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0일.
세계여행 제 41일 째 (4)
Firenze, Italy.




베키오 다리 위에서 정신을 놓고 있다보니 벌써 시간이 10시 가까이 되었다.
노을 찍으라고 먼저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올려보낸 주영오빠가 설마 그 시간까지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은 그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불빛이 많이 없어 캄캄한 피렌체 거리를 묻고 물어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랐다.

그런데 역시 시간이 너무 늦은 걸까.
미켈란젤로 언덕에 사람은 많았지만 주영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작고 아담한 피렌체의 야경, 불빛이 없어서인지 더 작아 보인다.



올라온 김에 피렌체의 야경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주영오빠가 나타났다.
오빠도 한참을 기다리면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고.
그래도 세 명 밖에 없는 일행이 이렇게 흩어지지 않고 다 모여서 다행이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와 아르노 강을 따라, 그리고 하숙집이 있는 역 주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만 눈이 부신 피렌체의 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된 도보여행에 지쳤다.



10시가 조금 넘어서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인데도 거리엔 사람이 없다.


온 길을 그대로 거꾸로 돌아서 다시 베키오 다리를 건너 씨뇨리아 광장까지 돌아왔다.
다들 오늘 뜨거운 햇살 아래 너무 이 늦은 시간까지 걸어다녔던 탓일까
아니면 혼자 감상에 젖어있던 나처럼 내일이면 이별하는게 아쉬워서 였을까
다들 아무 말도 없이 타박 타박 걷기만 했다.
정말이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바로 일주일 전, 스위스 루체른에서의 늦은 밤을 함께 걸었을 땐 새로 시작하는 여행에 들떠있었는데
하루의 동행이 3일의 동행이 되고, 그게 계속 이어져서 이렇게 열흘이나 함께 하게 되다니 인연이 참 신기하다.

몽마르뜨 언덕의 회전목마가 생각나는 공화국광장의 회전목마

말머리의 삼색깃털이 화려하다.

이런건 또 언제 찍혔대....


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아주 늦은 밤이었는데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몇몇 레스토랑에선 라이브 음악이 들려왔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음악소리는 공화국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기타치는게 취미라던 주영오빠가 넋을 놓고 한 라이브 카페앞으로 걸어갔다.
그 카페에서는 santana의 Europa가 조금 슬프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화국 광장의 피렌체 축소모형, 그리고 저 뒤에 음악소리에 넋을 놓은 주영오빠.


그런데 갑자기 주영오빠가 나와 시은언니에게 막 손짓을 해보인다.
뭐지....싶어서 레스토랑으로 걸어갔더니, 거기 파티오에 우리 민박집에 어제 새로 들어온 왠 남자분이 앉아계셨다.
여행자는 아닌 것 같아고 여기 피렌체에서 꽤 오래 머물고 있는 것 같았는데, 뭐 아는 바는 없으니.
그 분이 우리를 자기 테이블에 앉히고는 맥주를 한 잔씩 시켜주셨다. (앗 !!@_@)
그 분이 핸드폰도 가지고 있어서 민박집 주인에게 전화해서 다같이 늦게 들어간다고 허락도 맡고.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데 라이브 음악가들은 프로였는지 감탄스러울 만큼 멋진 라이브들을 보여줬다.
하루종일 햇볕이 강해서 더위 먹은 강아지 마냥 늘어져 있었는데 시원한 맥주가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음악소리

캬, 원샷 원샷 원샷....?;;




뜨거웠던 한낮과 달리 시원한 여름밤 바람과,
멋진 연주자들과 보컬들의 여름밤 노래와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잔.

조그맣고, 너무나도 뜨겁고, 사실 별로 볼 거 없던 것 같은 피렌체가
유난히, 그리고 갑자기 운치있게 느껴지는 여름밤이었다.

ps. 우피치 미술관은 못갔다. 혹은 안갔다(?)

-2008. 06. 10 travel book.
Posted by honey,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