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날은, 한 일주일동안 긴 휴가를 받아서

시원한 라떼를 옆에 두고 하루 종일 글만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사회생활에 맞춰야하는 나의 생체리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서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되짚으며,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머리를 짜내고 마음을 뽑아내어

그렇게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면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난 여름, 나는 13년을 소원하던 러시아 에 다녀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3년, 제3외국어로 러시아어를 선택하면서

나는 1년간 정말 떳떳하리만큼 열심히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언젠가는 꼭 가보겠노라고 마음 먹었다.

내가 배웠던 것들을 눈으로 꼭 직접 보리라, 말해보리라.

 

 

 

하지만, 대학교에 가고나서 한동안 러시아의 치안이 좋지 않았고

패키지가 아니면 위험하여 갈 수 없을 것만 같아 그렇게 꿈으로만 남을 것 같았는데,

2016년, 나는 결단을 내리고 모스크바와 쌍뜨뻬쩨르부르크에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러시아는 너무나도 강렬하고, 화려하고, 그리고 아름다웠다.

한마디로, 러시아 너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러시아 여행하는 동안 일기를 열심히 써 두어서

오히려,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한참이나 (거의 반 년 가까이나)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흘간의 눈부셨던, 러시아 여행기를 이제 시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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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1.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두빛 교토

셋째날. 니조조/오하라/후시미이나리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두빛 교토여행 3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었더니

토요일 이른 아침 햇살이 차분이 스며드는 이 아담한 동네 풍경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나는 한참을 햇살을 느끼며 이 아침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도 담았다.

 

 

원래는 내가 구상했던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어제 저녁, 갑자기 엄마가 가이드북을 새벽내내 뒤적거리더니 내일 아침 일찍 니조조(니조성)를 가보고 싶다고 결단을 내리셨다.

 

 

 

어머.....니....조조요?


 

 

 

교토에서 기요미즈데라, 금각사, 은각사는 들어봤는데 니조조는...심히 낯선 이름인데.....

니조조(니조 성)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토 고쇼를 수호하고 교토 방문시 머물기 위한 숙소로 지은 성으로,

3대 쇼군 이에미츠가 후시미성의 건축 자재 등을 옮겨와 1626년에 완성하였다.

이 곳에서는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시대의 건축물 과 이에미츠의 지시로 제작된 그림과 조 각등이 어우러져

모모야마 시대의 문화를 감상 할 수 있으으며, 199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단다.

엄마는 금각사, 은각사 이런 절 말고 궁전 같은 역사적인 건물이 더 보고 싶다 하셔서

마침 숙소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우리는 일정을 바꿔 아침 개장 시간에 맞춰 니조조로 향했다.

 

 

니조조의 상징인 화려한 금색의 카라몬 앞에서 부모님

 

 

 

 

사실, 니조조는 이 화려한 금색 장식의 카라몬(당문) 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부 건물은 사진촬영 불가임!)

워낙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이쁜 사진을 건지기가 정말 어렵다.

일단 부모님 찍어드리고, 줄 서서 기다리는 일본 수학여행 학생들을 계속 찍어주다 아침 땡볕에 살짝 짜증이 남...(ㅜㅠ)

나도 이쁜 사진 남기고 싶었는데 아빠가 아빠 손가락으로 렌즈를 가려서 저 커다란 문을 다 가려버렸.........(ㅜㅠ)

순간 막 짜증을 냈는데, 내가 지금 엄마아빠모시고 여행을 온건지 응석을 부리러 온건지 혼자 멘붕이 왔다.

정신차려 이 못난 녀석아  ㅜ.ㅜ

 

 

화려한데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일본스러운 멋이 묻어난다. 일본여행하면서 처음 본 장식.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셀카봉을 이용해서 끝끝내 저 대문이랑 사진을 찍었다....(..)

 

 

니조조의 저 커다랗고 화려한 문을 통과하면 니노마루 궁전 건물로 들어가게 되는데

'쇼인츠쿠리'라고 하는 무가풍 서원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6동의 건물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이 곳은 자객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해서 밟을때마다 나무로 된 바닥에서 뾱뾱- 하고 새소리가 난다.

그리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앞 사람을 따라 미로 같은 방을 뾱뾱거리면서 걸어가게 되는데

확실히 엄마 아빠는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굉장한 호기심을 보이며 꼼꼼히 둘러보셨다.

 

 

그리고 니노마루 궁전에서 나오면 니조조 성 안의 니노마루 정원 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화려한 정원은 아니지만 아담하면서도 굉장히 잘 가꾸어져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니조조 성 안의 아담한 정원들

 

 

니노마루 정원은 옛 정원 조성기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연못 중앙에 샘을 상징하는 돌과 그 좌우로 학과 거북이 모양의 돌을 배치한 '지천회유식' 정원이라고.

