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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15 (13) 상트페테르부르크 - 에르미타주 (겨울궁전) 2










소나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니 

아주 쾌청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구름도 물러가고 나름 상쾌한 듯한 날씨다.

나는 근질거리는 몸을 견디지 못하고 핸드폰과 이어폰을 챙겨서 운동화를 신고 

조심스럽게 이른 아침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도심 속으로 걸어나왔다. 


맑게 개어가는 하늘을 보고 모이키 강을 따라 가볍게 구 시가지를 뛰고서는

선선한 아침 바람에 취해 숙소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순식간에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다가

금세 쏴아 - 하고 퍼붓기 시작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비를 맞으며 뛰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으면서도

우연히 만난 비가 마치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 같아 바보처럼 실실 웃음이 났다.

서울에서 출근하는 길에 이렇게 비를 쫄딱 맞았다면 짜증부터 났을 텐데

이런 웃음이 나는 것도 여행이 선물하는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







비에 쫄딱 맞고 돌아오니, 갓 구워진 사과 파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당 ♡ 





비가 쏟아지고 잠시 개인 맑은 하늘. 빨간 씨티투어 버스와 노란 택시.









에르미타주에 들어가면 중간에 식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호스텔에서 추천해 준 BONCH 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오, 내부는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높은 천장의 인테리어에 모던하고 깔끔한 분위기였고

젊은 써버들은 친절하고 또 영어가 유창해서 주문하는데 어려울 것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뜻한 카페라떼를 머그잔에 담아준다!!!

그 동안 손잡이 없는 유리잔에 담아 빨대를 꽂아주는 방식에 황당했었는데

드디어 머그잔에 라떼를 담아주는 카페를 찾아쒀!







호밀빵에 속을 가득채운 닭가슴살 샌드위치. 맛도 분위기도 좋은 카페 Bonch. 




오랜만에 멀쩡한(?) 라떼를 마셔서 기분이 좋은 나.




Bonch의 마스코트인 불곰 캐릭터. 따라해보려다......(...)











드디어 구 참모본부 건물의 커다란 아치 사이로 알렉산드로프 전승 기념비가 보이고, 

그 너머에 겨울궁전이라 불리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모습을 보였다. 

며칠 있으면서 알게 된 건데, 

여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날씨가 정말 변덕스러워서 

거의 1시간 단위로 비가 내리다가 그치다가 맑았다가 구름끼다가를 반복한다.

하루에도 12번은 날씨가 바뀌는 것 같은 느낌.

분명 호스텔에서 출발할 때는 아침 소나기에 맑게 갠 느낌이었는데, 밥 먹고 나왔더니 찌뿌둥한 날씨가 되어 있네.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중 하나로 손꼽히는

러시아의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 The State Hermitage Museum) 박물관. 

정식 명칭은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겨울궁전이라고 불리는 바로크 스타일의 기품있는 궁전인 본관과 

구 참모본부 빌딩을 포함한 4개의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나무위키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s://namu.wiki/w/%EC%97%90%EB%A5%B4%EB%AF%B8%ED%83%80%EC%A3%BC%20%EB%B0%95%EB%AC%BC%EA%B4%80)





프랑스어로 '은둔지'라는 뜻의 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1764년 예까쩨리나 2세가 겨울 궁전 옆에 

작은 에르미타주(Малый Эрмитаж)와 구 에르미타주(Старый Эрмитаж)라는 별관을 건설하고

그 곳에 본인이 수집한 예술작품들을 소장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원래는 예까쩨리나 2세 전용 미술관이었다가 19세기 말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고 하는데

이 곳에는 총 1,012,657점의 미술작품과, 1,124,919점의 화폐기념품과 771,897점의 고고학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및 에르미타주 박물관 홈페이지 참고)








겨울궁전이라고 불리는 본관에는 박물관답게 1,020여 개의 방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빈슨 등의 명화와

이집트, 그리스 의 고고학 유물 같은 전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4개의 별관 중 겨울궁전과 마주보고 있는 구(舊) 참모본부 빌딩(General Staff Building)에는 

샤갈, 칸딘스키, 마티스 같은 근현대 미술작가의 미술작품들이 3층과 4층에 집중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어짜피, 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짧은 시간동안 본인의 취향에 맞춰서 본관이나 별관을 선택해서 보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리하여, 

박물관 울렁증이 있는 나는 겨울궁전의 본관 대신 구(舊) 참모본부 빌딩(General Staff Building)의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이미 인터넷에 에르미타주 박물관 표 구입하는 방법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긴~ 줄을 서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i) 인터넷으로 사거나, ii) 본관의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하거나, iii) 구 참모본부 빌딩(General Staff Building)에서 사는 것.




구(舊) 참모본부 빌딩에 들어갈 때 우선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면 되는데

본관과 별관 4개를 모두 들어갈 수 있는 통합권이 600루블, 

본관과 구 참모본부 빌딩을 제외한 별관 중 1개를 들어가는 티켓이 300루블이다.



