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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6 [헬싱키] 마지막 날, 여유로움 그리고 대반전 3

 

 

 

비오는 토요일.

사실상 이 여행의 마지막 날. 내일은 떠나는 일 밖에는 없으니까.

이 도시를 다 즐긴 뒤 (정말?;) 내리는 비 덕분에 오늘은 모처럼 여유롭다.

 

K와 J는 새벽부터 헬싱키 근교의 아울렛에 간다며 가버리고 나만 홀로 숙소에 남았다.

여행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사실 살면서도 별로 쇼핑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아울렛에 따라갈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그래도 새벽댓바람부터 나가버리고 홀로 남겨지니 서운한건 왜일까?

 

 

 

Hietalahden tori가 보이던 우리 에어비앤비. 첫날은 휑했는데 이틀만에 사람사는 집 같이 포근해졌다. 

 

 

 

오늘은 정해진 일정도 없고 날씨도 촉촉해서 처음으로 혼자 여유를 부리다가 나왔다.

길 가다가 들어온 카페 Agata bakery & Cafe.

러시아에서는 스타벅스 아니면 커피같은 커피 마실 곳이 없었는데

헬싱키에서는 그냥 길가다 Cafe라고 쓰인 곳 아무 곳이나 들어와도 커피가 맛있다.

분위기도 좋다.  

그런데 지금 구글로 찾아보니 폐업으로 나온다.....ㅜ.ㅜ 왜?

 

 

정성스럽게 라떼아트 중인 바리스타님.

 

 

왜 유리잔에 주는지 모르겠는 따뜻한 라떼와 자그마한 시나몬 롤.

 

 

 

Agata Bakery & Cafe에서 보였던 풍경.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너무 세차게 내리지 않아서 공기는 상쾌하고,

도심을 살짝 빗겨난 작은 골목은 더더욱 여유롭다.

오후에는 키아즈마 미술관에 갈 예정이었는데, 그냥 또 어는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혼자 않아

카페에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이 여유와 편안함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난 계획한 것은 또 하는 사람이니까

비가 조금 멈춘 듯한 때를 틈타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에 갔다.

 

 

그물망 같은 곳에서 편하게 앉고 누워 쉬는 사람들, 그리고 기타치던 아저씨

 

 

 

 

 

누움병이 있는 저도 누웠습니다. 

오늘은 사진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셀카로..

 

 

 

 

키아즈마 미술관

 

 

 

 

블럭과 놀고 있는 천사같은 아가들. 내 아이가 아니라서 천사같아 보입니다.

 

 

 

 

키아즈마 미술관 전시홍보물 앞에서 기념사진도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방금 막 헬싱키에 도착한 D오빠를 만났다.

휴가철이다보니 전 세계로 흩어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동선이 또 겹친다.

D오빠를 만나 카페를 찾아 가던 중에, 정말 아주 세찬 폭우를 만났다.

신발이 다 젖을 정도로 퍼붓는 빗 속을 걸어 허기진 D오빠의 배를 채워주고,

첫날 갔었던 Cafe Crusel에 갈까 하다가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저녁거리라도 살겸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김치왜건>이라는 퓨전한국음식 가게가 있어서 따뜻한 쌀밥을 먹었다.

굉장히 쌩뚱맞은 곳에 한국음식점이 있네...('ㅅ')

 

 

그런데 저녁을 먹고도 6시.

날도 점차 개고 배도 꺼뜨릴겸 혼자 서쪽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 어느정도 헬싱키의 규모와 거리가 머릿속에 다 들어와있어서

어제, 그저께 갔던 곳들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 .

 

 

 

 

 

금세 어제 저녁에 갔던 Cafe Cargo가 보이고

첫날 자전거를 타고 헤멨었던 공원(묘지)와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산책로를 따라 즐겁게 걸었다.

걷다보면 Cafe Regatta가 나올 것 같다.

가는 김에 K에게 시나몬롤이나 사다줘야지 - 

 

 

Cafe Regatta까지 걷는 길은 평화 그 자체였다.

아는 길이라서 마음도 편하고, 

보이는 풍경도 자전거를 타고 갈 때보다 더 여유롭게 즐기며 볼 수 있었다. 

 

 

 

 

 

 

7시. 드디어 Cafe Regatta에 도착했다.

날씨는 완전히 개어서 첫날 왔던 때만큼이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해가 기울어서 더 아름다운 것도 같다.

시계는 7시 반을 가르키는데, 마치 오후 4시같은 빛깔이다.

어짜피 한국에 가면 이런 여유롭고 한가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도, 즐길수도, 그럴 곳도, 그럴 시간도 없을 테니까.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긴 하지만,

오길 잘 했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던 할아버지.

나도 책이 한 권 있었다면 여유롭게 읽고 싶었는데.

 

 

K에게 줄 시나몬롤과 J와 내가 먹을 카넬리안 파이를 사서는

Cafe Regatta의 야외석에 앉아 그저께 보았던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쉬운 마음을 꾹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약간 걸어올라가니 호숫가인지 바닷가인지 알 수 없지만,

물가 옆에 잔디밭과 산책로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가족들이, 연인들이 이 물가를 따라 걷고

젊은이들이 열심히 땀 흘리며 뛰어갔다.

 

 

저녁 8시. 아직도 햇살이 오후 5시쯤 같은데

조금씩 빛이 기울어지며 연두빛 잔디에 황금 빛깔이 낮게 깔린다.

 

 

 

매일 이 곳에 시나몬 번을 먹으로 오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이 호숫가를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가족과 아기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은 어떨까.

매일 이 벤치에 앉아 이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떨까.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을 알지만

잠시 앉아보았다.

 

이 풍경이, 이 햇살이, 이 바람이, 이 녹음이

내 마음 속에서라도 내 것이길 바라면서.

 

 

- 2016. 8. 13. Travel Note.

 

 

 

 

 

 

완전한 노을까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면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고 늦을 것 같아

뒤돌아보지 않고 대충 방향을 잡아가면서 에어비앤비를 향해 걸어갔다.

걷다보니 주택가 근처의 공원을 가로지르게 되었는데,

토요일 저녁 가족들끼리 노는 모습이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나도 이런 곳에서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처음부터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부러울 뿐.

나는 이제 다 커버린지 오래다.

 

 

3일을 지도만 보면서 열심히 걸어다녔더니,

이제는 지도가 없어도 방향감각만으로도 길을 찾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지도가 너덜너덜 해졌지만,

나는 구글맵보다 이 종이지도가 더 좋다.

더 불편하고 헤메기도 하지만

구석구석 걷고 방향을 생각하면

점점 그 도시가 머리와 다리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고, 창 밖에 달이 떴다.

이제 반달보다 조금 더 찬 달이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내일 아침 출발해야하니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동안 핸드폰에 꽂아두었던 러시아 유심칩을 빼고, 한국 유심칩을 꽂았다.

한국번호로 전송되었던 문자가 몇 개 있어 눌러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문자가 보인다.

숫자 0이 쫌 많네? 

 

 

 

[ 해외승인 EUR  300.00, HSL ] 

 

 

 

300...?

 

300...유로?

 

3..300 유우우우로오오오?

 

 

3일 동안 이런 30유로 짜리조차도 쓴게 없는데!!!

내 신용카드 해킹당한거야?

이거 뭐야?!!!!!

 

 

 

 

 오늘 일정 정리 : Agata bakery →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 D오빠 데리고 헬싱키 대성당 잠깐 → 숙소 → Cafe Regatta

 

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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