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os!

■ 삶 2010. 1. 8. 00:18


드디어 내일이다.
비록 Pre-session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일부터는 북악산 기슭이 아닌, 관악산에서
아침9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 대학 1학년이후 단 한번도 없었던 주 5일로 수업을 듣는다.
이건 정말 시작에, 그리고 아주 개껌에 불과하겠지.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가는 것은 항상 두려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참 이상한 일이지,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 다른 학교에 다른 전공을 공부하러 가는 것도 -
모두 내가 잘 모른 새로운 세계로의 발딛음인데
왜 전자는 두려움1%에 기대감99%이고, 후자는 두려움 99%에 기대감1%이지?

다들 그만한 자격이 있으니 가서 잘 해낼꺼라고 다독여주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미리부터 너무나도 겁을 집어먹고 시작도 안한 학교생활에 질려있다.


그동안 앞으로의 3년+알파는 내가 외고에서 보냈던 3년과 같을거라고 생각하며
한번 잘 지나쳐 왔으니 그 경험과 저력으로 또 앞으로의 3년을 잘 보낼 수 있을거라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런데 참 당황스럽게도, 대학입학 후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는게 재미있었어요.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자신만만했는데
그 재미있었고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그 과정을 또 한 번 더해볼라치니
갑자기 그 껌껌하고 오리무중이었던 터널을 어찌 지났었나 눈앞이 다 캄캄하다.


2002년 3월 5일 새벽의 다이어리에 적힌 나의 일기를 보면
외고 입학식을 앞두고 떨리고 설레는 16살의 멋모르고 철없던 나의 다짐과 각오들이 반듯반듯 적혀있다.
3년을 죽은듯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면서도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곳곳에 묻어나니까.

그때도 나는 참 많이 겁을 먹었었다.
홀로 경기도에서 대전으로 진학하는 거라 대전아이들의, 그리고 외고아이들의 수준이 어느정도일지
또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잘 버텨내고 따라갈 수 있을지 전혀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고
나는 따른 선수학습과정 없이 중학교때의 높은 내신으로 외고 7개과 중에 가장 치열했던 중국어과에 덥썩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입학하고 보니 모의고사 대전시 1등 같은 괴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17일 뒤인 3월 22일 일기에는, 처음 겪어보는 반 아이들과의 실력차와 그로인한 자신감 상실로
극 우울감과 자기 비하에 시달리는,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일기가 휘갈겨져 있다.
그때도 배짱 따위는 없었나보다. 까짓거 다 이겨버릴 수 있다라는 그 정도의 배짱.
고작 잘 할 수 있을꺼란 귀여운(?) 다짐들이 적혀있을 뿐.
그런 외고생활에 적응하는데 초반 적응하는데는 반년, 그리고 완전히 적응하는데는 1년이 걸렸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뭔가 성적에 대한 중압감이나 친구들과의 경쟁보다는,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나 애정(?)등의 문제로 관심분야를 돌렸으니까.


한 번 해봤는데 뭐가 또 이렇게 두려운지 모르겠다.
한 번 해봐서 이렇게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겁도 없었던 시절에는 무작정 뛰어들 패기라도 있었는데
좋은 결과로 잘 포장해놨던 과거들속에 삐죽삐죽 숨어있는 작은 생채기들이 똑같은 상처를 또 받을꺼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경험들로 더 단단해지는 줄로 믿었는데, 그리고 각종 기업과 대학원 자소서에 그렇게 성장했다고 써놨는데
오히려 너무 많이 알게 되서 겁먹은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것만 같다.

2002년 3월의 나는, 새 친구들, 새 담임선생님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설레고 있었는데
2010년 1월의 나는, 새 친구들과 새 교수님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에 예민해하고 있다.
편하게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데 이젠 나이가 있다보니 사람들 만나는것에 더 조심스러워지고 자꾸 내 본 모습을 숨기게 되는것 같아.


요즘 자꾸 연애도 아닌 '결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그 살떨린다는 과정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평생을 내 지원자가 되어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평생 믿고 의지하고 또 함께할 사람이 응원해준다면, 그 아무리 살떨리는 공부과정을 이수한다해도
나는 꾹 참고 우리둘이 함께 그려놓은 미래를 위해서 기꺼이, 아주 즐겁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해줬으면 하는 사람은 있는데, 그건 아마 0.00001%의 가능성?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드는구나.
자야지. 내일 첫날부터 졸아서 찍히지 말고-
두려움만 백만개라도, 앞날이 깜깜해도- 묵묵히 걸어나가야지.
19살의 내가 하루하루를 감사해하며 괴로웠던 3년의 기억까지도 모두 행복했었다고 했던것처럼
27살의 나도 하루하루 감사해하며 행복해하며 앞으로 3년의 기억들 모두 가치있었고 보람찼다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너무 겁먹지 말고 가자. 가자. V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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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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