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일요일 아침의 상큼한 라이딩




영화 <연애의 온도>를 보았다.

결론은, 마치 내가 이민기와 사귀고 싸우고 헤어지고 나온 듯한 느낌이다. 

겨우 두어 시간의 러닝타임이었는데도, 마치 1년여를 걸쳐 헤어지고 온 느낌. 

굉장한 감정소모였다.



대부분의 영화, 드라마에서 커플이 만나고 감정을 느끼고 그리고 연인관계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길게 그리지만,

영화, 드라마에서의 이별은 급작스럽게 온다.

알콩달콩 잘 지내던 커플들이 외도, 가족들의 반대같이 외부적인 사건들로 뚝딱 헤어져버리고는

이별을 극복하려 고군분투하거나, 아니면 다시 마음을 돌리려고 고군분투하곤 한다.



영화 <연애의 온도> 속에 행복하고 달콤한 연애의 모습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헤어졌던 커플이 완전 남남이 되어 죽일듯이 달려들다

다시 만나게 되고, 그리고 천천히- 서서히 - 남녀는 헤어져간다.

이 영화의 특징, 혹은 강점은 '헤어져간다'는 것에 있다.


죽일듯이 싸우는 초반부와 달리 헤어져가기 시작하는 후반부에는 말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남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고

그 변해가는 행동행동마다 서서히 마음이 멀어지고 있음을,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함께 느낀다. 아주 고스란히 느낀다.


헤어지기 싫어서 1분 1초라도 함께 있으려고 집까지 데려다주던 남자는

어느새 의무감처럼, 원래 그래왔으니까 그랬다는 듯이 여자를 데려다주고- 둘은 웃지만, 약간 불편한 마음으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밥먹은 곳에서 여자가 "먼저 갈게"라고 말하고 남자는 데려다주는 대신 "그래"라고 말하고 택시에 태워보낸다.

(아마, 여자는 -데려다줄게-라는 말이 듣고 싶었을 거다. 그래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서운해졌다. 

단순히 매일 데려다주던 걸 데려다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데려다주려 하지 않는 그의 마음 때문에)


미주알 고주알 시시콜콜한 것 까지 함께 나눈던 연인은

어느 새 점점 함께 있어도 그다지 할 말이 없는, 둘이 있는게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가 되어간다.


- - - 



영화에서 차분히 보여주기도 하지만, 헤어지는 과정은 그렇다.

서로에 대한 태도가 알게모르게 미묘하게 변해가면서

여자는 불안해한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남자는 답답해한다. 하지만 답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불안해하면 저 쪽이 답답해할까봐 여자는 불안하지만 애써 쿨한 척을 하고,

내가 답답해하면 저 쪽이 불안해할까봐 남자는 답답하지만 역시 애써 쿨한 척을 한다.


연애 초반같으면, 사랑이 식었다는 둥 너 좀 변한것 같다는 둥 서로 아웅다웅 다퉜을테지만

그 단계를 지난, 이제는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남녀는

불안하다는 말, 답답하다는 말이 서로의 관계를 무너뜨릴까봐 쉽사리 그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런 말들이 관계를 깰까봐 겁이 난다는 건, 

결국 그만큼 그 둘사이의 관계가 예전만큼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본인들이 느낀다는 거다.

연애 초반에 쉽게 "너 변했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관계가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는

상대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아주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답답하지만, 닥달하지도 않고 속시원히 얘기도 하지 않고 

애써 남녀는 괜찮은 척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웃으며 대하지만, 가면을 쓴 관계는 불편하기만하다.

쿨한 척 할 수록 해결되지 않는 불안과 답답함은 마음 속에서 점점 큰 짐이 되어 가고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연기로도 - 가면으로도 그 불안과 답답함, 그리고 서로의 불편한 관계를 덮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나의 연애는 그랬다.

그렇게 불안하고 답답하면서, 그러나 행여 그런 마음을 들킬까봐 

말로는, 얼굴로는, 문자로는 웃는 척 쿨한 척을 했지만 

그렇게 그렇게 우리들은 헤어져갔다.



- - -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공감하다 못해 숨이 막혀왔다.

서로 괜찮은 척 연기하지만 마음이 식어가는 그 관계속에서 

숨막혀하던 지난 가을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더 이상 영화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영화속 이민기로부터 서서히 외면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 속 이민기가, 김민희의 책상에 커피를 여러 번 놓아두지만

진심으로 애정이 넘쳐서 건네주는 커피와

아직도 진심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놓아두는 커피를 구별 하는 건 아주 쉬웠다.

웃으며 "책상 위에 커피 놓아두었어"라고 말했지만, 그 눈빛에서 나는 진심이 반쯤 비어버린 마음이 느껴졌다.

씁쓸했다. 내가 상처받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곰같아서 이게 진심이 담긴 커피인지, 그냥 그런척 하려는 커피인지 모르면 차라리 낫겠다.

내 눈으로 이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매일 매일 확인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 고통스러웠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탓할 수도 없다. 

그래도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

그저, 왜 우리의 마음이 변해가고 있는지가 속상할 뿐. 



- - - 



영화 마지막에 둘은 다시 헤어진다. 그런데 그 대사들이 참으로 많이 공감이 되었다.

여자의 대사는 내 마음이라서 공감이 되었고, 

남자의 대사는, 그 대사 속의 여자의 모습이 내 모습이어서 반성이 되었다.



; 너야말로 솔직해져봐. 억지로 나와 억지로 즐거운척 하면서 사람 피말리게 하지 말고. 처음부터 나오기 싫었다고, 나랑있는게 좋지도 않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너 만날때마다 이러는 거 알아? 옛날부터 지금까지 툭하면 사람 눈치보게 만들어 힘들게 하더니 결국.


; 나 만나서 힘들고 지친다, 너 혼자서 애쓴다. 너만 숨막히고 피말리냐? 나야말로 너랑 있으면 뭘 해야하는지 모르겠어. 나 다시 만난거 네가 후회하고 있을까봐 너랑 있으면 숨도 못 쉬어. 그런데도 넌 네 생각만 하잖아. 너 서운한거, 너 힘든거! 너 혼자 노력하고 발버둥치고 있는 거. 네 눈엔 너밖에 안보여? 너만 힘들어? 네 그 생각때문에 나야말로 미칠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하게 뜬금없이 이별통보를 받는 것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격이고 고통스럽지만-

서서히 조금씩 마음이 멀어져가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엔 헤어짐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걸어가는 것도, 참으로 괴로운 것이더라.



(방금 이민기와 헤어져서) 한동안 연애는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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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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