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끝났다.
아직 종무식을 안했고 수료증을 아니 받았으니 완벽하게 끝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23개의 보고서를 모두 제출했고, 3회의 법정변론을 마쳤고, 각종 강의와 재판/조정을 방청하는
9일간의 스파르티식의 법원인턴수습이 끝났다.

과제가 너무 많아서, 압박스럽기도 했지만
빡셌던만큼 법원에 대해서 많이 보고 배우고 느꼈던 9일이었다.
로펌과는 또다른 법원의 업무, 분위기 등을 느꼈고, 변호사와는 또다른 판사의 직업과 업무, 생활들을 피부로 직접 느꼈고,
부동문자로만 보아왔던 법과 당사자들과 다툼과 소송, 이 모든 것들의 실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남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 사무실에 들렀다 돌아가는길에, 왼쪽건물은 남부지검, 오른쪽 건물이 남부지법이다.



9일동안
교육으로는 (1) 민사지도관기본교육,(2)영장실무교육, (3) 민사집행절차교육, (4) 형사지도관기본교육을 받았고, 
기록으로는 (1) 민사 신건기록 2건, (2) 민사 조정기록 2건, (3) 민사 속행기록 2건, (4) 형사 신건기록 2건, (5) 형사 속행기록 2건,
(6) 영장실질심사 기록 2건, (7) 형사 약식사건 기록 5건, (8) 국선전담변호 기록 1건을 보았고,
방청으로는 (1) 민사 법정 방청, (2) 형사 법정 방청, (3) 민사 조정 방청, (4) 경매법정 방청, (5) 국선전담변호 방청, (6) 비공개 방청
실습으로는 (1) 준비기일 피고대리인, (2) 변론기일 재판부, (3) 증인신문절차 원고대리인을 맡았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과 방청 대한 보고서방청기 도합 23개를 썼다.
9일 동암 참, 알차다면 알찬데 마지막에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했다.

민사 기록과제, 난 거의 복사와 펀치의 달인이 된 것 같다.



원래 변론실습은 1회가 공식적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우릴 지도해주셨던 이영동 부장판사님께서 준비기일, 변론기일, 증인신문절차까지 해서 총 3회를 하고,
각각 원고대리인, 피고대리인, 재판부를 번갈아서 하도록 스케쥴을 만들어주셨다.
덕분에 수습 시작하자마자 이틀 뒤에 열리는 준비기일 때문에 초반부터 답변서 쓰느라 야근을 했다.

피고 대리인을 맡았다. 나는 당황한것 같은데 뒤에 부장판사님 웃고 계신다. 허허허

우리끼리 하는 실습이지만 나름 진지하게 했다.

변론실습 민사팀 :)

변론기일에서는 좌배석을 맡았다. 좌배석 답게 아무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실습이니까 궁금한건 다 물어봤다. ㅋ

아마 법복입고 재판석에 있는 마지막 모습일 듯 :)

마지막 변론종결일, 지도관이셨던 이영동 부장판사님과 함께. 저때 이미 날밤샐때라 내 상태는 =_=




어쨌든, 일주일은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오고 나머지 일주일은 정말 햇살에 바짝 익을 만큼 뜨거웠던 2주간의 인턴생활이었다.
학교생활 하면서 판사출신 교수님이나 변호사님들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었는데,
2주간 만나뵈었던 부장 판사님 한 분 한 분이 인간적으로, 판사라는 직업적인 면으로도 존경스러운 분들이셨다.
기사에서 봐았던 막말한다던 판사들이 정말 있긴 한걸까 싶을 정도로,
법복을 벗고 우리를 대해주실 땐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하고 배려해주시면서도,
법복을 입고 재판대에 계실때는 날카롭게 쟁점들을 짚어내고 정리해가면서,
법의 힘이 필요한 당사자들에겐 조곤조곤 설명해주시고, 법을 자기 사리사욕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겐 따끔하게 충고하시는데

내 싸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싸움을 해결한다는 것,
진실과 거짓말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로 사건을 재구성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에 나 아닌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의 가족이, 누군가의 전재산이, 누군가의 인생이 좌지우지된다.
2주간 많은 기록을 검토하고, 법정을 방청하면서
정말 판사라는 직업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직업인듯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일을 해내고 있는 판사들이, 그래서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들은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계셨다. 그게 내겐 인상적이었고.
내 지도관을 맡아주셨던 부장판사님은, 이 일을 하면서 무서운 게 하나 있다면
자기가 끝내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해서 거짓의 손을 들어주었을 때,
진실한 자의 억울함도 문제이지만
거짓을 말한 자가 사법부도 속일 수 있구나, 라며 그리해서 사법부가 우스워지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서 문득, 사명감 같은 느낌도 느껴졌고
학자 출신이 아닌, 법관 출신의 교수님들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하시는 어떤 마음,
나의 출세를 위한 법공부가 아니라, 법이 필요한 세상과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법학을 써나가기를 바라시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조금조금 묻어나왔다.

 

 

법원 -



여러모로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아마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경험일 것 같기도 하다.
비록 나는 아니되어도, 앞으로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사람을 두루 굽어 살필줄 아는 훌륭한 판사들이
싸움으로 얼룩진 여러 다툼과 사건들을 현명하게 풀어나가시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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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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