역시, 팜플렛이 자세히 설명해준다. (-_-)=b 

 

 

 

 

그리고 니조조도, 오사카의 천수각처럼 성벽과 수로로 둘러싸여져 있는데,

천수각 터에 오르면 혼마루 정원을 둘러싼 내호와 공개되지 않은 혼마루의 지붕 들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너무 더워서 시작부터 지침 (..)

 

 

나갈 때는 이런 울창한 숲정원을 걸어 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교토 여행을 준비하면서 전혀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천수사나 금각사, 은각사보다 훨씬 더 인상깊고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에도시대 특유의 장식과 문양의 건물형식도 흥미롭고, 정원도 아기자기하고.

만약에 누군가 주위에서 교토를 간다고 하면 나는 은각사나 금각사보다도 니조조를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우리는 니조조에서 나와 교토역의 카츠쿠라에서 갓튀긴 돈까스로 점심을 먹고, 오하라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 뒷자리에 앉은 엄마와 아빠는 서로 머리를 기대고 노곤노곤 낮잠을 자고요.

한참, 산따라 물따라 버스가 달려서 드디어 우리는 오하라 마을 에 도착하였습니다.

 

 

오하라 마을의 상징같은 나무 인형

 

간식을 좋아하는 아빠덕분에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물고용

 

 

산젠인과 스님

 

 

 

오하라 마을에 내려 처음 간 곳은 이끼 정원이 있는 산젠인.

조용한 가운데 잠시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그런 불당같은데,

동자승처럼 생긴 조각상들이 이끼 정원위에 누워있는 것 말고는 특히 인상적인게 없어서

여행기에서는 과감하게 pass!

 

 

산젠인에서 나와 간 곳은, 700년된 소나무와 액자정원이 있다는 호젠인 !

여기 일본은 이런 액자정원식 구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호젠인에 들어가면, 어제 오오코치산장처럼 녹차와 작은 주전부리 하나를 준비해준다.

그 녹차를 마시면서, 호젠인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겨봅니다.

 

 

녹차와 (아마도) 양갱

 

 

700년된 소나무를 배경으로

 

 

 

액자정원을 바라보는 아버지. 콧대는 역시 아버지.

 

 

 

빨간 종이우산과 연녹색 잎의 보색대비가 참 아름답다. 보색의 대비를 아는 민족이다. 일본은.

 

 

 

그렇게 산젠인과 호센인까지 둘러보고서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후시미 이나리 신사 (여우 신사)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촬영장소로,  강렬한 주황색 토리이가 빽빽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는 신사다. 

오하라 마을이 교토에서 1시간정도 북쪽으로 떨어져있는데,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교토 중심부에서 한 15분~20분 정도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이동거리가 은근 만만치 않았지만, 오늘이 여행 마지막이니 열심히 환승+짜증+환승해가면서

뉘엿뉘엿 해가 질 즈음에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 도착하였다.

 

 

살짝 해가 뉘엿 넘어가는 중.

 

 

천개의 붉은 토리이가 줄지어 있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

 

 

엄마 아빠도 마지막 기념 사진

 

 

 

 

저 천개의 토리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갈 수도 있지만,

붉은 토리이의 오묘한 느낌은 충분히 만끽했기에 굳이 끝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날이 조금씩 어둑어둑해지고 있어서 (+ 산속이라 모기가 많다!!!) 우리는 중간지점에서 돌아내려왔다.

 

 

다시 교토 시내로 돌아와 (아마도) 다카시야마 백화점 지하에서 각자 먹고 싶은 도시락을 하나씩 골라서

또 어제 걸었던 그 길을 타박타박 걸어 숙소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는 그 백화점에서 사온 도시락에 제일 맛있다고 했다....(...)

내가 그 동안 블로그를 뒤적거려가며 나름 맛집들을 찾아낸건데...........

그렇게, 엄마는 니조조와 백화점 도시락이 가장 맛있었다는 평을 내렸고

내가 다음부터는 어디 여행갈 때는 내가 맛집을 알아보나봐라!!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여름 가족여행 준비를 또 내가 하고 있을 뿐이고.. OTL

(여행사 Fee를 내가 받아야 한다며 이를 갈고 있음)

 

 

그렇게 짧은 3박 4일, 실제 관광은 2.5일의 부모님과 함께하는 교토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2016년 여름 여행기만 남았다. 야호 !  

그래서 이번 교토 여행의 결론은, 니조조 추천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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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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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0.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두빛 교토

둘째날 오후. 교토  

 

 

 

 

스타벅스에서 오후의 햇살을 조금 흘려보낸 뒤 우리는 교토의 관광명소 제 1번 기요미즈데라 (청수사)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것에 비해서 기요미즈데라 그 자체는 크게 볼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부모님 모시고 왔으니 아니 가볼 수가 없는 곳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단풍이 가득하고 라이트업을 하는 가을에 온다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한 번 와본 곳이라서 엄마랑 아빠 데리고 척척척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길을 따라 올라간다.


