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 삶 2011. 2. 27. 02:06








난 어제 조금, 지각을 했다.
저 언덕위에 늘씬하게 큰, 얼굴이 하얀 남자가 정복을 입고 서있었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자기도 얼마 안기다렸다는데
아마 아무리 적어도 15분은 기다렸을 거다.

큰 키에 압도되었는지, 아니면 낯선 곳이라 그랬는지
조금 긴장하고 움츠러져있었는데
생각보다 어리버리하고 순진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화제를 돌려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에스코트를 받아서 게이트 5까지 같이 걸어나왔다.

나중에 자기가 돌아가고 나면 놀러오라했다.
봄도 좋고, 크리스마스도 괜찮다고.
그는 내게 비밀을 하나 가르쳐주고,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다음에 또 뵐게요" 라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차마 뒤는 돌아보지 못하고 또 늦은 사람처럼 콩콩뛰어갔다.
정말 다음에 또 보게는 될까.

-

어깨를 톡톡치니 조금 띠꺼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쿠키통을 내미니 멋쩍은 표정으로 쿠키를 집어갔다.
나도 그제서야 조금 안심하고 쿠키봉지를 뜯어서 쿠키를 먹는다.


한 이십분 혹은 삼십분이 채 지나지않은 것 같은데
뒤 자리에서 부시럭하고 일어서더니 
내가 문자하나 보내는 사이에  성큼성큼 걸어들어와서는
이번엔 조금 쑥쓰러운 표정으로 음료수를 내민다.

"아; 감사합니다"

혼자 부스럭거리면서 쿠키 먹기가 민망해서 나눠줬던 건데
따뜻한 꿀물을 돌려받았다. 굳이 내가 또 뭔가 보답을 바란것도 아닌데
겨우 그 쿠키 하나가 부담스러웠나...싶었다.


-


그러나 오늘 이 모든 일들을 떠올리는 것 조차 내키지 않을,
그런 문자를 받았다.
문자를 보기 전에 네이트온이 동시에 떴고,
이게 무슨 말이냐, 는 한 마디뿐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안 좋은 일, 그것도 정말 바라지 않는 바로 그 일 일것만 같더니.


...


실은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자도 되는데,
자야 되는데,
못자고 있는것도, 아니면 안자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이게 모두 어제 하루동안 내게 몰아쳤다.

'■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방학 끝.  (0) 2011.03.01
▶◀  (0) 2011.02.27
벌써일년 그리고.  (2) 2011.02.25
생각이나.  (0) 2011.02.25
리스크  (0) 2011.02.23
Posted by honey,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