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을, 마치 1월 1일처럼 시작하려고 했던 나의 야심찬 계획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기증과 구토로 다 망가져버렸다.
일어났을때부터 굉장히 어지러웠는데 결국 밥 몇숟가락을 꼭꼭 씹어먹다가
풀썩, 쓰러져버려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쌕쌕거려야 했다.
어제는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괴롭더니
오늘은 몸이 아파서 이렇게 괴롭다니. 정말 가지가지 한다.
몇 숟가락 안되는것마저 얹히는 것 같아서 소화제를 먹었는데
소화제가 약빨을 발하기도 전에 죄다 토해버리고는
기진맥진해서 그냥 다시 쓰러져버렸다.

가끔은 이렇게 시름시름 아팠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면 비참한 기분이라던가, 외로운 기분이라던가, 답답한 기분 따위가
마음의 병 때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몸이 아파서라는 납득이 가는 이유가 생기니까.
어린애같은 생각인거 알지만, 가끔 한다. 가끔.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면서
어이없게 때때로 있는 힘마저 다 앗아가버리기까지 한다.
매일매일을 내 힘을 빼앗아가는 추억과 싸우면서 사는 이 기분.
없어져 가는 힘 대신, 어디선가 자꾸자꾸 힘을 끌어와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고등학교때도 안배운 미분적분배우러 경영대 가던 2학년 2학기 가을날.



우연히 책상앞 씨디꽂이에 꽂혀있던 사진봉투를 발견했다.
작년 겨울에 (반강요에 의해) 졸업 선물로 받았던 학부시절의 내 사진들.
아주 까마득한 옛날인데도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난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나도, 몇년도였는지 무슨 날이었는지 어디었는지 뭘 먹었는지 이런 것들.
 사진에는 모든 기억을 다 불러일으키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
컴퓨터파일처럼 폴더정리가 된 것도 아니고, 날짜별로 맞춰져 있는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들쭉 날쭉한 날짜들도, 연도도 상관없이 다 기억이 난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가
아 - 정말 추억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무 힘도 없어야 추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이기 때문에 아무 힘이 없는게 아니라,
아무 힘이 없어야 추억이 되는 거였다.


홍대 일공육에 처음 간 날. 2학년 늦가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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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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