 

호칸지 야사카지 5층 목탑도 지나고요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 여인들. (일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게 함정, 하지만 옷차림이 상당히 고급지고 많이 갖춰 입은걸로 봐서 일본인인것 같다.)

 

 

 

기요미즈데라 가는 길은, 교토 제 1 관광명소 답게 관광객들로 정말 발디딜틈이 없다.

우리나라 경복궁 같은 느김!

 

그리고 기요미즈데라 내부 역시도 사람들로 어마어마했다.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아마도 일본 다른 지역에서 수학여행온 것 같은 어린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생각해보니 5월이 수학여행 시즌이구나!)

 

 

파란 하늘 아래 빨간 색이 인상적인 청수사 입구

 

 

기요미즈데라 들어가다가 잠깐 옆길로 새면 이런 멋진 뷰를 건질 수 있다.

 

 

기요미즈데라의 본당에선 저 멀리 교토시내가 슬쩍 내려다보인다.

 

 

본당에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저 멀리 나무기둥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만 같은 본당이 또 한눈에 보인다.

 

 

건강, 학업, 연애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하는 오토와 폭포의 물줄기

 

 

 

 

작년에 혼자 왔을 땐, 오토와 폭포의 물(따위) 마시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온 여행은 뭐랄까, 패키지 여행에서 하는 것 처럼

사람들이 하는건 다 해드려야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이 들어서

긴 줄을 한참 서서 떨어지는 물줄기의 물도 받아마셔 보았다.

문제는 무슨 물을 마셨는지 모른다는게 함정. (..)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찾아서 겨우겨우 기념 사진 한 장 남기고. 카메라는 그저 어깨에 걸치고 핸드폰으로만 찍었다.

인사동 분위기가 나는 산넨자카, 니넨자카에서 엄마랑 ♡

 

 

원래는, 기요미즈데라에서 내려가는 길에 니넨자카에서 후지나미 가게*의 당고를 맛보여드리겠다!!

나는 간식까지도 생각해온 딸이다!! 라는 것을 호언장담했는데

기요미즈데라 폐장시간인 6시가 살짝 넘어서 갔더니 이미 니넨자카의 상점들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관광지라서 조금 더 장사할 법도 한데 6시가 넘어가니 칼같이 문을 닫다니.....ㅜㅠ

그리하여 나는 부모님께 당고맛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쓸쓸히 니넨자카를 걸어내려와야 했다.

 

(* 후지나미 가게 : http://sollos.tistory.com/7-기요미즈데라-청수사)

 

 

기요미즈데라를 내려오니 노을이 지고 있네요.

 

 

어스름이 지니 더욱 운치있는 가모강과 그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우리는 기온거리를 지나, 아늑한 느낌이 나는 가온 강을 건너

블로그에서 봐두었던 장어덮밥 파는 가게 (이즈모야)를 찾아갔다.

나 원래 여행할때 음식을 잘 챙겨먹지도 않고, 그냥 내키는 대로 들어가서 먹는 편인데

이번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첫 해외여행이라 점심, 저녁 모두 일정에 맞춰 열심히 찾았다는 거.

 

 

장어덮밥과 정식류의 식사를 먹으면서 아침일찍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진 몸에 기력을 보충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맛집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부모님 모시고 식사시간에 헤메지 않고 뜨뜻한 밥을 대접해드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그렇게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우리는 하루종일 걸었지만 숙소까지 버스로는 2정거장정도, 걸어서는 3~40분 거리길래

엄마랑 아빠랑 손잡고 가모강 뒷편의 복작이는 이자까야 골목들을 지나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타꼬야끼도 사먹고 천천히 숙소까지 걸어올라왔다.

 

 

사실 아라시야마에 갔다가 스타벅스에서 커피마시고 기요미즈데라까지 걸어갔다 온 것 밖에 없는데

많이 걸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신줄을 놓지 못하고 구글맵을 계속 확인하며 부모님을 이끌고 다녀서인지

한 건 없는데 은근히 피곤하네. 

 

 

 

내일은 우리팀 과장님이 추천해주신 오하라 마을에 간다!

 

 

 

숙소가는 길에 또 두 분이 손잡고 저래 다정하게 서있음....혼자 온 저는 그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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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0.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두빛 교토 (2)

둘째날 오전. 치쿠린과 오오코치 산장

 

 

 

치쿠린 가는 기차역. 아담한 일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드디어 교토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삼일동안 에어비앤비에서 묵었는데,

다행히 에어비앤비를 처음 이용해보는 부모님도 만족해하시는 눈치였다.

집이 좀 작긴했지만 (일본집 특징인 듯하다) 사람 사는 동네에 있는 것도 좋았고.

