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가는 길

■ 삶/II. 삶 2016. 6. 19. 18:22

나에겐 할아버지뻘 같으셨던 첫째 큰이모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듣고
온 가족과 막내이모 가족들까지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서 진주에 내려갔다.
편도 4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가 지루할까 싶어 책을 2권이나 챙겼지만
나는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멀어질 수록 부산스러운 마음은 복잡스런 도시의 풍경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나의 눈길은 차창 밖의 푸르른 산과 논과 밭의 풍경에 머물렀다.

빽빽한 건물과 자동차와 사람들 대신
온통 연녹색 나무로 뒤덮인 자연의 평화로운 풍경이 평온과 안정을 선물한다.
뭘 하지 않고서 이렇게 가만히 창 밖 풍경을 보는 것도 참으로 좋구나.
가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서 서울을 벗어나볼까 싶기도 했다.

요즘 도시에서의 삶에 싫증을 너머 약한 혐오의 느낌까지 일고 있다고 해야할까.
높고 정신없는 건물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내달리는 차들이, 곳곳에 치이는 사람들이 밉다. 답답하다. 싫다.

이름도 모를 작은 강이 잔잔하게 흐르는데
이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갈까?
어떤 상상을 한다.
여기 어디 작은 집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사는 상상.
햇살에 눈뜨고 달빛에 잠드는 상상.
변화와 트렌드에 뒤쳐지고 삶은 다소 밋밋하겠지만
트렌드나 유행을 좇을 필요도 없고, 매일매일 달라지는 자연을 가꾸며 살테니 나름 다채롭겠지.
나는 시간에 쫓기며 빨리 가지 않아도 될 거고 원하는 곳에 얼마가 걸리든 천천히 걸어가면 될텐데.
길 거리를 걸어다니는 모델같은 여자들을 보며 오늘 먹은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지 않아도 내 몸 하나 건강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을텐데.
보기에 이쁘지만 자극적인 음식보다 투박해보여도 건강한 음식을 매 끼니 챙겨먹고 싶은데.

이런 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가지 않을까.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덜 신경쓰고 덜 치이고 살 수 있다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자연의 흐름과 빛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 더 가지고 조금 더 빠른 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을텐데.

도심에 지친 정신이 초록빛 상상을 한다.
하지만 상상도 결국 사람사는 일이야.
라는 나의 현실적인 자아의 목소리는 잠시 눌러두고 싶다.

왜냐면 난 이제 좀 그러고 싶어.
마음과 정신이 여유를 주고 싶어.
빠르게 말고 천천히,
편하게 말고 불편해도 바르게,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고 싶어.

'■ 삶 > II.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way home.  (0) 2016.07.17
내 삶을 열렬히 II.   (2) 2016.07.09
우리 엄마  (0) 2016.06.15
행복에 관하여  (2) 2016.06.14
키스하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냐  (0) 2016.05.31
Posted by honey,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