어짜피 오늘 본관에 가지 않을 것이지만, 통합권 말고는 선택권이 없으므로 일단 통합권을 샀다.

그리고서 티켓 오피스 바로 뒤에 오디오 가이드 대여하는 원형모양의 데스크가 있는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있다. (♡)

조금 쌀쌀맞아 보이는 나이 지긋한 러시아 할머니가 오디오 대여를 해주었는데, 

처음엔 쌀쌀맞게 굴더니 러시아어로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했더니

또 츤데레처럼 우리를 불러다가 작동법을 츤츤하게 알려주었다. 



약간 나이가 있는 러시아 사람들 특유의 츤츤함이 있지만

특별히 불친절하다고 느낀 적은 한 두 번 빼고는 없었던 것 같다.

다들 츤츤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시크하게 잘 도와준다.  :)





겉보기와 달리 굉장히 모던한 참모본부 빌딩 내부 




ЕТАЖ 가 귀여워서 찍어봤음.




겨울궁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경관은, 그 반대쪽에 있는 참모본부의 실내에서였다. 





구 참모본부에 있는 미술관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있는데, 

4층에 보통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할 만한 샤갈, 칸딘스키, 마티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바로 4층부터 집중공략.

오디오 가이드를 켜니, 익숙한 김성주 전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배우 손숙씨의 목소리가 번갈아 나온다.

모든 작품을 설명해주지는 못하지만, 주요 작품에 오디오 해설이 있으니

가이드가 없어도,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그 그림과 화가와 배경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어 좋다.

특히, 김성주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듣는 해설은 목소리가 귀에 콕콕 박혀서 더 잘 들어오는 듯.

에르미타주에 가시는 분이라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꼭 추천 ('_')=b




 


칸딘스키의 1913년 작. 추상화로 완전히 넘어간 뒤의 그림. (에르미타주 박물관) 




칸딘스키의 1909년 작. Winter Landscape. 




좋은 작품들과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덕분에 나같은 미술 문외한도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미술관 4층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둘러보던 가운데 정말 운명같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다.

바로 추상화가 칸딘스키의 1909년 작품인 ≪ Winter Landscape 




사실 그림을 먼저 보고 후에 제목을 읽었다가 망치로 한 방 맞은 듯 멍하게 서 있었다.

제목이 겨울풍경이라는데 그림은 한 없이 따사롭고 포근하다.

분명 풍경 그 자체는 겨울 풍경이 맞는데, 

겨울 풍경을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서늘하도록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다니.

겨울은 당연히 하얗고 차가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 하나가 나의 고정관념을 단박에 깨뜨려버렸다.




미술관에서 관람을 하면서, 이렇게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 하나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작품 하나로 나는 오늘 이 에르미타주에 온 값어치를 다 한 느낌이다.  :)





마티스의 1910년 작. 춤(II) @ Hermitage Museum in Saint-Petersburg.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던 작품은, 

야수파 화가인 마티스의 ≪춤 (The Dance, 1910)≫ 이었다.

이 그림은 러시아 미술 컬렉터가 직접 주문해서 만들어진 벽화라고 하는데 

파란색, 초록색, 그리고 붉은 피부의 3가지 색과 단순한 스케치가 전부인 것 같아 보이는 이 그림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이 작품을 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눈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예전 LG전자의 광고에도 쓰였던 이 작품은, 

뉴욕의 MOMA 미술관에 이 작품을 그리기 1년 전인 1909년, 

이 작품의 초안으로 그려진 또 다른 ≪ 춤 (The Dance, 1909)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008년 뉴욕에서 처음 이 작품을 보고, 8년이 지나서 러시아에서 이 연작을 만나게 되다니, 

두 작품은 비슷한듯 하지만 러시아에 있는 작품이 훨씬 그 색감이 강렬하고 동작이나 신체표현이 역동적이었다. 







마티스의 1909년 작. 춤I  @ MOMA in NYC





뮤직과 댄스 중에서 댄스와 함께 기념사진 :)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인상적인 문양의 등. 





4층부터 3층까지는 미술 작품 하나 하나를 꼼꼼하게 둘러보고, 

2층부터 1층까지는 옛 러시아의 전투복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빠르게 훑으며 내려왔다.



근래에 미술관 관람하고 이렇게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는데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여러 좋은 작품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몰입해서 즐겁게 관람했다.

그리고 관람을 마치고서는 1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나는 마음에 들어했던 칸딘스키의 Winter Landscape 카피 기념품을 내게 주는 선물로 사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이쁜 액자에 넣어서 방에 걸어두고, 

이 그림을 처음 마주쳤던 그 따뜻한 느낌과, 겨울 풍경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었던 그 느낌을

잊지 않고 이 그림을 보면서 항상 기억해야지.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는 기쁨, 

한 눈에 반하는 작품을 마주친 기쁨,

무미건조한 일상에 나만의 애정하는 것이 생겼다는 기쁨.



이 모든 것을 에르미타주가 내게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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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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