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응원

■ 삶 2009. 10. 5. 02:03


엄마의 딸 관계만큼 미묘한 관계가 없다.
때론 맘 편히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같은 관계면서
때론 같은 여자로서 부딪히기도 하고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상하관계에서 대립하기도 하니까.


그동안 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사실 뭔가 '부담'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게 '부담'을 느끼게 했던 엄마는 내가 못한다고 질책하거나 다그쳐서가 아니라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내가 이뤄내길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른이었고 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살았고 더 현실적이었으며 미래를 멀리 보는 눈을 가졌다.
여느 부모와 같이 항상 내가 잘 되길 바라셨고, 나는 대부분 그 기대에 착실히 맞추어 드렸다.
그런 엄마는 날 굉장히 신뢰하시기도 했고.

대학생이 되서 조금 머리가 컸다고 나는 은근 엄마가 제시해주는 방향 설정에 극렬히 반항하곤 했다.
내가 미리 알아채기 전에 내가 실패를 경험하기 전에 슬쩍 지름길을 일러주는 엄마가 
고맙기는 커녕 날 엄마맘대로만 키우려는 것 같아 그 길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시리 거부하고 반항하곤 했다.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덜 다치고 덜 실패하길 바라셨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내가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고 깨져보길 원했고 그게 바른길이라 믿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엄마는 내게 기대를 하셨지 응원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
내가 사소한 걱정을 할 때면 코웃음을 치며 날 긁던 엄마가
왠일인지 올해는 그것도 두번씩이나 '괜찮다'는 말로 응원을 해주셨다.
(생각해보면 고 3때 딱 한번 엄마한테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이게 잘못되면 난 어쩌지.

예전같으면, "잘못되긴 뭐가 잘못돼. 니가 잘못 안되게 하면 되지. 헛생각 말고 가서 니일이나 잘해"라며 핀잔을 줬을텐데
오늘 엄마는 머리털을 쥐어짜며 끙끙대는 나에게
"민아. 너가 나가서 길만 걸어도 햇빛 속을 걷다가 그늘 속을 걷다가 하지 않니.
사람 일이 항상 잘 될 수만은 없는 거야. 좀 잘 안되도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그리고 오히려 그 일이 후에 더 좋은 결과를 낳을수도 있어. 괜찮아"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안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엄마라는 존재가 반대하고 싫어하면 괜시리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고
맘에 들지 않던 것도 엄마가 좋다 하고 괜찮다고 추켜세우면 마음의 불안이 가시고 편안해진다는 걸.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오리무중의 길을 가지만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가야할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가야할 길을 모르는 채로 하염없이 달리는 것과
지금 장애물 앞에서 이걸 넘을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면서도 이 길이 정말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장애물에 덤비는 것
이 둘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후자를 선택할거다.
내 길을 모르는 채로 달리는게 얼마나 절망적이고 우울하고 비참한지 정말 오랜 시간 겪었으니까.



엄만, 내가 정말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힘들 때 이렇게 '괜찮다'는 말로 내게 위안을 주셨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다
그래. 괜찮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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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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