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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0일
세계여행 제 41일 째 (3)
Firenze, Italy.



저녁 시간이 되자 민박집에선 삼겹살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느낀건데, 이 민박집은 전문 민박집이 아니라 젊은 여자 두 명이 자기 일을 따로 하면서
부업으로 피렌체에 놀러오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민박업을 하는 듯 했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 주인이 삼겹살이라며 내 놓은 것은, 거의 비계덩어리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쿠키로 버틴 거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라,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우리의 저녁 식사에는 다른 손님도 한 명 있었는데
피렌체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미술 전공의 여자분이셨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 분의 좌충우돌 이탈리아 생활얘기도 듣고 재밌게 시간을 보냈는데
곧 야경투어를 한다면서 우리를 이끌기에 우리도 예상치 못하게 야경투어에 따라나서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하늘에, 구름 조각이 마치 새처럼 날아가고 있다.

파란 자전거와 빨간 자전거.


쭐래쭐래 따라나섰는데 어디선간 한국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열댓명이나 되는 상당히 거대한 투어집단이 되었다.
사실 낮에 생각보다 매력없는 피렌체에 실망한 우리들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는 노을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나랑 시은언니,주영오빠 모두 사진 찍는데는 목숨거는 스타일인데
단 하루밖에 볼 수 없는 피렌체의 노을을 놓칠까봐 주영오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민박집 주인이 공짜로 투어에 끼워넣어 준데다 얼굴맞대고 저녁까지 먹은 가이드라
세 명 모두 쏙 빠지기도 그렇고, 셋 다 가이드 몰래 쌩까고 나올만큼 철면피는 아니어서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 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걸까.
세 명 중에 한 명이라도 미켈란젤로에서의 노을을 사진으로나마 찍어오면 될꺼라고 생각하고,
내가 갈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주영오빠를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몰래 보냈다.
핸드폰도 없고 이 투어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보자는 약속하나만 하고.





그러더니 이번엔 시은언니가 배가 아파서 민박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눈치를 보냈다...;;;;
다시 나올꺼면 가이드전화로 연락을 하라고 약속을 하고 언니마저도 민박집으로 돌려보냈다.

오빤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언니는 민박집으로 그리고 나는 시뇨리아 광장에 홀로 남았다.
물론 옆에 가이드가 2명에 다른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했지만 
왜 갑자기 양쪽 팔 바깥쪽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걸까.


가이드는 열심히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전과 다비드 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래서 그 곳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자꾸만 어둑어둑해져가는 하늘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느껴보는,
'혼자' 라는 느낌이었다. '나혼자'
오빠와 언니가 내 곁에서 잠시 떨어져있자 갑자기 가슴에 먹먹한 '외로움'이 날 덮쳐왔다.


.......오늘이.......마지막 밤이구나.
우리 세 명 모두 함께하는 게.



시뇨리아 광장에 울려퍼지던 영롱한 플룻소리를 듣는 사람들.



그야 말로 반짝반짝 빛나다 못해 눈이 부셨던 이탈리아 여행이
 마지막 밤을 맞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써 모른척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언니 오빠와 떨어지고 나니
 외면하고 있던 그 사실이 불쑥 날 슬프게 했다.

나와 시은언니, 주영오빠. 모두 유럽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너무나 잘 어울려 지냈다.
셋이 함께 있으면 그저 즐겁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우울하거나 걱정할게 없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도, 돈이 없어서 굶으며 쿠키만 씹어먹어도,
 밤에 길을 잃어 헤메도.
그 모든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결코 힘들거나 불만스럽지 않았다.
언니 오빠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걱정 대신 그 순간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면 끝이난다.
갑자기 두렵고 외로워졌다.

언니오빠들도 이런 생각을 할까.
갑자기 슬퍼졌다.



시뇨리아 광장엔 Josh Groban의 "You raise me up"의 플룻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슬픈 기운에 그 노래를 들으니 위로처럼 느껴지면서도 이젠 정말 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포스팅할때 꼭 같이 올리려고 노래까지 다운 받아놨는데 저작권 법때문에 아쉽게도 노래는...ㅠㅠ)
그 때, 시은언니가 다시 합류했고 우리는 투어일행을 따라 베키오 다리로 향했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눈치 채지 못했던걸까.
피렌체는 그야말로 음악의 도시였다.

아까 시뇨리아 광장에서도 음악 소리가 가득했는데 여기 베키오 다리에서도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베키오 다리 한 가운데서 연주하던 어떤 한 연주자.



이 베키오 다리는 중세 보석상들이 많기로 유명한데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서 보석들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거기에서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았다.

베키오 다리에서 바라본 노을지는 피렌체와 트리니따 다리.


날은 이미 많이 어둑어둑해졌는데,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 끝으로 마지막 남은 노을의 여운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런던의 템즈강, 파리의 세느강, 루체른의 로이스 강만큼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작은 아르노 강위에 조금씩 불이 켜지는 피렌체가 비쳤다.
작은만큼 아담했고, 화려하지 않지만 마지막 남은 놀이 불타들어가는 모습은 넋을 놓게 할만큼 아름다웠다.
거기에 기분 좋은 바람과 잔잔한 음악까지.


위의 사진과 같은 시각, 다리의 반대편은 저렇게나 깜깜했다. 이미 9시가 넘었기 때문에.

그냥 다리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


다리 위엔 바쁘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이 다리 위의 풍경에 심취한건지, 아니면 노래에 심취한건지 사람들은 그냥 다리 이곳 저곳에 털썩 주저앉아
노을을 감상하기도 하고, 노래를 듣기도 하고 연인과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곳이 그냥 그렇게 그들의 휴식처인 듯 했다.
우리 나라 한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교들 위엔 오직 차들 뿐인데,
여기 이 작은 베키오 다리 위는 차도 없이 풍경과 노래와 사람들이 어우러진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장미꽃 한 송이를 즉석에서 사준 남자친구.꽃다발이 아닌 한 송이이지만 그들은 행복해보인다.



베키오 다리를 한층 운치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 아닐까.그의 노래는 이 곳과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주영오빠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잊어버리고 여기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피렌체의 연인2.




그나마 (노을을 포기한) 야경투어 중에 좋았던 것은 씨뇨리아 광장에서 들리던 청아한 플룻소리와
베키오 다리의 이런저런 모습들이었다.

조금 여운이 남은 노을과 강과 다리, 기타연주 하며 노래하는 아마추어 가수.
다리에 걸터앉아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연인들.
퐁뇌프 보다 작고 소박한 다리였지만 분위기만큼은 정말 정말 멋졌다.
한 폭의 그림같고 한 편의 영화같은,
아직도 어스름하게 지던 노을과 강물에 비친 불빛, 기타연주자와 주황색 조명,
다리에 걸터앉아 장미꽃 한 송이를 손에 쥐고 도란도란 얘기하던 귀여운 연인을 잊을 수가 없다.

-2008. 06. 10 travel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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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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