특히, 아침해가 뜰 때 아담하고 작은 사람하는 동네에 햇빛이 비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어쨌든, 교토에서의 첫번째 여정은 바로 대나무 숲이 아름답다는 아라시야마의 치쿠린

부모님을 모시고 이틀동안 어딜 가야 부모님이 좋아하실까, 루트를 고민해봤는데

일단 자연환경을 좋아하실 것 같아서 ( +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참고해서) 아라시야마의 대나무 숲인 치쿠린으로 결정했다.  

아아 그동안 혼자 여행다니거나 친구랑 다닐때는 그렇게 루트나 식사같은 걸 고민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부모님이랑 다니려다보니 루트와 식사가 은근 신경이 많이 쓰였다.

효도 관광은 힘들엉...(..)

 

 

 

시원하게 쭈욱쭈욱 뻗어 올라간 대나무 숲!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주말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엄마 아빠와의 첫 여행에 조금 어색어색해하며 치쿠린에 도착해서 숲을 한바퀴 돌았다.

루트를 잘못잡은건지 원래 그런건지 생각보다 빨리 길이 끝나버렸고

사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어느 간판을 하나 보고는 여기에 가보자며 나와 아빠를 끌고 갔다.

엄마의 주도적 여행은 여기에서부터였나보다.

 

 

 

그곳은 바로 오오코치 산장 (大河内山荘)

난 가이드북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트립어드바이저 마크와 함께 Garden + Green Tea라는 표시를 엄마가 찾아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약간의 언덕길을 타고, 오오코치 산장으로 들어왔다.

 

 

이게 바로 오오코치 산장이다. 연푸른빛에 감싸여 싱그럽기 그지 없다.

 

 

사람도 없이 한적하여 엄마아빠가 너무나 좋아했다.

 

 

모자를 썼는데도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오코치 산장 입장료에는 정원관람료와 함께 녹차 한 잔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녹차를 마시는 곳은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시원한 대나무 숲이 펼쳐지는 그런 찻집이었다.

원래, 예전에 철학의 길에 있던 요지야카페에 가서 일본식 정원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여기 오오코치 산장에 찻집에 앉으니 굳이 거기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왠지 여기가 훨씬 좋은 것도 같다.

물론, 나는 요지야 카페도 좋았지만.

 

 

 

5월의 뜨거운 햇살을 시원하게 가려주는 나무그늘

 

 

 

엄마아빠가 사진을 엄청 잘 찍어주셨다..하..스릉해요

 

 

 

 

 

 

 

그리고 오오코치 산장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아라시야마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누각도 나온다.

야트막한 산세들이 한국과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가을에 오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님은(이라고 쓰고 자기 표현이 강한 엄마는) 치쿠린보다도 이 오오코치 산장이 더욱 맘에 드셨던 것 같다. 

사람도 많지 않고 고즈넉하고 여유롭게 차 한잔 마시면서 풍경도 즐길 수 있어서.

아라시야마에 가는 사람에게 주저 없이 추천해줄 만한 곳임은 인정.

 

 

 

교토의 건강식, 오반자이

 

 

 

정오에 다가갈수록 햇살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한국도 5월답지 않게 폭염이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여기 교토도 못지않게 건조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우리는 아라시야마에서 다시 교토 시내로 나와 교토 건강식 백반인 오반자이 를 먹으러 갔다.

찾아간 곳은 마츠토미야 고토부키 이치에 (일알못은 이름이 너무 어려워 힘이 듭니다)

 

나름 부모님을 생각해서 오반자이를 점심메뉴로 골랐는데,

그리고 블로그를 뒤져서 나름 유명한 오반자이 가게를 골라서 꾸역꾸역 찾아갔는데

아무래도 부모님 입맛에는 영 심심했던 것 같다. (ㅜ.ㅠ)

치쿠린에 이어 또 실패한 느낌 (ㅜ.ㅠ)

분명 평가받는게 아닌데도 계속 눈치를 보게된다.

 

 

점심을 먹고서 간 곳은, 가모강이 내려다보이는 스타벅스 산조오하시 지점!

마침 햇살도 너무 뜨겁고 오전에 아라시야마까지 갔다와서 피곤하기도 해서

다같이 시원한 카페라떼 한 잔씩 시켜 그늘진 테라스 좌석에 앉아 뜨거운 점심시간의 햇살을 피했다.

 

 

 

이렇게 작지만 한적한 분위기의 가모강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시원하게 카페라떼 냠냠

 

 

뒤에 보이는 벽돌집이 스타벅스 산조오하시점!


 

 

역시, 날이 너무 더울땐 시원한 카페라떼가 최고야!!

햇살도 조금은 누그러졌고, 시원한 카페라떼로 기분도 Up되었으니 -

이제, 오사카의 천수각처럼 교토의 관광 제1번지, 기요미즈데라(청수사)로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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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9.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두빛 교토

첫날. 오사카  

 


 

지난 겨울 충동적으로 오사카-교토 여행을 하고와서

반 년도 채 지나기 전에 또 한 번 오사카-교토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어버이날 선물이기도 하고 또 8년전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또 부모님과 해외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여러모로 의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지난번엔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를 오가며 여행을 했다면  이번엔 교토를 중심으로 여행을 할 계획이다.

