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出

카테고리 없음 2010. 3. 29. 18:08



외투를 뒤집어 쓰고는 깜깜하고 좁은 공간 사이로 숨소리도 나지 않을정도로 숨만 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지금이 몇시인지도 모른채로 기다리다가 외투를 살짝 끄집어 내렸는데 -

가구조차 없어 휑하니 텅 빈, 그 방이 환하게 밝아져오고 있었다.
그 커다란 통창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그것도 막 지금.
머리가 조금 어지럽긴 했지만, 가만히 통창에 기대서서 예상치 못한 일출과 마주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고, 예상도 하지 않아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그렇게 뜻하지 않게 - 해를 마주해야했다.
항상 큰마음 먹고 봐야했던 일출을 이렇게 아무런 마음의 준비나 각오도 없이 마주하게 되다니.
덕분에 정말 무념무상의 텅 빈 머리로 일출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해가 뜨는 그 모습을 어디서 본 것도 같았다.
브뤼셀에서 스탠과 함께 봤던 Vanilla Sky가 눈 앞에 겹쳐왔다.
탁 트인 넓은 하늘, 분홍빛이 아닌 주황빛 그라데이션.
그러나 일몰과 일출은 달랐다.
저물어가는 해는 평온하다...그리고 따뜻했었다.
떠오르는 해는 함부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았고 진심으로 뜨거웠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글이글 타고있는 그 모습이 힘차기보다 안쓰럽고 힘들어보였다. 
 
문득, 이렇게 텅 빈 방안에서 홀로 도시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그 언젠가 꿈속에서 본 기억이 났다. 종종 예지몽을 꾸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꿈과 추억과 현재가 모두 머릿속에서 함께 떠오르다니.................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런 감흥도, 감동도 없었다.
새로운 시작이라던가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  따위의 상투적인 각오도 없었다.
뜨거웠다. 그리고 따가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뜨겁고 따가웠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 이글거림도 아주 순간일 뿐임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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