1일차
어제 (프랑스 현지 시간 기준) 초저녁부터 잠든 것도 있고 한국과의 시차 탓에 새벽 5시 좀 넘어 잠에서 깼다.
"도리야, 일어나. 우리 에펠탑 보러 가야해"
"....지...지금???.............(도리살려)"
이번 2주 간의 프랑스 일정에서 파리에서 머무는 시간은 단 이틀.
나는 이미 파리가 세 번째이고, 도리는 파리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어디서 파리는 더럽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길 들어왔음)
그래도 도리는 프랑스 자체가 처음이어서 관광객 모드로 파리를 집중적으로 이틀동안 돌아보기로 했다.
파리에서 가장 첫 번째로 보러 간 것은, 바로 에펠탑(Eiffel Tower).
일찍 일어난 것도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바글바글해진다고 해서 에펠탑부터 가보기로 했다.
여러 스팟 중에서도 에펠탑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ero)으로 바로 갔는데
아침 7시 반인데 벌써부터 에펠탑을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으려는 커플들과 스냅사진 작가들이 각자 한 자리씩 차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아침 일찍 에펠탑에 오는게 가능할 줄 알았으면, 스냅사진 찍을걸 그랬나? ^_^........
금요일 아침 8시 즈음의 에펠탑 주변은, 촉촉하고 상쾌하고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도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우리처럼 일찍 여정을 시작한 몇몇의 관광객들 외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어제의 피로는 다 날아간 듯 했고 날씨도 화창해서 시작이 좋은 느낌이었다.
도리는, 에펠탑은 안봐도 된다더니 막상 보고나니 생각보다 엄청 크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도리는 일단 뭐든 다 안봐도 된다고 하면서, 막상 보고 나면 다 좋다고 하는 스타일)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세느강을 따라 산책하듯이 튈르리 공원을 지나 루브르 박물관까지 갔다.
우리는 나비고 카드가 있어서 사실 교통편이 무제한이었지만 파리는 걸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점심시간에 가까워지기도 했고, 파리의 Must visit place 중 하나여서 그런지 루브르 박물관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인기는 역시 여전하구나!
하지만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인증샷 하나씩만 찍고 쿨하게 입장은 포기했다. 🤣
2008년, 이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 왔을 때, 나란 인간은 박물관 관람보다 풍경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까지 입장을 했다가, (내내 우중충하던 날씨가) 갑자기 맑게 개이자 못참고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도리는 꼭 안가도 그만이라는 굉장히 자유로운(?) 여행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못 들어간다는 아쉬움보다 저 긴 인파와 함께 줄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증샷을 찍고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파리에서 파는 쌀국수가 진짜 맛있다고.
점심을 먹고나서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갔다.
오르세 미술관도 처음은 아니라서, 유명한 미술 작품들 위주로 슉슉슉 보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이번 여행 일정 중에 엑상프로방스(확정)와 아를(미확정)이 있어
프로방스 지역을 그린 세잔과 고흐의 그림들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서 보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흐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너무 유명하고 많이 접해와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원작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고흐가 많은 고민을 하며 그려 넣었을 거친 붓터치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살짝 받았다.
이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면 붓터치의 결이 보이는 평면적인 그림이지만,
실제로 보면 이 붓터치의 두께감과 높이 때문에 그림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왜 사람들이 이 그림을 참 좋아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미술관에는 선생님과 함께 현장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이들이 그림 앞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이런 명작들을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살짝 부러웠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생 샤펠 성당(Sainte-Chapelle)이 있는 시테 섬으로 왔다.
예전에 여행 할 땐, 노틀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 워낙 유명해서 시테 섬에 생 샤펠 성당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2019년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난 뒤로는, 생 샤펠과 콩시에르주리를 묶어서 많이 관광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크레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무려 2008년 (몇...몇년 전인가...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정처 없이 세느 강을 따라 걷다가
아마도 시테섬 근처이지 않았을까 싶은, 작은 창이 밖으로 뚫려있는 크레페 가게를 발견했었다.
크레페 하나를 주문하자 흑인 주방장(?)이 동그란 철판에 반죽을 살짝 두르고 긴 막대기 같은 것으로 휘휘 얇게 펴 구운 다음
그 위에 누텔라를 발랐던가 초코를 발랐던가, 그리고 부채꼴 모양으로 착착 접어 주었는데
갓 구워낸 파르페가 바삭하면서도 촉촉하게 정말 맛있었었다.
해질녘의 그 어둑어둑했던 그 시간, 파리에 있는 내내 우중충 해서 으슬으슬 했던 날씨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만큼.
그 뒤 파리에 올 때마다 크레페를 시도해보지만, 기억 속 크레페만큼 감동을 주는 크레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생샤펠 성당은 시테섬에 위치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인 성당인데,
말 그래도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하기는 하지만 성당 규모도 꽤 작고
그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오만군데 성당을 둘러본 나에게는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생샤펠 성당 관람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르퀘이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을 3주 앞두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그 때부터 숙소를 찾아봤는데
파리 안의 웬만한 가격대의 호텔은 다 완판이 되어서 파리 내에서는 호스텔을 가거나 초고급 호텔을 가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ㄷㄷㄷㄷ
그래서 가격대와 룸 컨디션을 고려해서 찾은 곳이 파리 남쪽 아르퀘이 지역의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파리 아르퀘이
파리 관광지로부터는 약 7km 정도 떨어져있는데, 다행히 호텔이 RER 역에 거의 바로 붙어있어서
공항에서부터도 RER선을 타고 한 번에 오갈 수 있고, 또 노틀담까지도 RER로 20여분 걸려서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성수기에 근접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1박에 거의 30만원 가까이 했는데, 지금은 가격도 훨씬 괜찮네.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나 하루종일 파리를 헤메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니 밤 9시였다. 😅
오늘 하루에만 무려 2만 7천보를 걸었다. 내 도가니 살려!
밤 9시지만 날은 이제야 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렇게 해가 긴 여름에 여행하는 것도 축복이다.
피곤하긴 했지만, 파리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아서 내일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우리 내일 만나요. Bonne 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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