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는 힘

■ 삶/II. 삶 2018. 4. 26. 00:06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했던 사람만이 그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오롯이 공감할 수 있다.


어스름해지는 4월 끝자락의 저녁.
지하철역에서 나와 익숙한 길을 따라 중앙광장으로 걸어갈 때에
비록 학교 건물을 채운 상점들은 달라졌지만
나는 2007년의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한 때 학교만큼은 정신 없이 변해가는 바깥세상에 비하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했지만
학교 안에 계속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어느 새 반쯤은 낯선 공간이 되었다.
13년이 지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겠지.
그래도 밤이 되어 조명을 받은 본관건물, 그 앞의 잔디밭,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학생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구나.

11년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잔디밭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잔디밭에 자리잡고 앉을때면 으레 전화했던 그 가게에 전화를 걸어 

(요즘에도) 배달이 되냐고 물으니 당연히 된단다. 

어스름마저 점점 어두워지는 풍경 속에 우리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으며 웃다가 추억하다가 그리워한다.



저 앞에 앉은 어린 학생 하나가 일어나 우렁차게 FM을 외친다.
한 때는 주문처럼 외웠던 그 FM이 이제는 입에서부터 낯설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 풍경은 낯설지가 않다.
학교의 외양은 변하지만 그 속의 우리는 변하지 않는구나.
이대로 2007년으로 돌아와버린것 같다.
오늘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내일 이 곳으로 수업을 들으러 오면 될거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일 회사에 가서 해야 하는 일을 머리 속으로 찝찝하게 생각해본다.

이제 일어나 익숙한 역을 향해 걷는다.
역으로 향하는 빠른 길이 새로 생겼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당신과 나는 우리가 걸었던, 둘러가지만 우리가 함께 아는 그 길을 걷는다.
누가 그러자 한 것도 아닌데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기에
지나가버린 시간이 야속하고 슬퍼.
그렇지만 그 위로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말하지 않아도 함께했던 그 시절을 공감할 수 있는 지금이 되었네. 



"돌아가면 난 자퇴하고 기술배울꺼야" 라는 농담에

"그래도 그때가 좋았잖아" 라며 웃으며 대답했지만

실은 내 머리는 멋대로 생각했어.

 - 돌아가 자퇴해버리면 난 당신을 만날 수 없었을테니까, 안돼-



함께해서 좋았고 함께여서 좋았어. 

나의 대학시절을 소중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아주 띄엄 띄엄 닿는 연락이지만

이렇게 긴 시간동안 소중한 한 사람으로 남아있어서줘서 고마워.

나의 인생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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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ne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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