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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20 응답하라 나의 2002. 3



문득, 대전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는 혼자갈 용기가 나지 않던데, 대전은 혼자서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계획은 조금 이른게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대전에서 추억을 곱씹고 싶었는데

전날밤 밀려오는 착잡한 마음에 늦게 잠이 들어서, 결국 밍기적 거리다가 1시가 넘어 일어나고야 말았다.




아, 지금 내려가기는 늦었다....라는 포기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그래 그냥 KTX를 타고 가자.  




거울 속 퉁퉁 부은 눈을 보자마자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점심도 거르고 재빨리 씻고 서울역으로 달려가서 당장 출발하는 기차표를 샀다. 

그리고 샌드위치와 커피하나만 달랑 사들고 KTX에 올랐다.

3시 정각이 되자 KTX가 천천히 미끄러져 서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점점 멀어져가면서 나는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지금 내게, 서울이란 곳은 어떤 상처, 아픔, 괴로움들의 집합체와도 같았다.

그런 것들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기에, 단지 서울을 떠난다고 해서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상하게도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그런 추억, 아픔, 감정들과도 멀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혼자 발버둥쳐도 결국에는 다시 떠오르는 것들을, 내가 힘들이지 않고도 놓아버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오랫 동안 지우지 못했던 연락처를 지워버렸다. 

지우고 지웠어야할 번호이지만, 일상 속의 나는 차마 용기가 없어 지우지 못했던 것을 

나는 서울을 떠나는 기차 속에서 아무런 미련 없이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눌렀다. 

홀가분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냥 할 일을 했을 뿐 - 그리고 그런 용기가 필요했을 뿐. 



그렇게 1시간을 달려, 드디어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 성심당에 길게 늘어선 줄!대전광역시 중구 중동 :)


대전에 내려온 이유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서였다. 

지난 주 경주에 가며 잠시 대전을 지나쳤는데, 내가 살던 동네가 보였다. 

정확히 10년 전, 그러니까 내가 16살부터 17살 사이에 살았던 동네를 본 것이다. 

그때, 갑자기 이제 대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대전역에서, 고등학교가 있는 내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대전과 서울, 그리 멀지도 않고 크게 다를 것도 없는데 

뭐랄까, 조금 느긋느긋한 버스와 사람들, 버스에 타며 인사하는 사람들 - 서울보다 훨씬 정감있고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내동의 롯데아파트에 내려서 선생님드릴 음료수를 사들고 학교로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 . 대전외국어고등학교 :)


학교를 올라가려면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각 과별로 그려진 벽화.


중국어과 벽화 ㅎㅎ 후배들이 그린건데 참 잘 그렸다


학교가 보인다. 저렇게 보여도, ㅌ 자 모양의 특이한 건물이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5시쯤 되었다. 

사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에 학교가 이전해서 이 건물의 외고에서는 1년밖에 다니질 않았다. 

교무실이 어디 있었는지도 헷갈려서 교무실을 찾아 헤메던 중에 

중국어 회화 선생님과 마주쳤다.


내가 놀란 얼굴로 선생님께 "Laoshi !" 하니까 

선생님이 (날 기억하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반가운 얼굴로 왜이렇게 이뻐졌냐며 (이런건 아직 알아듣는다....)

너가 어디 대학을 갔었지? 요즘엔 중국어 공부하고 있니? 라며 이거저거 물어보셨다.

졸업하자마자 중국어를 버린 저를 용서하세요.....전 중국어가 참 안맞아요 ㅠㅠ



그리고 우리 옆반 담임선생님이셨던 중국어과 담당의 서병훈 선생님을 뵈었다. 

처음에 나보고 "너가 재현인가?" 하시길래 "아니에요~" 했더니 곧바로 "한..한민인가?" 하셨다.

선생님반도 아니었는데 10년전에 가르친 학생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깜짝 놀랐다.


"그래, 한민아. 너가 별명이 한민이지? 본명이 뭐더라?"


....




수업시간, 한적한 복도.


건물이 ㅌ형태라 서로서로 마주보고 있다.


한참 배드민턴을 쳤던 실내 체육관


사복을 입은 여자가 학교를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는데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내게 수줍게 인사를 했다. 

선배인줄 아는 건가. 아니면 학부모인줄 아는건가...전자였으면 좋겠다.

서병훈 선생님과 학교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선생님께서는 야자시간에 아이들에게 대학얘기를 좀 해줬으면 하셨지만, 


실은 나는 여기 말고 전민동에 있는 원래 나의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서- 대전에 내려왔다. 

