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1일
세계여행 제 42일 째 (3) 
Venezia, Italy





맞은편의 주영오빠네 기차 문이 닫혔는데, 닫혔는데, 닫혔는데.
헉.
기차 문 너머로 주영오빠가 갑자기 휙 등을 돌리더니 왠 한국인 여자들이랑 말을 하기 시작했다.


1분전까지 우리랑 헤어져서 혼자 다니면 심심해서 어떡하냐고 죽을 상을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또 저 칸에 한국인 여자들이 타고 있어서.........................................................
오빠가 심심하게 혼자 다니지 않게 된 건 다행이었지만, 왠지;; 왠지 모를 서운함이...-_-......


어쨌든, 드디어 우리 기차도 출발하고 승무원이 올라타 표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제일 첫번째 검사했던 남자가 무임승차였나보다.
난색을 하더니 결국 주민증 같은걸 보여주고 뭘 적고....
항상 유레일패스만 쓰던 우리도 패스를 하루 아끼려고 1유로짜리 표를 사놔서 다행이었다.
무임승차한 사람에게 혼쭐을 내준 역무원이 우리에게 표를 요구했다.
나와 시은언니는 씨익 웃으면서 그 표를 내밀었는데
역무원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딱 두 마디, 그리고 콩콩 찍는 손 모양을 해보였다
"no punch"




...


뭐....라고?
....노....펀치???!?!??!?!!!!!!!






그게...뭐..................................가 아니잖아!!!!!!!!!!!!!!!!!!!!!!!!!!!!!!!!!!!


그랬다 ㅠㅠ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탈 때는 꼭 표를 기계에 집어넣어서 펀치를 뚫어야 한다. 그게 개시(開始)다.

그래야 표가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유레일 패쓰만 썼던 우리는 직접 펀치한다는 생각을 정말, 1g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이탈리아에 와선 주영오빠가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면서 나는 가이드 북을 읽지도 않았다...


일단은 몰랐다고 손을 싹싹 빌어봤다.
표를 사면 된거 아니에요? 몰랐어요 ㅠㅠ


근데...얄짤없다.
갑자기 기관실 옆 칸으로 들어오란다.
사색이 되서 따라 들어갔더니, 벌금으로 각자 50유로씩 100유로를 내란다...................................


님....지금 장난?
각자 50유로?
50유로면 유레일 패스 없이 이탈리아 횡단을 하고도 남겠다.


일단은 현금이 없다고 봐달라고, 카드 밖에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경찰에 전화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헐............................강경하게 나오는 구나.................................



....

진짜 돈이 없....................지는 않았지만 50유로를 벌금으로 내면 진짜 돌아버릴지도 몰라.
우리는 딱 한 정거장만 가면 됐고, 게다가 1유로짜리 표도 샀다고.
정말 울상을 지으면서 꼬깃꼬깃 접어놓은 50유로를 꺼냈다.

정말 이거 밖에 없어요..ㅠㅠㅠ


그랬던 선심쓰듯,
"좋아 원래 2명에 100유로인데 잘 몰랐다고 하니까 각자 25유로씩 50유로로 봐줄게
다음부턴 절대 실수하지마."




..............저기 있지나....

우리 지금 이탈리아 뜨는 중이야. 다음따위 없다고!!! 우리 이제 오스트리아로 넘어갈꺼라고!!!!!
뭐? 잘 몰라서 25유로 깎아줘? 처음부터 100유로가 아니었겠지. 니가 지금 중간에서 떼먹으려는거 다 알아!!!!!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기차에서 쓴 나의 일기장엔 욕이 난무한다 .....-.,-)


그렇게 50유로를 거의 삥 뜯기다시피 뜯기고....나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맘씨좋은 나라에서는 잘 몰랐다고 하면 봐주기도 한다는데 ㅠㅠ)
순식간에 언니 벌금 25유로까지 뜯기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발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겨우 한 정거장 가는데, 표도 샀는데, 25유로나 내야 해서 억울하기도 했지만,


갑자기 방금 다른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 주영오빠가 생각났던거다.


주영오빠를 만나기 전까지, 중간에 카드도 고장나고 돈도 없이 굶고 지갑도 잃어버리고 길도 잃어버렸지만
눈물이 찔끔찔끔 나기도 했지만 나는 항상 꿋꿋하게 잘 견뎌왔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주영오빠를 만나면서부터, 거의 궂은 일은 오빠가 다 도맡아 처리해주기 시작했다.
귀찮은 길찾기도 다 해주고, 물어볼게 있음 나서서 물어와주고, 짐도 다 들어주고
그러다 보니까 여행지인데도 오빠가 다 알아서 해준다고 여행지인데도 너무 마음 놓고 있었던거다.
한 열흘간 오빠 도움만 받다가 갑자기 큰 일을 당하니까 우르르 무너져버렸다.
오빠가 있었으면 내가 아니라 오빠가 싹싹 빌었을테고, 오빠는 돈 못낸다고 버티기라도 했을것 같고
행여 25유로씩 뜯겼어도 씩씩거리면서도 괜찮다고 다독여줬을텐데
오빠는 방금 전에 왠 한국여자들을 또 만나서 깔깔거리며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오빠 처지랑 내 처지랑 비교가 되서 괜히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우리는 2분 뒤에....(제길..) 메스트레 역에 내렸다.
시은언니는 아침에 33유로, 저녁에 25유로, 도합 58유로를 뜨렌이딸리아에 기부했다.
제길.제길제길.
갑자기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서있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일기장에 쓴 것 처럼, 정말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다.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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