 


인천공항에서 12:30 비행기를 타고 2시가 조금 넘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평일이어서인지 입국절차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진행되었고
간사이공항의 JR티켓오피스에서 이코카&하루카 티켓까지 구매하고
(간사이공항-텐노지, 교토역-간사이공항 하루카 왕복표를 미리 구매했다)
하루카 특급열차를 타고 텐노지 역으로 향했다.
오사카 성을 보러 간다.

오사카성 천수각이 그려진 키티 이코카 카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있노라니 6개월 전 이 곳에 왔을때의 나의 마음가짐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6개월 전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이 곳에 오지 않았던가.  

 

현실에서 도망쳐 마음을 달래고 싶어 왔었다. 여행이 아니라 도피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정말이지 여행을 하러 왔다.

 

6개월 사이에 중요한 일들이 있었고 그 결과 나의 마음과 태도도 어느새 이렇게 바뀌어있었다.
어찌되었든 좋은 방향이었고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이젠 굳이 도망치고 싶지는 않은 이유이다.
불과 6개월 전인데 문득 새삼스럽다.

 

 



지난 겨울에도 보았던 그 노란색 푸드트럭이 또 있다!


 

 

지하철 역 코인락커에 짐을 넣어놓고 오사카성 공원을 향했다.
한국도 덥다던데 이 곳 햇살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오후 4시의 기운 햇살이 마치 소독이라도 하는듯 살결을 바짝 죈다.

 


한 번 왔던 곳이라고 반가운 마음으로 오사카성까지 걸었다.
서서히 폐장시간이 가까워지는 평일 오후여서인지 그렇게까지 북적이지 않고 여유롭다.
그 때도 그리 겨울답지 않았는데 봄에 오니 그야말로 연녹빛으로 싱그럽게 푸르르다.

 

 

 


연녹빛 나무와 그 뒤의 천수각.


 


천수각 앞에서 아빠와.

 

 

 


천수각 앞에서 엄마와.



 

천수각 뒷편. 낙엽이 가득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새 이렇게 푸른 봄으로 뒤덮였다.


 

 


약간 노을이 지는듯한 공원을 걸으며.


 

 

그 때는 걷지 못했던 오사카성 공원을 걷는다.

서서히 해가 기울고 수북한 풀의 냄새가 추억을 부르고 기억을 흔든다.
도심 한 가운데 이렇게 숲과 풀의 냄새가 가득한 곳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굳이 천수각을 2번 보러 이 곳에 온 것은 아니다.
간사이에 온 김에 엄마아빠는 보여드려야 했던 것도 있지만
나는 지난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이 오사카성 공원.
다시 오고 싶었던 이유도 오사카성 공원이었다.
물론 지난 겨울,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던 일은 부모님과 함께 온 탓에 다음 번으로 미뤄졌지만.

 

 

 


극락교였던가- 엄마와 아빠.



 

나와 아빠와 엄마. 동생이 없어서 못내 서운한 엄마와 아빠.


 


건물 사이로 숨어드는 5월 19일의 태양.


 

 

 

저 멀리 하얀 달과 분홍색 빛으로 변한 천수각

 

 


커다란 공원을 반쯤 걷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발그란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가며 온 하늘을 붉은 빛으로 물들인다.
하얀바탕의 천수각이 노을물에 발갛게 물이 들었다.
분홍빛 천수각 옆에 하얀 달이 떴다.

 

오사카 성만 둘러보는 짧은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이제 교토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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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9. Mon.

3박 5일 무모한 미국여행  

 San Diego  → Seoul

 

 

자고로, 어른이 되었어도

엄마 말 잘들어서 하나 손해 볼 것이 없다.

 

어제 Bertrand at Mister A's에서 즐겁게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는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비행기 출발 시간 다시 한 번 잘 확인해라"

 

 

예예 어머니.

제가 여행을 벌써 10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비행기 시간 하나 확인 안 해봤을까봐요 ^^

 

 

 

예예. 그런데

나는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

 

 

어제까지의 화창한 날씨는 어디가고 오늘은 떠나는 날 안개가 자욱하네요~

 

 

 

 

밤에 소파침대에 누워서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침 6시 45분 비행기라서 새벽에 일어나 우버나 리프트를 불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

이래저래 뒤척이다가 새벽 4시 20분 알람소리에 맞춰 리프트 앱에 택시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하고서

간단히 씻고 짐을 챙기고 리프트로 택시를 call했다.

그런데, 분명 근처를 맴돌던 택시들이 모두 BUSY라며 잡히지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살살 조급해지던 차에, 비행기 시간까지는 넉넉한가 싶어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는데..

6시....15분?!!!

45분이 아니고?!!!!