나도 후배들에게 내 인생 최고였던 대학생활 시절을 얘기해주면서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도 싶었지만, 

대전을 떠난지 8년. 별다른 연고가 없으니 딱히 내려오기가 쉽지 않은데 

지금 그 곳에 가보지 않으면 또 언제 올까 싶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선생님, 저는 아무래도 전민동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하고 인사를 드리고 

택시를 타고 이제는, 전민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내 마음속의 모교를 찾아 전민동으로 향했다. 


서구 내동에서부터 유성구 전민동까지. 

이미 해는 떨어지고 어스름이지는 대전을 가로지르면서, 갑천을 지나가고 한빛탑을 지나면서 나는 추억에 잠겼다. 


경기도에서 대전으로 고등학교를 옮기려고 엄마랑 같이 원서를 들고 대전에 처음 왔던 15살.

이렇게 택시를 타고 대전외고에 데려다 달라고 했었지.

2002년월드컵 때, 이 갑천변에서 응원을 하고는 흥분해서 집에 들어가던 때도 생각난다.

학교가 생각보다 대전시내에서 외곽에 있었구나. 여길 통학했던 친구들은 참 힘들었겠다. 


그렇게 택시는 나를 전민고등학교에 내려주었다. 

이 곳이었다. 

내 고등학교의 추억이 오롯이 살아있는 곳. 

이제는 간판도 바뀌고, 교복도 바뀌었지만

내가 처음 교복을 입고 입학을 하고, 

처음 야자를 하고, 

처음 중국어를 배우고, 

그리고 또 첫사랑도 만난 곳. 


전민고로 바뀌었지만 내 마음속엔 영원히 대전외고일 이 곳.


중국어과와 영어과를 이어주던 구름다리.


이 학교는 또 특이하게 ㅁ 자 형태의 건물어서 모든 학급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1학년 중국어과 맞은편엔 2학년 영어과가 있어서 

공부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면 영어과 오빠들이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야자를 시작했는지, 학교는 조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1학년 영어과 반이 있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2학년 때, 1학년으로 입학했던 강진이가 현관 앞에 무릎꿇고 앉아서 불어를 공부하다가 나한테 들킨게 생각났다.

부모님끼리 절친인데다 어렸을 때 같이 자랐던 친구가 후배로 입학했었는데, 

벌받고 있다가 나를 마주치고는, "야, 엄마한테 말하지마" 라며 신신당부하던 생각이 난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그랬었지. 



배드민턴 코트가 있던 중정. 저기 가운데 2층 불켜진 교실이 중국어과 1학년 교실이었다.




중정에서는 점심시간, 저녁시간 마다 좀 친다하는 오빠들이 배드민턴을 치곤 했다. 

외고여서 남자가 몇명 이지도 않아서, 여자애들은 전교의 남자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고 

어린 여학생들은 창문에 달라붙어서 오빠들이 폼잡으며 배드민턴 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이 오빠가 어떻구, 저 오빠가 어떻구, 난 저 오빠가 좋은데 너가 건들이면 안된다는 둥 

우리끼리  서로 마음에 드는 오빠를 두고 떠들어대곤 했었다.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운동장. 새 건물을 세우면서 운동장이 많이 좁아졌다.


우리학교는 전통적으로 체육대회가 유명했다. 

봄에 11종목을 7개의 과가 토너먼트를 붙는데 예선전만 2주를 잡아놓고 수업시간을 줄이면서 예선전을 펼칠 정도로 

체육대회는 우리 학교에서 축제보다도 더 큰 행사였다. 


각 과별로 상징하는 색도 있고, 과티도 맞추고, 응원가도 있었다. 

내가 1학년이던 2002년에는 우리 중국어과가 11종목 중에 8종목 우승, 2종목 준우승, 1종목 3위로 모든 종목을 휩쓸었었지.

참고로 우리 중국어과 별명은 <천하무적 중국어과> 였다.

우리는 중국 상징색인 빨간 티를 입고는, 천하무적 중국어 - 응원가를 불렀다. 

그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면, 정말 별로 무서울게 없었다. 

나 스스로는 그리 자신감 넘치지 않았지만, 중국어과 소속 안에서는 나름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나보다. 





기어코 어둠이 내려앉았다. 

해가 지고 나서, 어둑어둑 해지는 지금 이 순간을 

10년전의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저녁을 먹고 나서 야자를 시작하는 7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면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 짧아지는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이다가 긴가민가 보이는 그 어둑해지는 시간이 참 싫었다. 






학교 안을 한바퀴 돌고, 학교 건물을 둘러 또 한바퀴를 걸었다. 

영어과 교실 밑을 걷고 있을 때 그 생각이 났다.

