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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5.19 내 삶도 아직 5월일까.



오늘 내일 회사 창립기념일 휴가로 이틀을 쉰다.
토요일, 일요일까지 붙이면 4일을 연달아 쉬는 나름 긴 연휴인데
아무 계획이 없다.
코로나 전에는 3박 4일로 일본여행도 다녀오고 제주도라도 다녀오고,
못해도 서울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기라도 했는데
일단 지난 4월 말에 다리를 접지르며 다친 오른쪽 고관절 회복이 제일 중요해서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 같지만 가장 덜 움직이는게 가장 빠른 회복이란 걸 알기에)
어딘가를 돌아다닐 마음도 없긴 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업무량이 급격히 많아지기 시작해서 어제까지 야근하며 달렸기 때문에
놀러 갈 마음보다도 몸이 간절히 쉬고 싶기도 했다.

어느 새 사회생활을 시작한지도 만 9년. 거기다 한 직장에서만 있었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9년의 시간에 비해서는 그다지 많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일까, 같은 회사에서 같은 조직에서 일하고 있지만 회사원으로서 내 모습도 많이 변해 온 것 같다.
뭐라 콕 찝어 말하긴 어렵지만,
음.
책임감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자신감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그런 종류의 것들.
어쩌면 이런 마음가짐을 갖기까지 이 정도의 시간이 (모두에게) 당연히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나에게 특별히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또,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7년 동안의 팀장이 바뀌고
상대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일을 맡겨주는 새로운 팀장 밑에서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항상 나는 이 곳에 속해있지 않다는 마음으로 다녔는데 다니다보니 9년이 되었고,
자발적이기보다는 이 곳에서 유지되는 밸런스와 평화를 깨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애정을 가지게 된 것도 있다.
그 모든 게 각각 조금씩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주어진 일에 대한, 내 이름에 대한 책임감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다.
잘하고 싶고, 잘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그것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생각해보니 오랜만인 것 같다. 이런 마음. 정말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어쨌든, 오늘 느즈막히 일어나 하루종일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리다가
잠깐 산책할 겸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 근처 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해 벤치에 앉았다.
여름을 향해 가는 푸르른 5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의 황금같은 계절.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캠퍼스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
수업이 끝났는지 학생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5월의 푸르름처럼 젊고, 밝고, 활기차보인다.
이제 5교시 정도가 끝난걸까.
벤치에 앉아 내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저 친구들은 이제 어디로 갈까? 학교 끝나고 뭐 할까? 영어 스터디 같은거 하려나.
친구들이랑 저녁먹고 카페에서 놀다가 집에가서 유튜브보다 자겠지?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버린 (이제 2년만 지나면 대학 입학하던 때 태어난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내 대학생활은 어땠는지 떠올려본다.
수업이 끝나면 과방에 들러서 동기들하고 놀기도 하고, 신촌, 홍대, 종로를 싸돌아다니기도 하고,
재즈댄스를 배우러 다닌 적도 있고, 방학 때는 토플공부한다고 학원도 다니고
시험기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고 그랬다.
사실 지금도 하라면 다 할 수 있는 것들인데,
그 때는 뭐랄까, 조금 더 창창한 느낌. 이 하지를 앞둔 긴 5월의 낮처럼.
내 꿈이, 내 목표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냥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몰입하는 즐거움이 느껴지던 순간들.
만날 사람도, 가야할 곳도, 보아야 할 것도 너무 많았지만 그만큼 또 여유로웠던 때.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가장 황금같은 시간들이 회사업무에 고정되어 있고,
업무가 끝나면 어디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워서 쉬는게 가장 몸과 마음이 편해져버렸다.
여가시간을 좀 알차게 보내려고 해도 뭔지도 모르는 목표조차 없어서일까? 작심삼일로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인 지금.
마음은 항상 청춘인줄 알았는데, 어느 새 몸과 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직장인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잠깐의 상념을 마치고 벤치에서 털고 일어났다. 집에가야지. 저녁을 해야한다.


서른 여섯. 만 9년차 직장인.
삶이 계절이라면 내 삶도 아직 5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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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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