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휴가가 그러하였듯이 나는 2주간의 휴가를 꽉 채우고서
회사 복귀 전날에서야 귀국하였다.

2주동안 일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았는데,
한국에서늬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업무를 해왔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만큼
낯선 곳의 정취와 그  안에서 솟구치는 나의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에 흠뻑 젖어지냈는데,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아침 7시 40분 지하철 2호선을 타는 순간
나의 정신은 순식간에 원래 일상으로 복귀해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그동안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음은 무덤덤했다.

어릴 적엔 여행이 끝나고도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지난 여행의 추억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여행의 여운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현실 적응의 버퍼링을 즐겼었는데
이제는 마치 지난 2주간의 휴가가 심지어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휴가 패턴에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고, 업무에 복귀하면 넋놓고 있을 여유가 없기 때문일수도 있고
이유야 어떠하든 나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작년엔 귀국한 날 밤, 싱숭생숭한 마음에 혼란스럽기라도 했는데
올해는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건지.


그렇게 일주일동안 출근을 하고 토요일 하루도 덥다는 핑계로 밍기적거리다가
귀국한지 1주일이 되어서야 나는 내 방에 펼쳐놓았던 캐리어의 짐을 정리했다.

카메라와 여권, 어댑터 같은 여행용 물건들은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갔지만
일상에서 집어갔던 물건들은 아직도 제자리에 돌려놓지 못했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 놓아두었던 손 거울, 회사 사무실에서 쓰다가 가져갔던 칫솔 같은 것들.
이 사소한 물건들은 아직도 여행 파우치에 담겨 내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있다.
매일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서- 화장실 사물함을 열면서 - 내일은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웬일인지 집에가면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깜박해서도 아니고 생각은 나지만 웬지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다.


사소하지만 매일 쓰던 물건들, 나의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 조금씩 어긋난다.
사소한 만큼만 불편하다.
나는 아차!하고서 1초 정도 머뭇거린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맞다. 내가 여행을 갔었지.

머뭇거리는 1초 동안에, 1초만큼의 그 불편함에 나는 일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다.
그 불편함이 일상을 일순간 낯설게 만든다.
내가 아직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미묘한 안도감이 든다.


아마도 나는 그 불편함이 익숙해질때까지 그 물건들을 챙겨오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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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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