2004년 수능이 끝나고, 내가 고3을 앞두고 있을 때 

영어과 교실 밑을 걷고 있었는데 3층에서 "야!"하고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토록 좋아해마지 않았던, 영어과 선배였다.

수능 전까지 수십, 수백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던 사이었는데 선배의 수능이 끝나고서 이-메일 연락이 끊겼다. 

그걸 서운해하고 있던 마음에 나는 뾰루퉁한 목소리로 "왜요?" 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었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학교 건물들을 거니는 동안, 

이제는 10년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내 기억 속의 그 사람과의 추억들이 불쑥 불쑥 튀어올랐다. 

방송반 시험을 보던 날 첫 만남, 

가끔 마주치며 인사했던 시간들, 

선배가 배드민턴 치던걸 구경하던 나, 

햇살 따뜻하던 어느 봄날의 토요일,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봉고차가 잔뜩 줄 서 있는 가운데

집에 가는 내 손목을 갑자기 붙잡아서 어린 마음에 심장이 쿵 - 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어렸었다. 정말. 

내 기억속의 선배는 커다란 어른 같았다. 

내가 열심히 커나가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커다란 어른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도 겨우 고등학생일뿐이었는데. 

그 때 끊어진 인연때문인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 그 사람은 내게 여전히 어른스러웠던 모습으로만 남았다.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르게 느껴질까?




아파트를 따라 걷는 길.



예전 학교 앞에는 <큰뜻> 문구점이 있었다. 문구 뿐만 아니라 모든 외고에서 쓰는 교재들을 조달해서 파는 그런 큰 문구점이었는데

아직도 전민고 앞에 (규모는 작아졌지만) <큰뜻문구점>이 있었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앉아있는 주인 아주머니가 낯이 익었다. 

나는 10년전에 사먹던 봉봉 초코렛을 하나 사면서, 10년전에 여기를 다녔다고 하니 곧바도 "외고? 몇기야?"라고 물으신다.

"8기에요" 라고 대답하니, "여기 2년 다녔겠네^^" 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제 이 곳에 외고시절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그 시절의 외고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서 뭔가 가슴이 뭉클해왔다. 



나는, 학교를 나가 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학교 때문에 2년간 살았던 곳. 

이제 캄캄해진 길을, 나는 기억보다도 어떤 느낌에 의존하면서 길을 찾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잠시 대전에 발령받아 계셨던 아빠와 함께 매일 달리던 길을. 

연구단지를 끼고있는 한적한 길이었는데, 중간 중간 옆으로 새는 길도 있지만

나는 아주 익숙하게 10년 전 걷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다. 


 

벚꽃잎이 하얗게 떨어졌다.



지금은 10km도 거뜬히 뛰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땐, 2km로도 제대로 못 뛰었었다.

처음에 아빠랑 2km씩 살살 뛰기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서 3km, 4km, 5km씩 뛰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오래 뛸 수도 없었지만

다들 저녁 먹을 시간에 나는 집에 와서 아빠랑 같이 30분씩 뛰고, 재빨리 씻고 저녁을 먹고 다시 야자를 하러 학교에 돌아가곤 했다.


그땐 mp3도 없었고, CDP가 있을 때라 CDP를 들고 뛸 수도 없고 

노래도 없이 30분을 그냥 풍경을 보면서 뛰었는데 

30분간 오롯이 생각만 하는 그 시간이 참 싫었다. 

생각하다보면 자꾸 내가 못한게 생각나고, 친구랑 다툰게 생각나고, 시험에서 실수한게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자책하고 반성하고, 억지로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쓰곤 했지.

그래도 아빠랑 그렇게 3개월 가까이 뛰었던 경험은

나중에 나를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게 했고, 

아빠와 함께한 좋은 추억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하다. 





그 밤길을 홀로 노래를 들으며 걸으면서 엑스포 아파트를 지나 갑천변까지 도착했다. 

시간이 어느새 8시 15분. 

정부종합청사 고속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9시에 있어서

나는 택시를 타고 정부종합청사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뭔가 홀가분 하게 내려왔는데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니, 잠시잊고 있었던 착잡한 마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마음의 근원에 뭐가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대전에서의 시간이 힐링이 되길 바랐는데

추억과 조우한 것과는 별개로 

지금의 나를 다스리는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아....오늘만큼은 정말 서울로 돌아가기 싫다.......

라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삶에서 도망 칠 수는 없다. 

하루종일 노래를 틀으랴, 사진을 찍으랴 애써준 핸드폰 배터리가

2%에서 깜빡깜빡이고 있었다. 

그래. 이제 너도 쉴 시간이지.

가자. 올라가자.

16살, 17살, 18살의 나도 안녕.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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