 

 

내가 순간 잘못본걸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4시 50분이고, 비행기 출발이 6시 15분. 택시는 잡히지 않는다.

보딩 마감시간도 맞춰야 하는데...심장이 내려앉고 손이 벌벌 떨린다.

제엔장!!!!! 이걸 놓치면 나도 K도 내일 출근 펑크란 말이야!!!

 

 

그러는 동안 마침 다행히도 우버에서 택시가 잡혔고, 15분 뒤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어머. 그러면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50분 남는거야? ^^...........

국제선을 50분동안 수하물 넣고, 출국수속하고, 보안검색하고 할 수 있는거야? ^^.............

나 예전에 LA에서 밴쿠버 가는데도 줄 서느라 1시간 안에 못맞출뻔 했는데...^^...........

 

 

다급한 마음에 (사실 집 앞에서 기다리면 되었는데) 그 새벽에 캐리어를 끌고서 길을 헤메는데

왜 이제 어제 엄마가 비행기 출발 시간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했을때 안했을까 후회도 되고

이렇게 또 대형사고를 하나 추가하는건가 싶기도 한 가운데

(아 내가 이렇게 사고친 걸 모아서 책을 내려는 계시인가...)

마침 우버가 도착했다.

 

 

우리가 헉헉거리며 달려가니,

우버 기사가 몇시 비행긴데 이렇게 급하냐고 물었고,

우리는 6시 15분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짐을 실어주던 기사 아저씨 왈

 

 

 

"나 지금 공항에서 오는 길인데, 지금 공항 문도 안열었어.

시간 아주 충분해~ 가다가 커피라도 한잔 하고 갈래? :)"

 

 

 

 

하아...........

다행히도 SAN 공항 자체가 도심에 있어서 우리는 5분만에 도착했고(;;)

마음과 머리는 놀라서 아주 정신없었지만 무사히 보딩 수속과 보안검사까지 일사천리로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3일 잘 놀고서 완전 대형사고 칠 뻔 봤다...ㅠㅠ

 

 

 

짧은 여행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샌디에이고는 내가 상상하고 TV에서 보았던, 미국이자 캘리포니아 그 자체였다.

샌프란시스코도, 라스베가스도, 엘에이도 모두 제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샌디에이고의 햇살과 여유로움, 화창함, 그 공기까지도

내가 어렸을 적 꿈꾸었던 미국이었다.

 

샌디에이고는 생각보다 좋았고,

표를 끊으며 상상했던 따뜻한 햇살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생각해보면 짧은 3일 동안 한국 생각은 정말 하지 않고 지냈다.

뉴스도, 메일도 확인하지 않았고

한국에서 안부를 붇는 친구도, 또 내가 안부를 물을 친구도 없었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샌디에이고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왠지 여행보다 비행시간이 긴 것은 착각을 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단체투어 관광객 아주머니가

샌디에이고 하나 보려고 3박5일로 미국을 갔냐는둥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 신공을 펼치시는 바람에

3일동안 행복했던 기분이 박살나는 것도 같았지만.

 

그리고, 돌아오는 인천공항에서

나는 빨간 기념품같은 가방을 멘 남자를 한 명 보았다.

 

 

마치,

나와 K의 다음 여정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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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8. Sun.

3박 5일 무모한 미국여행  

 San Diego  (3)

 

 

 

 

 

 

서쪽을 향해 달리다보니 금세 저 너머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새 우리는 해안가에 닿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해변가를 띠라서 키 큰 야자수들이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있었고,

왼편에는 넓은 잔디밭이 나타났다.

San Diego City and County Administration 빌딩 앞의 넓은 잔디밭에서

이 곳 주민들이 한가로이 일요일 점심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USS Midway Museum이 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반납하고서

바로 코로나도 섬으로 들어가는 Flagship Ferry를 탔다.

 

 

파란하늘 아래 커다란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는데,

비로소 이제서야 미국이라는 실감이 아주 약간 들었다.

(사실 그저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부산 정도 놀러간 느낌이었다....;;)

 

 

어느 새 배낭여행도 10년 차.

미국만해도 서너 번 왔다갔다 했더니 사실 미국이 낯설다는 느낌이 없어졌다.

이렇게 여러번 오갈 수 있는 어른의 자유가 좋기도 하면서

자꾸만 세상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고 설렘과 호기심이 사라지는 어른의 무딘 감정이 슬프기도 하다.

 

 

코로나도 섬에서 바라본 샌디에고 쪽 풍경. 참 맑고 깨끗하다.

 

 

 

약 20여분간 샌디에고의 다운타운의 전경을 구경하며 드디어 코로나도 아일랜드의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우린 바로 Orange Ave.를 따라 한적한 동네를 걷고 걸어 가이드 북에 소개된 라운지 버거 (Rounge Burger)를 찾아냈다.

 

미국 서부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In&Out은 너무 접근성이 떨어져서

대신 가이드 북이 추천해준 수제 햄버거가게를 골랐다.

라운지 버거는 최근 LA와 샌디에이고를 기반으로 인기 몰이중인 수제 햄버거 체인점이라구.

 

 

유즙이 흐르는 스테이크 패티!

 

 

 

가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당황하는 것이, 이런 햄버거나 샌드위치 가게다.

다양한 입맛과 알러지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주문자가 일일이 들어가는 재료를 골라야 하는데

패티는? 굽기정도는? 야채는? 번은? 치즈 종류는? 등등을 속사포로 물어보는데

그냥 Default로 모든게 정해진 건 없는거니? ㅠㅠ

나는 열심히 대답하다가 치즈 종류를 고르라는데서 거의 기진맥진 해서 그냥 처음 불러주는걸 다 골랐다.

무조건 처음 불러주는 그걸로 해줘....

 

 

 

어쨌든, 그야말로 스테이크 맛 그 자체인 도톰한 패티와 아메리칸 치즈가 줄줄 흘러 내리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햄버거로 뒤늦은 점심 허기를 채우고

Moo time Cremery 에서 아이스크림까지 촵촵 먹으며 코로나도 호텔로 계속 걸어갔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인처럼 먹어줄테다!

 

 

사실 샌디에고도 그렇고 특히 코로나도 아일랜드는 차로 이동하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

다운타운은 버스라도 타고 다닐 수 있었지만, 코로나도는 걸어서 섬을 가로지르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여...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힘으로 겨우겨우 걸어갔네.

(그리하여 2017년부터 오로지 여행을 위해서 운전연수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드디어 코로나도 호텔의 해변에 닿았다. 사진보다 훨씬 끝없이 펼쳐져 있던 멋진 해변.

 

 

이곳이 코로나도 호텔입니다 :D

 

 

하얀 건물에 빨간 삼각뿔 같은 지붕이 인상적인 코로나도 호텔(Coronado Hotel).

1888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호텔인데,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만든 빅토리아 양식 목조 건물이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 지어져서 세련된 외관은 아니지만, 이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느 새 오후 4시 30분. 시간이 한없이 짧게만 느껴진다. 아니, 사실 짧았다. 고작 1박 2일이라니.

 

 

코로나도 호텔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전에 되돌아 페리 선착장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부터 꼭 다운타운 맞은편에서 노을 지는 샌디에고를 보고 싶다고 한,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하루종일 뜨겁게 내리쬐던 해가 점점 기운다.

2층 건물조차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 아름다운 섬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기울어지는 햇살을 받아 점점 오렌지 빛으로 물들고

45도의 따뜻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곳에서의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들이 이제 끝나간다.

나에게는 끝이지만,

이들에게는 보통의 일요일과 다르지 않을 오늘, 여기 바로 지금.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순간.

 

나에게도 평범한 일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 2016. 2. 28. Coronado Island, San Diego.

 

황금빛으로 물드는 다운타운의 전경과 그리고 하얀 보트.

 

 

 

페리 선착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건너편 다운타운의 빌딩 전면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맨하탄이나 시카고만큼 화려한 스카이라인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또 정갈한 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왠지 모르게 애정이 샘솟는다.

나는 이제 너무 큰 도시보다는 적당한 규모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그런 아담한 곳이 좋다.

 

 

 

그리고 하늘이 붉으스레 물든다.

 

 

 

우리는 선착장 근처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코로나 한 병 씩을 시켜 아주 짧은 허세도 부려보았다.

(참고로, 건물 밖 노상에 앉아서 술을 마실 수 없다. 반드시 펍이나 레스토랑 내부에서만 술을 판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을 떠올리며 코로나에서 코로나도 한 병!을 외쳤다.

그리고 나와 K는 이 소소한 즐거움이 참 행복해서 천진난만하게 웃어댔다.

태평양 너머로, 키 큰 가로수들 너머로 붉게 물들어가는 이 따뜻한 겨울 밤을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어서.

 

 

 

 

코로나도 섬에서 마시는 코로나 :)

 

 

하나둘 불빛이 켜지면서 한국보다 조금 이른 6시 즈음, 어둠이 내려앉았다.

 

 

 

K와 나는 황금빛 노을의 순간부터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후회 없을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즐기고서 다시 페리를 타고 샌디에이고 다운타운으로 돌아왔다.

 

 

이제 내일 새벽이면, 이 짧은 3박 5일의 무모한 미국여행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기에

우리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Bertrand at Mister A's로 향했다.

Lyft 기사 아저씨에게 Mister A's에 간다고 했더니,

기사 아저씨가 wow! 감탄하며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라며 마치 자기가 가는 것처럼 즐거워해줬다.

자기도 가족들과 특별한 일이 있으면 가는 곳이라면서. :)

 

 

Bertrand at Mister A's는 샌디에이고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는 12층 높이의 레스토랑으로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샌디에이고에서 다운타운과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Bertrand at Mister A's가 있는 12층으로 올라가자 굉장히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나와 K 모두 운동화와 패딩...(;;)을 입고 있어서 혹시 드레스코드 때문에 쫓겨날까봐 살짝 쫄았지만

다행히 우리를 친절하게 파티오 석으로 안내해주었다.

 

 

야외 파티오 석이 만석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 곳도 겨울은 겨울이라 그런지 다들 실내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에서 식사 중이었고

파티오 석에는 우리와 10대 후반즈음으로 보이는, 그런데 굉장히 잘 차려입은 3명의 아이들 뿐이었다.

 

 

 

도심을 가로짓는 저 불빛은 비행기의 흔적이다.

 

 

 

우리가 안내받은 파티오 석 자리는

이번엔 엠바르까데로(Embarcadero)의 뒷편에서 다운타운과 SAN 공항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역시나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처럼 거대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빌딩들과 바다와 공항이 한 눈에 보이는 멋진 파노라마 뷰가 눈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5분에 한 대씩, 비행기들이 빌딩들 사이를 가로질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만찬답게 흐뭇한 식사

 

그리고 빠에야 :) 빠에야는 꼭 스페인가서 먹읍시다.

 

다운타운과 바다, 그리고 오른쪽편이 바로 SAN공항

 

 

눈 앞에서 끊임없이 비행기의 착륙을 지켜보며 식사를 하는 곳이라니 :)

야경도 사랑스러운데 비행기가 착륙하는 이색적인 모습까지도 마치 일상처럼 볼 수 있는 곳, 참 특색있고 좋다.

 

 

 

이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배부르고도 맛있게 먹고 참 행복한 눈을 하고 있네요.

 

 

그렇게 오늘 하루가 알차고 또 행복했다고.

이제서야 여행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고민과 일에 대한 압박, 걱정, 근심거리 모두 잊고,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행여나 마음 속에서 슬금 슬금 기어오르려거든

꾹꾹 눌러 밟으면 보낸 3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오길 잘했다.

충분히 이 고생과 피로와 돈이 아깝지 않은,

매력있고 날 즐겁게 만들어준,

그런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이제 한국에서 추울 때마다,

샌디에고에서의 뜨거웠던 -

그러나 상쾌했던 햇살이 문득 문득 떠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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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라인업 확정

3월 : 2박3일 홍콩
7월 : 록키 - 밴쿠버 - 시카고
10월 : 몬트리올 - 퀘벡

단연코,
건국 150주년,
UBC 교환 10주년을 맞은
단풍국 캐나다의 해입니다.

그리고 번뜩 생각난 건데
이 모든 여행지의 항공권 구매가
1주일 사이에 일어났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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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서

■ 삶/II. 삶 2017. 1. 11. 00:24

 

1.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2007년에 샀는데 016년에 읽은 책.

책 두께가 500페이지가 넘는데다 고전답게(?) 섬세한 묘사 덕분에 읽는데 한참 걸린 책.

 

인스턴트 시대의 짧은 토막글에 익숙해진건지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읽는게 쉽지 않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쉽게 스토리의 해답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독자를 집중시키며 힘있게 소설을 이끌고 가는

긴 호흡의 소설에 점점 빠져든 것도 같다.

 

 

 

2. 《몰타의 매》 - 대실 해밋 

 

 

라쇼몽을 읽는 줄 알았다.

거짓과 거짓과 거짓과 거짓.

 

 

 

 

3. 《나쁜 페미니스트》 - Roxane Gay

 

 

조선일보의 2016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어 용기내어 읽은 책.

'페미니즘'과 나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던 나였고

페미니즘이 막연히 여성의 인권신장에 관한 단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 책의 저자인 Roxane Gay는 이 책에서

인종의 문제를, 성별의 문제를, 동성애의 문제를 -

즉, 이 사회에서 다수가 당연히 누리온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기 위하여

목청 높여 외치고 싸워야만 하는 모든 계층의 입장을 짚어준다.

 

 

 

 

 

4. 《자존감 수업》 - 윤홍균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고,

나를 나 스스로 사랑하기 위해.

"나는 사랑스러운 존재야. 그래서 누가 나를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워"

 

 

 

 

 

5. 《몽테뉴의 수상록》 - 몽테뉴

 

 

이렇게 2016년의 독서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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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생각

■ 삶/II. 삶 2017. 1. 10. 07:47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저 언덕 너머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아직 모두가 깨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나는 가로등 하나 켜진 골목을 걷고 
청소부아저씨는 묵묵히 계단을 쓸어내린다.

되풀이 되는 하루, 지루한 일상.
그래도 매일 같이 해가 뜨고
그저 내 몫의 일을 꾸준히 해내어 가는 것.

나는 내 일을, 엄마는 엄마의 일을, 학생은 학생의 일을.
그렇게.

 거창하지 않지만 실은 참으로 어려운 것.
이것이 인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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